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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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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는 이유는?

[공작의 꼬리 경쟁·32] 소비도 서열 경쟁

명품 소비를 좋아하는 어떤 직장인에 대한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구입한 많은 명품 들 중에는 300만 원이 넘는 가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가격은 그녀의 한 달 봉급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었다. 한 달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겨우 가방 하나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그런 가방을 가지려 하고 한국의 명품 소비가 근래에 높은 증가율을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인가? (☞관련 기사 : "2년간 산 신발만 100여 켤레…내 자신이 무서웠다")

명품 소비는 소비의 등수 경쟁이다. 소득의 차등화로 계층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소득 수준에 따른 서열 경쟁이 심화되었다. 소득의 서열 경쟁은 소비 서열 경쟁으로 연결된다. 명품 소비는 자신이 소득 경쟁에서 승자라는 걸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제품의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구입할 수 없어야만이 그것을 지닌 자신이 높은 서열에 속하여 대접 받고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인격은 차에서 나온다

대기업 과장 2년차인 김 모(36) 씨는 지난 추석을 앞두고 큰 맘 먹고 신형 그랜저를 구입했다. 그는 "예전에는 그랜저 같은 대형차는 임원 이상이나 나이가 지긋한 돈 많은 자영업자나 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신형 그랜저의 젊은 사람이 부담 없이 탈 수 있을 정도의 디자인과 각종 편의기능들이 맘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대형차로 바꾼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작은 차를 몰고 다니면 괜히 주눅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호텔이라도 들어갈라치면 괜히 신경 쓰이기도 했다. 호텔이야 자주 가지 않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차를 보고 얕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대형 자동차 시장 '씽씽')

국내 승용차 시장의 소비 구조는 급속도로 대형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1995년 대형 승용차의 비중은 2.7퍼센트, 2000년에는 9.3퍼센트, 그리고 2006년 24.3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승용차 시장이 가장 대형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한국의 소비자들은 승용차를 사회적 지위와 연계시키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승용차를 보면 그 사람의 지위를 알 수 있다"라는 견해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소비자가 45.3퍼센트에 달하는 반면,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경우는 32.6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기서 자동차의 소비는 서열 소비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대형차의 수요가 늘고, 경차와 소형차의 소비는 거부하는 구조로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 대형 자동차 시장 '씽씽')

차의 크기에 따라 사람들의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 차뿐만이 아니라 아파트 크기, 넥타이나 핸드백의 가격의 고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이러한 소비 수준에 따른 서열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정해지는 서열을 잘 반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소득 수준에 의한 서열은 역시 학벌에 의한 서열, 집안의 세력에 의한 서열을 반영할 것이다.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상품을 보통 상품과 (사회적) 위치 상품(서열 상품)으로 구분한다. 보통 상품은 그 가치가 우리의 삶에 직접 필요하기 때문에 나온다면, 위치 상품은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치가 나타난다. 서열 상품은 사치품 또는 과시 상품 등과 연결되며, 소비자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낸다. 서열 상품의 소비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필요 이상의 큰 차를 선택하는 소비 행위를 예로 들 수 있다.

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증가하거나 또는 분배의 불균형에 의하여 상위 계층이 증가함에 따라 보통 상품에 대한 수요가 충족된 계층이 늘어나며, 이에 따라 서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 한다. 특히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경우에 구성원들의 소득에 의한 서열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서열 상품은 이러한 서열에서의 위치를 나타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런 상품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은 사회자원이 필요한 상품의 생산보다는 서열 상품 생산에 쓰이게 된다.

소득 불평등에 의한 서열 형성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서열 상품의 소비 경쟁을 유발한다. 이제 소비의 목적은 단지 자신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한 소비자의 사회적 위치, 성공 유무, 능력 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된다. 이러한 소비 없이는 자신감과 만족감도 갖기 어려운 소비 만능의 문화가 확산되어 간다. 그래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소비의 문화 역시 더욱 차등화가 심화된다. 그리고 소비의 패턴이 부자들에 의해 주도되며, 사람들은 부자들의 소비를 따라 가기 위해서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왜 소득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광고가 증가하는가?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차등화가 잘 진전된 사회일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다. 소득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소득의 서열 경쟁이 심해지고, 따라서 소비의 서열 경쟁이 심각해진다. 그리고 서열 소비가 증가할수록 이득을 보는 두 집단은 명품 업계와 광고 업계일 것이다.

소비문화의 강도를 측정하는 척도의 하나로 광고 지출을 들 수 있다. 소비문화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광고 지출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광고 지출을 많이 하는 10개국 중 콜롬비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영국 그리고 미국 등은 역시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들이다. 아래의 그림은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광고비 지출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림에서 보듯이 소득이 불평등할수록 광고비 지출이 늘어남을 볼 수 있다.

ⓒ프레시안

소득이 불평등해질수록 소비의 서열 경쟁이 심해지고 서열 상품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여 그 시장의 규모가 확대된다. 현재 한국 경제의 분배의 양극화로 인하여, 부익부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소비 형태 역시 변화해왔다. 경제 이론에 따르면 소득이 늘어나면 우선은 생필품의 소비가 늘고, 소득 수준이 더 높아지면 생필품의 소비는 정체되고 사치품의 소비가 늘어난다.

소비의 양극화는 재래시장과 할인점 등의 매출이 줄어드는 동시에 백화점의 사치품(명품) 매출은 증가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다. 원래 명품이라는 말은 경제학 용어에는 없는 말인데, "명품"이라는 말이 주는 좋은(?) 이미지를 이용해 "사치품"이라는 말 대신에 판매 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2008년 한 보도에 의하면, 불경기 중에서도 사치품 판매는 호황을 이룬다고 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대형 마트 매출은 지난해 동월 대비 0.7퍼센트 감소하면서 9월(-9.2퍼센트)에 이어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 달 백화점 매출은 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1퍼센트 증가…"(☞관련 기사 : 경기 침체 속 '소비 양극화' 심화된다)

명품 소비는 소비의 서열 경쟁

ⓒ프레시안
명품은 그 가치는 시계가 시간의 정확함을 제공한다든지 핸드백이 물건 소지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따위의 상품이 갖는 순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순기능보다는 과시함으로써(또는 무시당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그 주기능이다. 과시함으로써 얻는 만족은 상대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이 쉽게 살 수 없는 제품이라야 한다.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해야 하듯이, 출발점부터 그러한 비싼 제품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비싼 외제 명품 가방을 모든 사람이 갖고 다닌다면, 과시 효과는 없어지고 말 것이며, 그에 대한 비싼 가격을 지불할 요인 또한 없어질 것이다.

예를 들자면, 쌀을 소비할 때 밥을 해 먹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내가 밥을 먹을 때 만족감은 '맛이 있다'라든지 배부르게 해준다 하는 순기능에서 오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명품을 소비함으로써 오는 만족감은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과시함으로써 오는 만족감의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소비를 할 수 없는 사람들과 그런 소비를 못해서 오는 실망감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소비를 못해서 오는 실망감과 소비를 함으로써 오는 만족감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근원이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어느 명품 소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엔 명품 아닌 걸 쓰는 사람은 얕봤어요. 반면에 나는 300만 원짜리 가방을 살 때, 1000만 원짜리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스스로가 무서워질 만큼 씀씀이가 커져 갔어요."(관련 기사 : "2년간 산 신발만 100여 켤레…내 자신이 무서웠다")

이 사람은 명품 소비에 대한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품의 가격에 따라 상하관계(등수)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그 서열에서 등수로 결정된다. 소비 경쟁에서 승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서열 소비에 사용되는 지출 역시 한국의 직장인들이 고생해서 얻은 소득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소비의 중요한 부분이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서열 소비라면 성장의 대가로 증가한 많은 자원이 또 다른 경쟁에 낭비 된다는 것이다. 소득 불균형의 해결 없이는 경제 성장을 해도 이러한 낭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열 소비는 등수를 위한 소비로 소득이 균등화 할수록 그 수요가 감소할 것이다.

명품 소비를 위해 경제 성장을 하는가?

명품은 외국 제품이 주를 이룬다. 가방, 가구, 의류, 시계 등 고가의 제품들이 대부분은 수입품이다. 그래서 그의 소비 증가는 한국 내의 기업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소득 불균형이 점점 더 심화되면, 그에 따른 소비의 양극화로 고소득층의 사치품 소비의 비중은 늘고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필수품의 소비의 비중은 줄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계층별 소비 패턴의 변화는 국외의 유명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대체로 국내의 내수를 담당하는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 중에는 명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명품의 소비 증가에 따른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한다.

명품 소비의 증가는 국내 기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말고, 또 다른 특징은 소비 자체의 의도를 고려할 때 낭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성장과 함께 소득 불균형이 악화되면 서열이 확대되어, 서열 소비 경쟁이 더 치열하게 된다. 서열 경쟁에서 모든 사람이 더 일하고, 더 소비하지만, 모든 사람의 서열이 올라갈 수는 없다.

서열 경쟁에 많은 자원을 사용하지만 1등은 하나 밖에 없듯이 상대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낭비만을 초래하는 것이다. 성장이 낭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서열을 위한 소비에 대한 수요를 줄여야 하고, 경쟁이나 성장보다는 소득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우리는 소비를 통하여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고, 자신의 중요함을 과시하고, 자신이 얼마나 성공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소득의 불평등이 강하면 강할수록, 서열 경쟁이 심해질수록 그에 따른 서열 소비의 욕구 역시 증가한다. 그래서 경쟁을 위한 소비, 낭비가 되는 소비가 증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 경쟁과 취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렇게 얻은 소득을 또 다른 경쟁인 소비 경쟁에 낭비하는 바보들의 경쟁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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