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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살인'은 늘고, '스티브 잡스'는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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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묻지마 살인'은 늘고, '스티브 잡스'는 없는 이유는?

[공작의 꼬리 경쟁·26] 경쟁과 이분법

경쟁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이분법적 평가가 기본이다. 서열 역시 이분법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이분법은 모든 것을 성공 아니면 실패, 정답 아니면 오답, 승자와 패자, 적 아니면 아군, 잘난 사람 아니면 못난 사람, 나쁜 사람 아니면 좋은 사람, 삶 아니면 죽음 등과 같이 단순하게 이해한다. 이분법적 이해는 극단만을 강조하게 되고 그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사물이나 인간이 갖는 여러 다양한 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이분법적 단순 논리는 다양성과 개성을 억압하고 복종과 순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는 패배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패자가 되어야 하는 적대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경쟁과 적대감

경쟁의 목적은 오로지 승리뿐이고, 상대는 승리에 방해가 되는 적이다.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려면 반드시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한다. 그래서 심한 경쟁 상태에서는 모든 상대들은 물리쳐야만 하는 라이벌이며, 그들에 대한 동정, 우정, 연민과 같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경쟁으로부터 동기를 부여받고 라이벌 의식으로부터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더 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이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직장인들은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주 자신의 아이들을 주위의 친구나 친척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한다. 특히 공부 잘하는 주위 아이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아이에게 압력을 가하곤 한다. 이러한 비교와 그에 포함된 가치는 아이들이 더욱 경쟁적으로 성장하게 만들며, 그들이 공부하는 중요한 동기는 공부 자체보다 경쟁의 승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주목표인 상황에서는 지적 능력 성장과 같이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은 포기하더라도 단지 시험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암기 위주의 교육과 같은 것이라도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

경쟁을 통한 라이벌 의식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은 경쟁이 팽배한 사회의 틀 안에서 성공한 소수에 초점을 맞추면 그럴듯하다. 성공한 소수는 마치 경쟁이라는 잘 짜인 세세한 망을 통과해가는 작은 자갈과도 같다. 그들은 입시 경쟁에서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취미, 성격, 능력으로 두드러진 부분들을 없애는 고통을 거쳐 한없이 작아져야만 그 망을 통과 할 수 있다.

이 세세한 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감수성이 강하면 안 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도 안 되고, 창조력이 강해도 안 되고, 괴짜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면 그 세세한 망을 통과하지 못하는 큰 자갈로 걸러지고 패자로 남게 될 것이다.

패자들은 오히려 성장하여 사회의 여러 방면에 도움이 되는 독특한 능력과 가능성을 소유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심한 경쟁 때문에 풍부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들을 패자로 낙인찍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승리한 사람들 역시 라이벌 의식에 의한 동기 부여가 아닌 자신 고유의 취미나 욕구에 의한 것이었다면 더 많은 업적을 이루게 되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입시 경쟁에서 성공하여 한국의 최고 대학에 가고 또 학업을 계속하여 유명한 과학자가 되어 많은 업적을 달성하였다고 하자. 그 학생은 물론 등수, 서열, 라이벌 의식 등 그 경쟁의 가치를 소화하고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1등 해야 하며 남을 제치고 이겨서 일류 대학에 가야한다는 그러한 강요된 가치를 안고 가야 하는 사회에서, 성공한 학생만을 보고 그 가치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욱 진취적으로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협동하는 사회였다면 더 많은 업적을 이루었을지 모른다. 그 학생이 성공(승리) 했다는 사실로부터 경쟁의 가치가 긍정적이라는 가치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그리고 과도한 입시 경쟁 때문에 낙오하는 많은 인재들뿐만 아니라 승자이든 패자이든 그들이 잃은 재능, 열정, 창조성 등은 부정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경쟁의식 또는 라이벌 의식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독소일 것이다.

경쟁에서는 상대가 지는 것은 내가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대가 잘못하고, 잘못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며, 나의 만족을 상대의 불행으로부터 얻게 될 수 있다. 즉 사람들은 상대가 잘못되면 만족해하고 심지어 자신의 이해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미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예를 들면 '묻지 마 살인'과 같이 다른 원한 관계나 이해관계 없이 그냥 미워서 다른 사람을 해치기까지 한다. 경쟁으로 인한 적대감 형성과 심한 라이벌 의식은 결국 경쟁을 위한 경쟁이 되어 상대의 불행과 자신의 만족이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라이벌 의식은 상대가 실패해야 내가 성공한다는 경쟁 상태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급우가 같이 놀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갖는 친구로서 인식되기보다는 라이벌로 인식되어 단지 이겨야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라이벌은 어떤 한 인간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승리라는 나의 목적 달성과 연계된 방해물 정도로 전락하게 된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함께 삶을 영위하는 동반자로 여겨지기보다는 탈 인간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예를 들자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두 가지 분류에서 한 사람은 그의 인간성과 같은 핵심은 없어지고, 질시의 대상인 고소득층이나 멸시의 대상인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저소득층을 멸시하거나 고소득층을 질시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서의 한 사람을 질시하거나 멸시하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만나 그들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즉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어떤 기쁨과 고통을 겪어 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희망은 무엇이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단지 부자라고 질시하고 단지 가난하다고 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우리는 한 인간이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이라는 서열이 주는 정의에 의한 구분을 벗어나 그 사람을 진정한 인간으로 알고 이해하게 된다면 적대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 경쟁 사회에서는 고소득이나 저소득과 같은 분류가 강조되고 다른 중요한 것들은 아예 무시한다.

경쟁은 차등화에 바탕을 두며, 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적대적 관계로 설정 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경쟁의 강화는 학교에서 우열반의 구분, 아파트 평수에 의한 구분, 일류 또는 이류 등의 등급에 따른 대학의 구분, 직위의 고하에 의한 구분, 소득의 양극화에 의한 소득 구분을 강조한다. 이러한 서열에 따른 사회의 분리는 경쟁이 강화 될수록 심각해진다. 사회의 분리가 심각할수록 서로가 서로를 질시하고 멸시하는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적대감과 라이벌 의식이 팽배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돕고 배려하는 성향이 약해진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라이벌로 여기고, 또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라이벌로 여긴다고 생각하기에 진정한 대화를 하기 어렵고, 친구로서 유대를 형성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각자는 외로운 존재로 고립되어 간다.

▲ 경쟁에 의한 이분법적 평가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당대의 상식에 반하는 혁신은 불가능하다. 스티브 잡스 애츨 CEO. ⓒ뉴시스=로이터

경쟁과 복종심

경쟁에 의한 평가는 승리 아니면 패배와 같이 이분법적이거나 그의 연장인 일차원적으로 그 평가 기준이 단순하다. 시험을 통한 정답의 개수에 따른 평가, 어떤 물건의 시장 가격에 따른 평가, 육상에서 시간 기록에 의한 평가, 연봉이나 국민소득과 같은 숫자에 따른 평가, 이윤에 따른 기업 평가 등이 바로 그 사례다. 사람의 성격, 취미, 능력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러한 단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쟁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인간이 갖는 다양한 면은 무시되고, 등수나 소득과 같은 단일한 평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아서 콤은 경쟁은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을 추구할 때, 그리고 한 가지 규칙을 따르는 데 동의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경쟁자들이 상대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게 된다. 그래서 만약 한 가지 가치에 순응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경쟁을 강요하고 숭배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등수에 따라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정렬된 서열에서 각자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을 평가해야 하며, 그러한 평가 외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모든 다양한 면들은 무시하게 된다. 특히 경쟁에서 승리하려 한다면 그런 다양한 측면은 무시하고, 오로지 경쟁에 매진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단순한 평가 기준에 따른 서열이 주는 한 가지 가치에 의존하고 행동한다. 예를 들면 과열된 입시 경쟁에서 성적 평가에 의한 등수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고, 그 기준에 대입의 성패가 좌우되고 그리고 인생이 좌우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등수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이제 서열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되고, 그 서열을 결정하는 경쟁의 규칙과 가치는 모든 사람이 복종하고 순응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창조는 단일 가치에 복종하고 따르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경쟁이 강한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실패할 위험 부담이 큰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창조적인 실험을 하기보다는, 먼저 순응적으로 되어야 하고 요구하는 것들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자면, 대학 입시 성공을 위해서는 한 학생이 갖는 창조성을 찾아내어 키우기보다는 주어진 과목들의 예상되는 문제들을 열심히 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창조는 기존에 받아들여진 것들을 의심하거나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세가 중요하지만, 단지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권위나 교수나 선생의 방법에 도전하기보다는 순응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러한 경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는 죽어가게 된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갈릴레이가 그 시대에 현존하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천동설이라는 정답이 있으니 그냥 그 정답을 받아들인다면 종교 재판이라는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의 많은 획기적 공헌은 기존의 관점에 대한 복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등의 예술 분야와 사회의 진보에 기여한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획기적 상품을 개발한 사람들 역시 기존하는 것들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기보다는 의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노력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여러 방면의 천재들은 일면 그 시대의 반항아들이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괴짜였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질서나 가치에 대하여 회의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도전하는 자세로부터 그들은 묵은 것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단순한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지루한 암기 위주의, 그러나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서는 풍부한 감성이나 상상력을 소유하고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진 모험심이나 도전정신이 강한 아이들, 기존의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고안해 내는 창의력을 가진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괴짜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는 아이들, 그 외에 수많은 다양한 능력을 소유한 아이들의 낙오를 강요당한다. 입시 경쟁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재능들은 무시되고 좌절되어 사라지고 강요된 순응과 복종만이 남게 된다.

다양한 재능들의 도태를 막고, 반항아들이나 괴짜들이 받아들여지고, 그리고 그 괴짜들의 모험이 성공하지 못해도 패자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는 사회는 극단의 경쟁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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