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서평자를 잘못 선택한 것이지만 어쩌겠는가. 내 자신도 책을 만드는 일을 해보아서 알지만 좋은 필자를 택할지는 운수에 달린 문제이고, '프레시안 books'도 나도 운이 없었던 셈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오랫동안 폐업하다시피 했던 문화 평론의 자리로 돌아와서 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 책의 분석 대상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논의되는 아이돌 그룹의 인터넷 동영상도 찾아서 함께 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동영상을 보는 한 나는 문화적 소비자의 위치에도 있어야 했다.
▲ <아이돌>(이동연 외 지음, 이동연 엮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
H.O.T가 등장한 것이 1996년이니 아이돌 그룹도 15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 시작에 무관심했던 내가 그 역사의 끝에 서있는 소녀시대의 'Gee'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향유 불가능성이다. 나는 그 음악을 향유할 수 없다. 단지 인류학적 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이 책에 인용된 어떤 이의 말처럼 "18개의 허벅지가 나란히 서있는 것에서 정말로 숨 막히는 욕정을"(201쪽)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은 페티시한 측면 혹은 모에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그런 페티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어떤 문화적 접촉이 어긋난 집단이나 개인 사이에서 그런 것이 단번에 구성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Gee'를 비롯한 몇 편의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아이돌 그룹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뿐이었는데, 대상이 음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향유되지 않기 때문에 인지적인 면으로 경사되는 것 같았다.
스타 vs 아이돌
우선 첫 번째 떠오른 질문. 왜 아이돌 그룹은 아이돌일까? 단지 관습적인 듯이 보이는 이 명칭이 뜻밖에도 이들의 특성을 잘 포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동연은 이 문제를 논점으로 다룬다(1부 1장). 하지만 나는 그처럼 스타와 아이돌을 연속성상에 놓는 것보다 둘 사이의 차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와 달리 아이돌은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 약화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타는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빛나지만, 우상은 내가 집안에도 모실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이다. 자신의 숭배 대상을 자신 가까이 끌어오려는 수용자들의 적극적 태도가 아이돌이라는 명칭 안에 예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돌>에 실린 많은 글들에서 드러나듯이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현상 분석의 초점이 스타덤이 아니라 팬덤이 되는 이유로 보인다.
스타와 아이돌의 차이를 좀 더 살펴보자. 스타는 거리감을 가진 존재일 뿐 아니라 유니크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우라를 지닌다. 하지만 아이돌은 거리감이 붕괴된 존재이며 유니크하지도 않다. 그들에게는 어떤 설정된 캐릭터가 덧 씌워져 있어서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도 이상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거리감이 사라진 만큼 팬들을 "상상된 친밀성"(179쪽)의 영역으로 인도되지만, 리얼한 모습이 아니라 캐릭터 같은 존재인 아이돌 그룹은 '리얼(the Real)'에 대한 탐구를 유발한다. 이런 리얼에 대한 탐구는 그 리얼에 도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민우가 유승준이나 재범 혹은 타블로와 관련된 스캔들 분석에서 보여주었듯이(2부 3장) 팬들은 아이돌에게서 우연히 자신들이 리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병역 문제 혹은 오래전에 인터넷 상에 남긴 메모 따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리얼이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다를 때 그들은 아이돌을 손 안의 피규어처럼 부숴 버리려고도 한다. 왜냐하면 아이돌은 팬인 '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으로 인해 부와 명성을 얻는 존재, 즉 '내' 덕분에 과도하게 향유하는 존재이므로 그 향유의 한 조각을 '나'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팬들의 관심이 리얼로 이끌리면 문화 산업은 그것을 다시 새로운 상품화의 전략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빅뱅의 <리얼 다큐 빅뱅>는 그 전형적인 예이며, 우리 방송에 차고도 넘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캐릭터인 아이돌을 유니크한 존재로 재구성하려는 연예 산업과 값싸게 방송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방송 산업의 협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우리를 아이돌의 리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김보년이 상세히 분석하고 있듯이(3부 1장)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후면을 전경으로 이끌어내는데, 그런 후면의 전경화는 후면을 전경화된 후면과 후면의 후면으로 분할할 뿐이다. 이 과정은 아이돌을 과도한 감정 노동에 시달리게 하며, 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무대화하는 고통을 낳을 뿐이다.
솔로 vs 그룹
다시 'Gee'로 돌아가 보자. 나에게 'Gee'를 보는 체험은 반복되는 최면적 멜로디와 여러 명의 소녀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폭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가 폭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소녀들이 다수여서 시선을 끊임없이 탈중심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두 번째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왜 아이돌 그룹은 그룹인가? 차우진과 최지선의 연구(2부 1장)를 보면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는 증대되는 과정을 밟아왔다. 왜 그런 것일까?
<아이돌>의 여러 연구가 공통되게 지적하듯이 아이돌 그룹은 연예기획사가 가수를 발굴하고 교육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의 수립과 더불어 탄생했다. 따라서 연예기획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해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연예기획사는 SM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의 2강 2중의 과점 구도라고 한다.
당신이 연예기획사의 직원이라고 생각해보고 어떻게 하면 음악 사업에서 성공할지를 생각해보라. 우선 가수의 공급이 있다. 이 문제에 관한한 권경우(3부 5장)가 분석했듯이 연예기획사는 풍부한 공급원을 가지고 있다. 마치 한국 사회의 대기업이 일류 대학을 나온 스펙 좋은 대졸자를 입맛대로 골라 쓸 수 있는 것처럼 과점적인 대형 연예기획사는 인기와 부를 추구하며 스스로를 훈련해온 숱한 지원자에 둘러싸여 있다.
문제는 가수의 공급이 아니라 소비자들이다. 문화 산업은 오랫동안 이 소비자의 변덕을 파악하고 가능하면 통제하려고 애써왔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할리우드는 1950~60년대에는 어떤 영화가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적은 제작비 영화를 다수 만들고 제작과 배급을 모두 통제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했다.
하지만 제작과 배급을 모두 통제하는 것이 독점 금지로 인해 불가능해지자 거대한 제작비, 최고의 배우, 제작 설명회와 이벤트를 통한 노이즈 마케팅, 판권 산업과의 연관 수립, 캐릭터와 책과 음반 산업의 결합 등을 수반하는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소비자들은 완전히 예측되지도 통제되지도 않았다.
아이돌 '그룹'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시도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은 개별 가수와 달리 유니크하지 않다. 유니크한 존재는 커다란 카리스마를 가질 수도 있지만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룹은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기획사의 의도와 이미지 형성에 종속되고 따라서 개별자의 불확실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그룹은 소비자가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의 수를 늘리고 멤버들을 캐릭터화해서 개개인과 그들 간의 관계를 서사화활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그룹은 한류를 타고 초국적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멤버 중에 교포나 한인 2, 3세 또는 외국인을 끼워 넣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또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개별 멤버가 기획사의 통제로부터 이탈할 능력도 제약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그룹의 음악을 소화하는 습관을 형성함에 따라 그룹 멤버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나이 먹는 아이돌 vs 늙어가는 팬들
아이돌 그룹을 이해하는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미 아이돌 그룹의 역사가 15년이나 되었다는 점이다. 아이돌 그룹의 시간적 축적을 염두에 둔다면, 김수아와 김성윤이 분석하고자 한 걸그룹의 성적 이미지 전략과 남성 팬덤, 특히 '삼촌 팬' 문제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3부 2장, 3장).
핑클이나 S.E.S 같은 초기 걸그룹은 멤버들의 연령이 상승함에 따라서 앳되고 순수한 소녀적 이미지와 어긋나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보기에 마찬가지 현상이 팬들에게도 일어난 것 같다. 10대에 아이돌 클럽의 팬으로 자란 1세대가 이제 30대에 진입해 있다. 그들에게 이제 걸그룹의 음악은 일종의 어덜트 콘템포러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걸그룹이 생산하는 이미지 때문에 음악과 소비자의 연령상의 자기 이미지 사이에 부정합이 생겨난 것이다.
이 부정합의 궁지를 생산자 쪽에서 벗어나는 전략의 하나가 걸그룹의 이미지를 앳된 소녀 이미지와 관능적인 이미지를 뒤섞는 것이고 팬들로부터 나온 전략이 '삼촌 팬'이라는 표현을 통해 아이돌 그룹과 팬 간의 성적 연상의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삼촌 팬'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관계의 리비도적 순환을 제어하기 위해서 친족 호칭을 사용하는 우리 사회의 관행(예컨대 나는 백화점에 가면 점원들에게 갑자기 '아버님'이라고까지 불리는데, 정말 기분 이상하다. 내 연배의 사람들 중 일부는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언니'라고 부르는데, 정말 엽기적이다)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 시스템 속에서 피어난 꽃은?
최근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 혹은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은 대형 연예기획사와 아이돌 그룹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이 문화적 우세종으로 군림해왔음을 말해준다. 이런 축적 과정은 일종의 문화적 자기 정통화(self-legitimation)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문화적 정통화의 욕구를 가장 잘 예시하는 것은 <아이돌>이라는 책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이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그들을 둘러싼 문화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는지와 무관하게 이 저서는 아이돌 그룹이 진지하게 탐구할 만한 지위에 이르렀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난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이 단번에 그런 탐구 대상의 지위를 획득한 것에 비하면 아이돌 그룹은 아주 긴 시간이 걸린 셈이고, 그 이유는 아이돌 그룹 멤버에 대한 기획사의 지배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이돌 그룹은 자신들을 다루는 최초의 연구서를 획득하는데 이르렀다.
실제로 이 책에 수록된 진진한 연구들의 행간에서 묻어나는 것은 필자들 중 다수가 아이돌 그룹의 팬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깊은 비판의식과 더불어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세대적 음악 경험의 자기 확증과 자기 승화 그리고 팬덤 자신의 문화적 자기 정통화의 첫걸음인 면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돌 그룹의 역사 속에서 음악적으로 순금인 부분이 무엇인지를 더 적극적으로 해명해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록 음악은 신중현으로부터 자신의 계보를 그려낸다. 이 계보는 단지 그렇고 그런 계보의 역사가 아니라 후배들이 지향하는 예술적 자의식의 지향점을 의미한다.
신중현의 음악이 미군 부대라는 시스템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던 것처럼 아이돌 그룹이라는 시스템적 음악에서도 어떤 꽃들이 피어났을 것이다. 그 음악의 계승자와 소비자들이 그 꽃들에 대해서 말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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