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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잔당과 싸운 5.18, 박근혜 정부에서 '개죽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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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잔당과 싸운 5.18, 박근혜 정부에서 '개죽음' 됐다

[이철희의 이쑤시개]<20> 한홍구·서해성, '일베'와 '5.18'을 논하다 ②

2013년 5월은 33년 전 5월과 또 다른 측면에서 뜨거웠다.

국가보훈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했으며, 과 <채널A>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또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는 '5.18은 폭동이며 희생자는 홍어다'와 같은 비난 글이 도배됐다.

요란했던 5.18 논란,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달 24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1980년 5월 27일 (민중이) 전남도청에서 참담하게 깨진 이후 역사적으로 5월이 이렇게까지 모멸을 당한 적 없다"며 "단지 일베가 난리를 치고, 종편이 까불고 해서 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일베충'도 자신들 주장이 거짓인 것 알고 있다")

▲ 지난달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국립 5.18 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 ⓒ연합뉴스
한 교수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10년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다. 5.18 이후 이어진 '민주화'가 30여 년 만에 퇴행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박정희) 유신 잔당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유신의 핵심이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있다. 이 자체가 5.18에 대한 모욕적인 상황이 됐고, 도청에서 돌아간 분에게 낯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것이 5월에 대한 진정한 모욕의 핵심이고 근원이다."

한 교수는 이어 "우리는 어찌 보면 모두 5.18 마지막 날 도청에서 죽은 사람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며 "80년대 정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유전자가 돼서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광주의 자식인 셈"이라며 "고향이 '광주'인 것과는 상관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한 교수와 함께 출연한 서해성 성공회대 외래교수 역시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부채를 안고 있다"며 "(이는) 그날 도청에 남지 못한 자의 빚이고, 살아남은 자의 빚"이라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했다. 서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마지막 도청을 지킨 힘과 용기가 우리 시대 6월 항쟁(1987년 전두환 '4·13호헌조치' 발표 후,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화운동)을 만든 근육이었다"며 "이 빚이 '80년대 근육'"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서 교수는 "당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후렴구인 '산 자여, 따르라!'라는 일종의 대중 호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단순하게 노래의 뜻만 전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호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나'를 호명하고 불러내는 힘이 노래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또 5.18을 경험한 이들이 광주의 기득권으로 자리하고 '산 자여, 따르라!'를 외쳤던 이들이 한국 사회 기득권으로 진입했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득권을 위한 행진곡이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민중, 민초)를 위한 행진곡'으로 발전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외면했다. '80년 광주 정신'은 교과서 속 사진 한 장에 갇혔고, 광주에서도 도청을 지킨 사람들, 그 안에서도 보상을 받은 사람들로 국한됐다. 이른바 '경험의 독점' 탓이다. 결국 '5.18 광주 정신'은 더 이상의 확장성을 갖지 못한 채 전국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한 교수는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편성을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부산에서는 '부마항쟁(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박정희 유신체제 반대 민주화운동)'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 마산에서는 '3.15 부정선거(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부정과 폭력으로 재집권을 시도하다가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야기한 사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흐름 아닌가. 그런데 이런 것이 서로 대항하는 기억이 되어 버리고, 그것을 훈장으로 이력으로 삼아서 더 좋은 자리로 간다든지 더 많은 자원을 국가로부터 받아낸다든지 그런 수단이 되다 보니, 광주가 부마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니까 민주화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내가 그날 도청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며 2013년 5월의 각별한 의미를 되새겼다.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해본다. 그분들이 그날 거기서 기다리면서 '30년 후,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대한민국은 좋은 세상일 거야'라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또 (그분들이) 어떻게 그곳을 지켰겠는가.

그런데 30년 후 대한민국이라는 게 보니까 그때 살아남은 자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고, 30년 전 가난한 아이들의 꿈은 정규직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꿈이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신 본당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나라라면, 그날 도청에 남아 있었던 자들의 희생은 개죽음인 것이다.

광주가 다시 우리에게 굉장히 심각한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고 역사가 반드시 바로서야 하는데, '너희들이 광주의 역사를, 이런 현실이 고착화되게 그냥 내버려 둘 거야'라며 굉장히 진하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 지난달 24일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한 한홍구·서해성 교수는 '일베'와 '5.18'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거룩한 방송'을 했다. ⓒ김대현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유신 잔당과 싸운 5.18, 박근혜 정부에서 '개죽음' 됐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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