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그런 낭만적 기대를 가지고 책을 집은 사람을 낚아챌 듯한 기세로 올곧게 기록에 집중한다. 이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이 아니다. 기록이고 역사이면서 또 소설이다. 초국적 제약 회사 사노피-아벤티스의 프랑스 로맹빌 공장 노동자들, 줄여서 로맹빌의 노동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 <우리 공장은 소설이다>(실뱅 로시뇰 지음, 이재형 옮김, 잠 펴냄). ⓒ잠 |
이 긴 역사를 소설로 만들고자 작가는 사전 취재로 몇 명의 등장인물을 만들었다. 물론 이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지만 아주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일곱 시간 동안 840번 동안 팔을 올리고 내리는 과정을 되풀이해 840개의 약상자를 만들어 내, "승모근이 딱딱해지다 못해 빗장이 잠기듯 굳어 버린" 공장 노동자 지젤을 현실에 없는 가짜 인물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공장 파업이 시작된 후 회사 통제관의 "잠깐 좀 보자", "오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에 겁을 먹는 프랑크가 소설 속에나 나오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까봐 금요일 오후나 휴가 때를 골라 해고를 통보하는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다음, 묵묵히 공장에 나와 출근 투쟁을 하지만 그동안 일하던 곳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너무나 힘든" 마리-로르가 없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98년 로맹빌 공장은 폐쇄 통보를 받는다. 몇 년에 걸쳐 완전한 폐쇄 발표를 들은 마리-로르는 "우리는 지금 우리의 부고장을 읽고 있다"고 말한다. 옆 동료도 맞장구를 친다. "심지어는 임종 일정표까지 있다고. 내가 영어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우리는 10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은 죽을 예정이라고."
이 제약 연구소, 공장의 폐쇄는 단순히 경제적 구조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마케팅에 지배당하면서 결국 돈 되는 약장사에만 집중하려던 결과가 빚어낸 것이었다. 공공 건강의 개선과 주주들의 이익은 일치될 수 없었다. 장기간 치료 기간이 필요하고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소비자'가 확보된 '상품', 즉 암이나 비만, 심혈관 질환 등에 사용되는 제약에 집중하는 것이 주주들의 전략이었다.
돈 안 되는 약은 안 만들겠다는 이런 사업 마인드 때문에 빈곤 국가들의 환자들이 가벼운 병에 걸렸어도 약을 사지 못해 죽어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악성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게 된 환자도 항생 물질 요법 연구 센터가 없어지면 새로운 약을 얻을 길이 없게 된다. '또 연구해서 만들면 될 것 아닌가', 하기에는 한번 연구소가 폐쇄되었을 경우 그 노하우를 되찾아 새로운 병원체를 이해하고 처방을 내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로맹빌은 항생 물질을 연구하는데 유럽 최고의 수준을 갖춘 제약 연구 센터였다. 로맹빌 노동자들은 대학에서 최소 투자로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법만 배우고, 오직 주식 시장의 흐름만을 응시하며 기업을 꾸려가는 경영자들이 어떻게 건강에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고 탄식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숨만 쉬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네레이스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장 논리에 제약 사업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제약 본연의 목적, 환자를 구제할 수 있는 양질의 약을 공급하는 사명을 성취하도록 사노피-아벤티스 제약 회사와 국립과학연구센터, 국립보건의학연구소 등 공공과 민간이 협동해 로맹빌 연구소와 공장을 계속 운영한다는 구상이었다.
로맹빌의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제약 기술과 지식을 이윤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중단할 수 없다는 기치를 세우고, 혁신적인 기술을 발견할 때마다 사측에 가장 먼저 소개하는 내용의 계약서까지 준비해 경쟁 업체가 기술을 먼저 이용하지 않도록 사노피-아벤티스의 시장 경쟁력을 보장할 계획까지 제안했지만 사측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실패하도록 온갖 수단을 사용했다.
네레이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로맹빌 연구소와 공장을 완전히 폐쇄하는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노동조합에서는 사측에서 자신들의 시스템만이 유일하게 유효하며, 시장의 법칙이야말로 사람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자연법칙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직원들이 독자적인 방법으로 또 다른 제약 산업이 가능하다는 사실, 대안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점일 거라고 회고했다.
로맹빌 노동자들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설이다. 아직도 '메이데이'는 없고 '근로자의 날'만 있는 한국, 노동자라고 하면 화내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동하는 이 사회에서 노조 결성, 파업 등의 활동은 툭하면 밥그릇 싸움이라고 질타를 받는다. 2008년 촛불 집회 현장에 나왔던 노조 깃발이 끝내 시민과 끈끈한 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은 이런 밥그릇 싸움 취급하는 전반의 인식이 컸을 것이다.
'뭐 하러 저 사람들 밥그릇 불려 주나', 하면서 나, 우리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된 노동자들은 사실은 <우리 공장은 소설이다>에 나오는 지젤이고 마리-로르고 프랑크고 <밥, 꽃, 양>의 아줌마들이고 영희, 철수고 김 과장 이 대리이며 그리고 우리 모두다. 우리에게도 네레이스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다 같이 밥 먹자는 거라고. 밥은 다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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