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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는 지옥으로!"… '강제 철거' 퇴출한 이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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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는 지옥으로!"… '강제 철거' 퇴출한 이 나라는?

[도시 주인 선언·3] 세계의 '도시에 대한 권리' 찾기 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처음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이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와 도시에서 사회 운동의 실천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의 성과가 국제적, 국가적, 도시적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브라질과 같은 나라에서는 헌법과 법률 속에 명시적으로 구현되었다. 유엔(UN)이나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정책 가이드라인이나 인권 헌장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또 개별 도시 차원에서도 헌장이나 행동 지침 성격으로 구현되고 있다.

브라질 도시법(City Statute) 제정 운동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개념이었으나,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무허가 정착지의 확산과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도시 빈곤층의 주거 문제가 심각했던 중남미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남미 활동가들은 무허가 정착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실천 운동의 철학과 사상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개념을 구속력을 갖춘 실정법 내용으로 담고자 노력해왔다. 오랜 사회 운동과 정치적 압력을 통하여 콜롬비아에서 1997년에, 브라질에서는 2001년에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명시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제3세계 도시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브라질에서도 농촌을 떠난 수많은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도시 주변의 유휴지를 무단 점유하여, 무허가 정착촌을 형성하면서 도시 생활을 시작하였다. 한쪽에서 불안정한 주거 형태인 무허가 정착촌이 확산되는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토지 독점과 투기가 만연했다. 부재지주가 소유한 방대한 토지들이 미활용, 저활용 상태로 방치되었고, 소수 상류층은 자신들만의 폐쇄된 공간(gated community)을 따로 조성했다.

▲ 양극화된 브라질의 도시 내부 모습. 아래쪽이 도시 빈민 거주 지역이다. ⓒwikipedia.org

1964년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는 도시 공간의 근대적 정비를 명분으로 무허가 정착촌를 강제 철거하고 이곳의 주민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철거만 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1970년대 말부터 자조 주택의 증개축을 지원하거나 불량 주택을 양성화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1985년 브라질에서는 21년간 통치했던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민주 정부가 수립되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서 새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빈민 운동 및 주거 운동 진영, 전문가, 시민단체, 학계 등이 적극 참여하여 도시에서 주거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헌법 조항에 반영하였다.

이 헌법 조항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토지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오랜 기간 동안 점유한 사람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을 명문화하였기 때문이다. 이 헌법에 따라 무허가 정착촌 주민들도 시민으로서 권리와 주거권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또 이 헌법 조항을 근거로 1980년대 후반부터 혁신 세력이 집권한 일부 대도시 지방 정부에서는 무허가 정착촌에 대한 규제나 강제 철거 대신 이를 합법화, 양성화하는 여러 혁신적 정책 대안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 중 가장 혁신적인 정책을 많이 생산한 도시가 '참여 예산 제도'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이다.

▲ 참여 예산 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도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 전경. ⓒwikipedia.org

1990년대에 들어와 브라질의 도시 운동 단체는 '국가 도시 개혁 포럼(the National Urban Reform Forum)'을 결성하여 헌법 내용보다 더욱 구체화된 도시법 제정 운동을 펼쳐나갔다. 10여 년 이상의 오랜 정치적 협상 끝에 2001년 마침내 '도시법(City Statute)'이라고 명명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서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명시적인 집합적 권리로 인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브라질의 도시 개발 및 관리 과정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제도화했다. 특히 주민 참여를 포함한 도시의 민주적 관리에 대해 규정하고, 무허가 정착지의 양성화를 위한 수단들을 구체화했다는 의의가 있다.

유엔의 "도시에 대한 권리" 증진 캠페인

▲ 2009년 유네스코와 유엔-해비타트가 만든 도시에 대한 권리 정책 보급용 보고서. ⓒ프레시안
몇 년 전부터 유엔 산하 기관인 유네스코와 유엔-해비타트(UN-HABITAT)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 입각한 도시 정책을 소개 보급하는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국제기구들은 르페브르 도시 사상의 핵심, 즉 도시를 특정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집합적 공간으로 보는 관점을 채택하였다. 이들 국제기구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이 전 세계의 도시들에 확산되도록 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에 있다.

첫째, 도시에 대한 권리의 핵심은 도시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 대한 참여 및 존중이다. 도시 정부는 시민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참여를 통한 대화와 시민들의 권능 부여(empowerment)를 촉진할 의무가 있다. 주민들의 참여는 지역 단위의 민주주의, 혹은 좋은 민관 협력(good governance)을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둘째, 도시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집단에 대한 사회적 포용이다. 도시에서 주변적 취급을 받는 집단들을 사회적으로 포용하고 이들을 품위 있고 당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여성, 외국인 이주자, 저소득 노동 계층,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을 강조한다.

셋째, 도시 정부가 앞장서서 빈곤, 사회적 배제, 도시 폭력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빈곤 완화 및 도시 빈민들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노력을 포괄한다. 무허가 정착촌에서 주거권을 보호하는 것, 도시의 공공·사적 공간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 거리에서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등이 인권과 주민들의 권리 증진에 있어 필요하다.

넷째, 도시 행정의 투명성·형평성·효율성이 중요하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 정부와 주민 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의미한다. 계약의 내용은 정부가 효율적이고 평등한 서비스 공급과 자원 배분을-특히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 이주자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보장하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다섯째, 도시 거주자들의 경제, 사회, 문화적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 오늘날 다문화 거주자들의 문화적, 언어적, 종교적 차이가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여섯째, 값싸고 쾌적한 도시 기본 서비스의 공급이다. 자유와 선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도시 기본 서비스가 충족되어야 한다. 생존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도시 서비스로는 깨끗한 수돗물, 전기, 취사 및 난방 연료 공급, 거처 등이 있다. 이처럼 생존과 직결된 도시 기본 서비스는 경제적 지불 능력과 무관하게 공급될 필요가 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의료, 보건, 교육, 대중교통, 주택 등도 도시 정부가 값싸게 공급해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도시에 대한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각 도시가 처한 상황들, 즉 규모, 면적, 자연환경, 소속 국가, 역사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철학은 모든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 생활의 완전한 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보다 정의롭고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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