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10대와 30대의 공통점, 사망 원인 1위는 바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10대와 30대의 공통점, 사망 원인 1위는 바로…

[공작의 꼬리 경쟁·29] 경제 성장률과 자살 성장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약 20년 동안 또 하나의 초고속 성장의 기록을 달성한다. 바로 자살률 400퍼센트 증가라는 참담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고속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2명이 자살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9년에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했으며 이는 2008년에 비해 약 20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원래 한국은 자살률이 비교적 낮은 국가였으며, 이러한 높은 자살률은 아주 최근에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1982년 대한민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가 6.8명으로 OECD 국가들 중에 하위권이었다. 2005년에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24.7명로 OECD 자살률 1위를 차지했으며, 그리고 2009년에는 31명으로, 우리는 자살 성장률에서 다른 모든 OECD 국가들을 초월했으며 벨라루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살률이 높다.

한국은 자살률이 일본보다 약 20퍼센트 높고, 중국, 홍콩과 폴란드보다 2배 높고, 미국 보다는 3배, 바레인이나 그리스보다는 10배, 바하마나 페루보다 30배, 자메이카보다 약 300배 높다. 그리고 OECD 회원국 평균치 11.2명의 2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10대의 경우엔 2008년 자살률이 42퍼센트나 증가하면서 2009년에는 '자살'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30대 역시 자살이 사망의 제1 원인이 되었다.
(☞관련 기사 : 자살률 '무서운 상승곡선')

ⓒ통계청

인구 10만 명당 28명이라는 숫자는 전쟁 때 사람들이 받는 높은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보다도 매우 높은 수치다. 미국 국방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의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2005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9.9명이었다. (☞관련 기사 : 초고속 자살 성장 사회)

▲ OECD 회원국 자살률 비교. (☞관련 기사 : 4만 달러 미국, 2000달러 부탄보다 행복할까) ⓒ한겨레

경쟁이 강화될수록 높아지는 자살률

한국 사람들의 자살률이 전시 병사들의 자살률보다 약 40퍼센트 높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전시의 병사들이 받는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에밀 뒤르켐의 연구에 따르면 공동체의 해체와 사회의 유대가 약화될수록 자살이 증가한다고 한다. 차등화를 통한 소득 불균형은 서열 형성과 함께 서열 소비와 경쟁 증가를 초래한다. 경쟁 증가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사회의 구성원 간의 불신이 커지게 한다. 개인이 고립되고, 공동체의 유대가 약화되어, 우울증이 증가하며, 뒤르캠의 연구 결과와 같이 자살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로버트 레인은 과중한 직장 일로 인한 여가 감소와 소비문화가 우울증과 공동체 유대 약화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산업화와 소비문화 이전에는 우울증은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예를 들면, 뉴기니의 칼룰리 족에게는 절망, 우울증 또 자살 등은 알려지지 않은 현상들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층의 가파른 자살 증가의 원인으로 성공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경쟁에 실패하거나 구직의 실패가 그 원인일 수 있다고 한다. 건국대학교 교수 하지현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취직 자체가 안 돼 사회 구성원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박탈감이 이들을 자살로 모는 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 문제나 질병문제가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로 연결 된다고 한다. 전 서울대학교 교수 한상진은 "경쟁 사회에서 자기실현의 길이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는 절망감 때문에 젊은 세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교육 경쟁과 구직 경쟁 등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는 서열에 의해 가치가 형성되고 승자와 패자가 필연적으로 구분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이가 일등하고 모두 일류 학교에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작품에 만족을 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사생 대회에서 1등을 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의 평가에 의한 서열의 강조는 비교 우위나 등수 외에는 다른 가치가 발 디딜 틈이 없게 만든다. 구성원들이 그 유일한 평가 기준에 미달되었을 때 그들은 절망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1980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 소득 또한 크게 증가했다. 같은 시기에 자살률 역시 국민 소득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신속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전체 자살자의 5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이 경제적 이유에서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소득이 느는 시기에 오히려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는 경쟁 증가가 효율을 높이고, 그리고 경제를 더 성장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졌다.

경쟁은 주위 사람들을 싸워서 이겨야하는 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 자신은 적으로 둘러싸인 외로운 인간이 된다. 이러한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 만연될 때, 그리고 이런 외로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먼저 희생되는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만이 희생자가 아니다. 우리는 경쟁 논리라는 높은 성을 쌓아가고 있다. 성벽이 높고 견고할수록 주위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바로 그 성을 쌓는 행위가 이웃을 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 성 안에 갇혀 점점 더 외로워지며, 그 성벽이 높아갈수록 주위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경쟁 사회에 진출을 대비하는 학생들은 먼저 입시 경쟁에 시달린다. 구직 경쟁에서의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먼저 입시 경쟁에서 성공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 하더라도 입시 경쟁에서의 성공을 강요한다. 등수를 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가치란 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 많은 아이들이 삶의 가치마저 잃어간다. 아래는 고층 아파트에서 단짝과 함께 투신자살을 한 어느 중3 여학생의 유서의 일부분이다. 두 학생은 꼭 부둥켜안은 채로 아파트 경비원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4년 전 자살한 여중생 유서 살펴보니)

솔직히 요즘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1등 했던 게 엄청 많이 후회된다.
차라리 그때 80점, 85점을 맞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압박받진 않았을 텐데….

죽고 싶다는 생각은 100번도 넘게 해봤습니다.
죽으면 끝날까
죽으면 편해질까….
이대로 죽기엔 15년 밖에 못 산 내 인생이 너무 아깝지만
계속 이대로 사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
이대로라면…남은 8년이 정말 자신이 없다.

죽음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삶에 아무런 낙이 없다면서요.
…지금 저도 그렇습니다.
살아갈 가치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카나리아 새들과 토끼들

옛날 석탄 광부들은 땅속 채굴장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 새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갱도 안의 공기가 희박해지고 무색무취인 일산화탄소와 같은 독가스가 차더라도 광부들은 종종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카나리아 새는 일산화탄소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새는 갱도에 일산화탄소가 가득차면, 그 영향으로 몸이 많이 흔들리는 증상을 보임으로써 광부들에게 위험 경고를 보낸다.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는 예술가들을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하였다. 구식 잠수함에는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가 없었기에 산소가 희박해지고 일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이를 빨리 감지해서 물 밖으로 나와 새 공기를 공급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소가 희박해지는 것을 알리는 경보 장치가 없었기에 그 대용으로 토끼와 같은 민감한 동물을 사용했다.

잠수함 안의 공기가 부족해지면 토끼는 사람보다 먼저 그 영향을 받는다. 만약 토끼가 죽는다면 머지않아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이니, 빨리 물 위로 올라가 새로운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잠수함의 토끼와 같이 이 사회의 위험을 알리는 파수꾼이고 경보장치다.

사회의 공기가 썩어갈 때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얘기하여 다가오는 위험을 사회에 알려준다. 자살하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가 오염되어 살기가 힘들어 지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반응하고, 토끼처럼 목숨으로 그 위험을 경고해주는 것이다.

잠수함에서 산소가 희박해지고 독소가 퍼져가듯이, 이 사회가 서서히 경쟁 논리, 무관심, 냉소가 퍼져갈 때에 이들이 토끼와 같이 서서히 질식해 간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을 패자로 부르며, 경쟁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로 치부하고, 자신이 패자가 아니라는 안도와 함께 승자가 되기 위해 더욱 경쟁 논리로 무장하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그 논리의 독소가 이미 자신을 덮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의 승자는 패자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여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승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역시 어느 순간 패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항상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불안감은 우리를 더욱 더 경쟁의 독으로 무장하게 한다. 그래서 승자 역시 경쟁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승자는 패자를 냉소와 멸시로 대하고, 패자는 승자를 원망과 질시로 대하여 구성원들이 따로따로 고립되어 간다.

토끼가 죽어 갈 정도로 잠수함에 산소가 희박해졌을 때에는 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빨리 물 위로 올라가야 하듯이 이 사회도 자살률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구성원 모두가 한 잠수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