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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축의 시대'에서 '각성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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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축의 시대'에서 '각성의 시대'로!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카를 야스퍼스의 <위대한 철학자들>

석가탄신일 그리고 축의 시대

5월 10일은 석가탄신일이다. 인류의 사표가 되는 존재로 우뚝 선 석가는 인간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밝혔다.

석가와 함께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공자가 출현했던 기원전 5~6세기의 시대를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The Axial Period)"라고 불렀다. 원제목은 "거대한 변화(The Great Transformation)"이나 그 다룬 시대의 정신사를 야스퍼스의 명명에 따라 <축의 시대>(정영목 옮김, 교양인 펴냄)라고 번역한 카렌 암스트롱의 책도 얼마 전 출간된 바 있다.

카를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독일어 판 : 1949년, 영어 판 : 1953년)에서 바로 이 "축의 시대"를 다루면서 이 시기와 우리의 현실이 맺고 있는 관계를 이렇게 짚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역사의식까지도 다름 아닌 축의 시대가 형성한 개념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축의 시대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사에 그 본질적인 모태가 되는 사고의 틀을 만든 존재들을 그의 <위대한 철학자들>에서 정리해낸다. 원저는 1권에서 4권까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이 가운데 1편에서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그리고 예수를 다룬 장만 뽑아 <위대한 사상가들>(권영경 옮김, 책과함께 펴냄), <철학 학교 / 비극론 / 철학 입문 / 위대한 철학자들>(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로 내놓았다.

그런데 원저를 보면 우리는 카를 야스퍼스가 이 네 이름을 거론하면서 철학사 전반을 어떻게 파악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들 네 인물을 "영원한 현재적 존재(eternal contemporaries)"라고 부르면서, 이들은 인류 정신사의 기초를 세운 "기준틀이 되는 개인들(the paradigmatic individuals)"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요즈음 생각이나 발상 내지 개념의 틀과 관련해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이 일상에서도 쓰이는데, 그 본래의 의미란 본보기, 모범, 범례, 기준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네 사람은 그걸 근본적으로 구성한 정신적 존재라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 그 원저의 구상

그런 인류 정신사의 기초를 만든 네 명 외에 카를 야스퍼스는 그의 <위대한 철학자들> 1권에서 철학 또는 사상사에서 독창적이며 그 시초가 되는 사유를 한 인물로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등을 들어 해설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가 사상사에 있어서 인류적 차원의 원조라고 한다면,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칸트는 그 다음 단계나 수준으로 볼 때 최상위에 들어 있는 사상가로 친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서구 철학의 뿌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를 야스퍼스의 원저 제1권 전체가 번역되어 하나의 흐름으로 읽힌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의 철학자들에 대한 분류도 재미있다. 2권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 스피노자, 홉스, 피히테, 노자 등을 "지적 전망을 탁월하게 가진 이들(intellectual visionaries)"로 다루었으며, 3권에서는 "기존 질서를 흔들어 놓은 위대한 사상가(the great disturbers, the probing negators)"들로 데카르트, 흄, 파스칼, 키르케고르, 니체 등을 주목했다. 마지막 4권은 "창조적인 질서 창출자들(the creative orderers)"이라는 분류 아래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헤겔, 주희 등을 설명해 놓았다.

한나 아렌트의 편집, 그리고 "초월적 독창성"의 주제

카를 야스퍼스의 이 책들이 그의 제자 한나 아렌트가 직접 편집한 책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변화무쌍한 정치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정치철학의 부활과 함께 정치 담론의 깊이를 무게 있게 만들어간 그녀의 지적 기초가 다름 아닌 카를 야스퍼스의 훈련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책의 힘을 새삼 다시 평가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은 최대한 쉬운 문체로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쓰였으며, 학교에서 철학 교재로 사용될 것을 기대하며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철학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 용기를 준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특징은 야스퍼스가 그 서문에 언급했듯이 철학사나 주제의식과 같은 구성이 아니라, 철학자 개인들 하나하나와 직접 만나는 긴장과 즐거움을 주는 것에 있다. 따라서 다루는 사람들마다 그의 생애, 그 정신적 발전사, 그 개인에 얽힌 드라마틱한 사건, 그리고 이후의 영향 등을 정리해 놓아 이들 사상사의 위대한 정상의 존재를 전기적(傳記的) 시선과 그 사상의 핵심이 이후 인류사에 갖게 되는 가치와 의미를 조명했다.

그는 이들 인류 문명사의 기초를 세운 네 명의 인물들은 어느 특정한 역사의 시기에만 한정된 존재가 아니라 "초월적 독창성(the transcendent originality)"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어떤 시대라도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철학적으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며, 그 자신의 진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이 그 어떤 시대의 제약도 넘어서는 영원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야스퍼스의 이 책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공자나 석가모니,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널리 알려지고 문명사적으로도 많이 비교 연구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소 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서구 철학사의 줄기만 잡고 있던 이들이 동서양 전체를 아우르는 지구적 관점을 가지려 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맥락과 함께,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그 독특한 해석이 여전히 우리에게 지적 자극과 성찰의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눈 여겨 보게 된다.

가령, 야스퍼스가 소크라테스를 다룬 대목만 좁혀서 보자면, 그가 주목하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신앙이나 신념 체계를 상대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며 그 생각을 현실에서 시험해볼 것을 요구했다. (…)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룬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라는 것은 사람들 내면의 정신세계를 혼란에 처하게 하고 잠자고 있던 의식 세계를 깨우며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야스퍼스의 소크라테스 해석

야스퍼스는, 소크라테스가 "언제나 구체적인 개인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I always address the individuals)"였다면서, 그와 만나면 누구든 "당혹스러워하지만 그로써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from perplexity to insight)"고 말하고 있다. 그건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가리켜 말했듯이 "신이 아테네에 내린 귀찮은 존재(a sort of gadfly, given to the city by God)"인 셈이다. 그래서 그와의 대면은 거부할 수 없이 "생각의 여정을 시작하는 일(embark on the journey of thought)"이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란 모르는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탐색하는 것(to philosophize is to search for what I already know.)"이라고 짚고 있다.

결국 "소크라테스와 만나는 것은 인간에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소크라테스와 접한 이들 모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로써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무지임을 깨우친 해방된 사고(liberated thought)는 그 자체로서 위대한 질문의 시작이라고 야스퍼스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적 존재와의 교감은 인간에게 그 어떤 고정된 신앙 또는 신념의 체계에 그 정신이 종속당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기초라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석가모니, 공자, 예수 또한 바로 그렇게 우리 인간 모두에게, 자신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질문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각성을 하게 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류가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일체의 재앙을 이겨나가는 길에 있어서 이들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근대 서구 철학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이라는 인류적 재앙을 미리 막지 못한 현실에서 고뇌했던 야스퍼스는 철학이나 사상이 인간에게 다시 생명력을 가지고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는 길을 뚫어내고자 했다. 그것은 그가 다룬 모든 위대한 철학자 또는 사상가 내지는 종교적 영성의 존재들이 감행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모순과 고민을 겪으면서 보다 본질적인 질문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는 철학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고, 정치철학적 질문에도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철학은 어렵고 멀리 있는 학문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철학, 또는 사상과 종교는 바로 우리 현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끌어안고 성찰하는 우리 자신의 자유의 능력과 일치한다.

이 능력, 이 힘을 길러가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권력과 언론 그리고 기득권 질서의 기만에 속고 선태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말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축의 시대" 이후 나름대로 겪어온 역사의 교차로에서 "각성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기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걸 보다 풍부하게 이루어내기 위해서라도 인류 문명의 위대한 스승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여기저기서 벌여나가는 열기가 힘차게 번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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