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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교통 지옥…"왜 참고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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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교통 지옥…"왜 참고만 있는가!"

[도시 주인 선언·2] 앙리 르페브르와 '도시에 대한 권리'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도시는 과연 사람을 위한 곳인가?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은 정작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진보적 도시 연구 집단 한국공간환경학회와 공동으로 '도시 주인 선언'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현재 시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나머지 시민도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이 기획은 도시의 거주자와 이용자는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인 "도시에 대한 권리"에는 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평등하게 누릴 권리, 도시 공공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권, 도시 행정에 대한 참여권 등 도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권리들이 포함된다. 또 이 안에는 자유롭게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 등 최근에 새로 포함되었거나 되어야 할 권리도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의 도시에서는 생소한 권리도 있다.

앞으로 매주 화, 금요일 두 차례씩 이어질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하여, 지금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도시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이 과연 적절한 수준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침해받거나 무시되는 권리는 없는지,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획을 통해 우리의 도시에서 도시 거주자나 방문자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더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1967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마르크스의 <자본> 초판 출간(1867년)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책을 한 권 쓰기 시작한다.

다음 해인 1968년 르페브르의 이 책이 출간된 직후 프랑스는 68 혁명에 휩싸였다. 르페브르가 교수로 재직했던 낭테르 대학은 68 혁명의 진원지가 되었고, 르페브르는 68 혁명의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막 출간된 그의 책 제목은 68 혁명 주체들이 소리 높여 외친 슬로건이 되었다. 그 책 제목이 바로 "Le droit a la ville(도시에 대한 권리)"였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도시는 다양한 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종의 집합적 작품(oeuvre)"이며, 도시 거주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인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즉 도시 거주자 누구나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누릴 권리, 도시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 1968년 당시 프랑스 파리의 모습. ⓒwikipedia.org

이 책의 제목과 내용 모두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68 혁명이 좌절된 이후에도 르페브르의 영향을 받은 1970년대의 프랑스 활동가들은 "도시를 바꿔라, 인생을 바꿔라(changer la ville, changer la vie)" 같은 구호를 앞세우며 도시 행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한 도시의 변혁을 추구했다.

르페브르가 처음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은 이후 프랑스를 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어 나갔다. 세계 여러 도시들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규정한 조례나 헌장을 제정했으며,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최근 유엔(UN) 산하 기구인 유네스코와 해비타트(HABITAT)는 도시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그램 보급 사업에 착수했다.

르페브르가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르페브르가 누구인지, 그리고 당시 프랑스 도시 상황은 어떠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앙리 르페브르(1901~1991년). ⓒ프레시안
20세기 벽두에 태어난 르페브르는 68 혁명 당시 이미 60대 후반의 유명한 원로 학자였다. 젊은 시절의 르페브르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변증법적 유물론(Le materialisme dialectique)> 등을 집필했고, 장년기에는 농촌 문제와 일상성 비판에 몰두하면서 그의 가장 대표적 저서 <일상 생활 비판(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3부작을 집필했다.

르페브르는 상아탑에만 머물렀던 학자가 아니었다.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프랑스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그렇지만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다가 프랑스 공산당에서 축출되는 등,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 영어판. ⓒ프레시안
인생의 노년에 접어들던 1967년부터 르페브르가 새롭게 관심을 가진 주제는 도시와 공간이었다. 그는 1968년 출간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시발로 하여 1970년 <도시 혁명(La révolution urbaine)>, 1972년 <마르크스주의와 도시(La Pensée Marxiste Et La Ville)> 1973년 <자본주의의 생존(La survie du capitalisme : la re-production des rapports de production)>, <도시에 대한 권리>의 2부에 해당하는 <공간과 정치(Espace et politique)>를 잇따라 집필했다. 마침내 1974년에는 도시와 공간에 관련된 기념비적인 저서 <공간의 생산 (La production de l'espace)>을 완성했다.

노년의 르페브르가 도시에 관심을 집중한 이유는 바로 도시가 현대 자본주의가 여러 모순과 위기에도 망하지 않고 생존하는 비결이자, 자본주의적 관계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재생산되는 곳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르페브르에 보기에 자본주의는 공간과 도시를 계속 생산함으로서 성장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르페브르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전략에서도 기존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시했던 작업장 영역보다, 일상생활 영역인 도시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르페브르의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8 혁명이 발생한 당시의 프랑스 도시 상황을 간단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는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농촌 사람들뿐만 아니라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대거 파리 같은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급격한 도시화의 당연한 귀결로 주택이 부족해지고,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주거비 부담에 대한 서민들의 고통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토지와 주택 영역에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교환 가치 논리가 사람들의 생존 및 생활과 직결된 사용 가치 논리를 압도하였다.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프랑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파리 교외에 대규모 임대 주택 단지를 건설했다. '그랑 앙상블(grand ensemble)'이라고 명명된 이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는 주택 부족 상황에서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해 건설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을 도시와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배제시키고 공간적으로 격리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 프랑스 정부가 1960년대 대량 건설한 파리 근교의 주거 단지 그랑 앙상블. ⓒwikipedia.org
르페브르는 당시 프랑스에 새로 건설된 서민 주거 단지가 극도로 단순화된 주거 기능, 즉 단순 거주처의 기능만 할 뿐, 일상적 삶의 터전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 프랑스에서 도시 폭동이 일어난 곳이 바로 당시 르페브르가 비판했던 그랑 앙상블 지역이었다). 서민들은 교외로 쫓겨난 도시 중심부는 권력과 자본, 정보를 갖춘 부유층과 불로소득 생활자들이 독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당시 프랑스 도시 상황 속에서 르페브르는 도시에서 자본의 이윤 추구 논리, 즉 교환 가치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존 및 생활의 논리, 즉 사용 가치 논리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시에서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되기 위해서는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 르페브르의 주장이었다.

르페브르가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여러 권리들이 모아진 총체적 권리이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는 도시 공간에 대한 전유(appropriation)의 권리와, 도시 행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였다.

전유는 소유와 대조되는 권리 개념이다.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만든 집단적 작품인 도시 공간을 한 개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 시장에서 상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권리가 소유권이라면, 도시 거주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필요와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도시 공간을 사용하고 변형시킬 수 있을 권리가 바로 전유권이다.

한 예를 들자면, 탑골 공원에 모이는 노인들은 공원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나 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재지주가 소유한 토지에서 수십 년 동안 무허가로 정착하고 있는 도시 빈민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유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와 시위를 위해 거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거리나 광장을 소유하지 않으나 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르페브르는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 공간의 사용과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 즉 도시의 행정 및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했다. 르페브르가 보기에 참다운 도시 생활의 실현은 거주자들이 도시의 모든 영역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요구를 주장함으로서 가능해진다. 참여를 통해 도시 거주자들은 도시 생활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결국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외에도 르페브르는 차이의 권리, 정보의 권리 등을 도시에 대한 권리의 구성 요소로 강조하였다.

이러한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은 당시에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엔 산하 기구가 적극 수용할 정도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보편화되고 있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 전 세계의 도시들에서 신자유주의 추세, 즉 주민의 생활 편익보다는 부동산 자본의 이윤 추구 논리가 더 득세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 및 대항 담론으로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을 포함한 르페브르의 도시 사상 전반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서구 학계에서는 이른바 '르페브르 학문 산업' 이 번창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르페브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상당히 난해하지만 독창성과 함의가 풍부한 르페브르의 도시 사상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담론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르페브르의 사상은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특히 르페브르가 쓴 도시 관련 서적들은 국내에 번역된 것이 거의 없다. 최근 <공간의 생산>(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이 나온 게 다이다. 국내 도시 연구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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