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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비밀,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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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비밀,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프레시안 books] 김종성의 <뇌 과학 여행자>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혁명을 팝니다>(윤미경 옮김, 마티 펴냄)에 "진짜 여행은 사업상의 여행 하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책은 여행자들이 "현대적인 삶의 소외를 없애줄 참된 경험"을 찾아 헤매지만 그들이 더욱 이국적인 장소를 찾을수록 해당 지역들은 세계 경제의 착취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고 지적한다.

사업상의 여행자는 영적 의미나 지위 재화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관음'의 목적이 없는 거래를 모색하기에 제일 낫다나?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업상의 여행-포괄적으로 '출장'이라 부르자-이 최고의 여행인 것만은 사실 아닌가 싶다. 일단 사정에 따라 '급'은 다르겠지만, 초청을 받았다면 좋은 곳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떠남의 가장 큰 목적이 '구경'이 아니라는 훌륭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어지간한 대인배가 아니라면 여행은 시작 즉시 본전 생각에 시달려야 하는 경험인데, 출장만은 역설적이게도 잘 보고 잘 배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가장 자유로운 편이다. '나, 일은 하고 왔잖아' 이런 식의.

그래서 보통 출장을 가서는, <혁명을 팝니다> 말마따나 더 진정성 있고 특수한 경험을 하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접는다.

왕성한 욕구의 여행자?

그런데 출장을 가서 여행도 만족스럽게 하고, 그걸 책으로도 내는 여행자가 여기 있다. 돼지 한 마리 잡아놓고 뱃살부터 뒷다리, 염통까지 싹 발라먹는 알뜰함과 치밀함이랄까. 그 출장도 느낌이 우아하기로 최고봉인, '학회 참석' 목적이다.

▲ <뇌 과학 여행자>(김종성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울산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뇌졸중센터 소장인 김종성의 <뇌 과학 여행자>(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던 엄마 아빠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면 너도 어~어쩌면 외국에서 초청 받아 임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단다' 하고 덧붙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김종성은 <춤추는 뇌>(사이언스북스 펴냄), <신경과 의사 김종성 영화를 보다>(동녘 펴냄) 등 음악이나 영화 장르와 뇌 과학을 접목시킨 의학 에세이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의사다. 그가 이번엔 여행기에 도전했다. 각 첫 장에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OOO 회사가 주최하는 회의에 자문 차 참석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히는, 좀 특이한 여행기다.

저명한 학자인 그는 프랑스, 영국,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강의나 자문 차 초청을 받을 때마다 스케줄 앞뒤의 시간을 이용해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오후 3시에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 마지막 날에도 아침 8시에 어디론가 떠났다고 하니 엄청난 여행 본능이다.

이런 그가 찾는 곳은 주로 미술관이나 음악가, 작가들의 생가였다. 이국적인 거리를 천천히 묘사하다가, 예술가들의 비극적인 생애로 빠져들더니, 그 사람들이 걸렸던 병에 관해 전문적인 풀이를 읊는다.

'뇌 과학' 덕분에 특별해지는 여행기

책의 제목을 반으로 쪼개 특징을 살펴보자.

앞부분 '뇌 과학'은 전문적인 학술서로 오해하기 쉬운 인상을 준다. 여행이란 단어가 워낙 다양한 의미로 쓰이다 보니, "뇌 과학 지식을 여행한다"는 은유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책의 장르에 대해선 뒷부분에 방점을 찍고 들여다보는 편이 좋다. '뇌 과학'이 주는 딱딱한 느낌을 상쇄시키고 남을 정도의 '여행자'가 등장하니 말이다.

저자는 새하얀 의사 가운을 걸쳤을지언정 "마치 애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선뜻 (호텔) 방문을 닫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붉은 기가 펄펄 도는 여행자다. 또 적재적소에 세계 걸작 문학의 구절을 뽑아 내, 낯선 거리를 익숙하게 꾸며 줄 줄 아는 문장가다. "고골의 <외투>에서 주인공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해진 외투를 바꾸어야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는 설명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찬바람을 주머니 깊숙이 데려다 놓는 식이다. 여기서 예상할 수 있다시피, 저자는 문학, 음악, 그림 모든 분야에 상당히 능통하다.

그렇지만 역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차이는 역시 '뇌 과학'에서 온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여행기가 모두 그러하듯, 화자는 미라보 다리에서 아폴리네르를 말하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감상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떠올린다. 그러나 김종성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신경과 명의로서의 전문 지식을 풀어낸다.

베토벤이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얘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가 앓았던 난청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를 추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진단'의 순간 가장 진지해지면서, 내용의 난도가 '크레센도'로 진행되는 점 또한 매력이다.

병, 삶을 좌우하는 최대의 변인

저자가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배우는" 의사이기 때문일까.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아픔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절절하게 다가온다. 천재들은 왜 그리 말년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까?

근대 프랑스 음악의 기둥으로 평가 받는 모리스 라벨은 말년에 실어증이 심해져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실행증 증세도 심해져 간혹 포크를 거꾸로 들고 음식을 찍어 올리려 하거나 현관문을 어떻게 여는지 몰라 문 밖에 서 있기도 했다고 한다. 언제나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사교계의 총아 알퐁스 도데는 39세부터 척수 매독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결국엔 비틀거리며 남의 도움을 받으며 걷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이나 슈만처럼 오히려 그들이 앓은 질병이 그들로 하여금 작곡에 몰두하도록 하기도 했다. 도스토예스프키처럼 자신의 병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 예도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노먼 게슈빈트의 설명에 따르면 측두엽 간질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지나치게 글을 많이 쓰는' 특징을 갖는 경우도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써냈던 셰익스피어가 바로 이 측두엽 간질을 앓지 않았을까 하는 속설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결과론일 뿐, 아픔은 어쨌든 현재의 삶을 파괴한다. 더군다나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의 질병은 그 증세가 정치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 동시대인들의 삶마저 바꾸기도 한다. 히틀러는 1940년대 들어서부터 엄청난 판단 착오 증세를 보였는데, 그가 앓았던 파킨슨병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소련 침공 당시 멀쩡히 모스크바로 진격 중이던 폰 보크의 군대에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려 소련군이 정렬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게 하기도 했으며 별 이유 없이 죄수 전원을 처형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감동'은 아쉬운 여행기

<뇌 과학 여행자>는 이렇게 역사 속 인물들의 작품과 기록을 토대로 '어떤 병을 앓았을까'를 추리하거나 '이런 병을 앓았기 때문에' 작품이 어떻게 나왔다는 역추적을 해 가며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 나간다. 위와 같은 솔깃한 일화-특히 모파상이니 마네니 정말이지 숱한 이들을 괴롭혔던 당시의 불치병 '매독'과 관련한 성적 일화들-가 계속해서 나오기에 책은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여행을 떠나는 주요 목적인 의학 학회가 선진국의 전유물이어서 그런지, 그가 유럽 문화에 특히나 심취한 탓인지 '선진국 : 비선진국' 구도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구절이 가끔 보인다. 마사이 남자와 결혼했던 스위스의 코리네 호프만을 얘기하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계 최고 부국인 스위스 여자가 최빈국 마사이 남자에게 순식간에 반해서 결혼까지 하고 살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부분이 그 예다. 내용 진행엔 하등 상관이 없겠지만, 순간 저자의 감수성과의 거리가 활짝 벌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결코 독자로 하여금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끔 하는 여행기는 아니다. 물론 정통 여행기도 아닌, 말하자면 역사와 예술을 적절히 섞은 대중과학서에 이런 기대까지 품고 달려든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여기서 여행의 의미를 앞서도 얘기한 은유까지 포함해 확장하자면, 뇌 과학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예술가들의 위대한 삶에 대해 들뜨거나 흥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많은 이야기와 지식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팽팽하게 묶여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뇌 과학 여행자>의 아쉬운 느낌은 앞서 언급한 '최고의 여행'의 특징과 조금 닮은 구석이 있다. 무언가를 보고 말아야겠다는 관음증적 강박이 덜하면서도, 본 목적에 보너스처럼 붙은 살뜰한 여정들. 한마디로 뜨거운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 적절히 즐기면서 따라가면 좋을 거란 얘기다. 아쉽다고 세 단락이나 썼지만 아무래도 이는 <뇌 과학 여행자>의 장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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