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애도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지적한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 "경쟁 일로로 치닫는 대학 교육 문화 전체의 문제다"라고. 사회비평가들은 그렇게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을 사회 비판을 위한 제단에 올린다. 한편, 반대쪽에서는 자살은 개인의 문제라며 '나약하다'는 평가로 망자를 질타한다. 경쟁 구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두 시선이 놓치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고유한 경험과 고통을 보려 하지 않는다. 글 쓰는 정신과 의사 하지현(건국대학교 교수)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한 명쯤은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며 "그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료실에서뿐만 아니라 몇 권의 저서와 방송 활동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를 분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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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 치유 식당>(하지현 지음, 푸른숲 펴냄). ⓒ푸른숲 |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책은 <심야 치유 식당> 시리즈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엔 빡빡한 일상에 지친 20~30대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노인부터 청소년까지 후회부터 사랑까지 다양한 인물과 테마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창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비극이 닥친 시기, 고군분투하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의사 하지현을 만났다. 다음은 지난 11일 오후 건국대학교 근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
▲ 하지현 건국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카이스트에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지현 : 자살 이유를 예단할 수는 없다. 결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겹쳐 일어나면서 감정이 어그러지고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 거다. 그러나 각기 다른 한 명 한 명의 자살 이유 말고,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를 보면….
카이스트는 기본적으로 고립돼 있다. 일반 고등학교 출신 비율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과학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 교수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게 흔들렸을 때 문제가 된다. 마치 적벽대전 같은 거다. 안전해 보이지만 작은 불씨가 한 번 붙으면 순식간에 퍼지는 구조다. 이질적인 개인이나 단위가 섞여 있으면 불씨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뭐가 하나 잘못되면 '이럴 수도 있어' 하고 넘어가는 게 잘 안 된다.
두 번째로는 이 친구들 특성이, 이성적인 부분은 과도하게 발달해 있는 반면 감정을 다루거나 통제하는 능력에선 상대적으로 미숙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 공부 외에) 다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애티튜드(자세)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하면 돼, 그래서 성공하면 돼'라는 식이다. '천천히 가면 돼', '가기 싫은 길이면 가지 않아도 돼'라는 선택항은 별로 고려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오히려 뛰어난 학생들이 많은 학교 내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데, 1위가 MIT이고 2위인 하버드 대학과 30% 정도 차이가 난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들한테, 정확한 이유는 본인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자살'이라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옵션으로 들어온다. 자살이 고통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 가능 항의 범위가 휴학, 자퇴 정도에서 갑자기 확 늘어나 버린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서남표 총장이나 카이스트 교수들은 차등 등록금제나 영어 수업이 자살 이유가 되지 않을 거라고,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변화들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점점 높인다. '옆으로 조금밖에 안 밀었어'라고 해도 전체적으로는 기준선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카이스트 안팎이 분주해졌다. 제도 개선과 별개로 교수들이 수업을 휴강하고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른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전문 상담사를 고용하려는 추세다. 상담을 통한 문제 해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
무엇보다 학생들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거기서 제도 개선 문제가 거론된다. 등록금 차등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교육 철학도 재고해 봐야 한다. 하지만 모두 서남표 총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밖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라기보다 카이스트 내부에서 타당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프레시안 : 자살을 사회 구조의 산물로 보는 사람들은, '개인'에 주목하는 심리학적 접근을 비판한다. 심리학자로서 자살하는 개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지현 : 자살은 결국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에밀 뒤르켐 식으로 사회적 영향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정신과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개인적 문제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거다.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그래도 '사람'을 보려고 한다. 특히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갖고 있었던 욕망 내지는 판타지가 무엇이었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들과 인터뷰 해 보면 특징적인 판타지가 있다. 도피 욕구, 자신에 대한 징벌 욕구, 영화 <박하사탕>의 김영호와 같은 리셋 욕구, 종교적인 부활 욕구, 또 누군가에게 평생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다는 복수심… 이렇게 다 다르다. 그들을 자살로 이끈 기제를 알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자살률을 떨어트리기 위해서는 역시 (사회) 시스템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살이 사회 이슈가 되어서 누구나 떠들 때마다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 아까 말했듯이 개인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자살을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개인)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마음이 추울 때 가고 싶은 '심야 치유 식당'
프레시안 : 자살을 생각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 책, <심야 치유 식당>에 나오는 손님들도 자기만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민수, 징크스의 덫에 빠져 있는 4번 타자 태조, 갑자기 찾아 온 발기부전에 삶의 의욕을 잃은 초밥 요리사 상진 등이다. 등장인물들이 실제 환자를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현 : 지금까지 만난 환자가 몇 만 명은 될 거다. <심야 치유 식당>에 나오는 인물과 1대 1로 맞아떨어지는 인물은 없지만, 그분들의 모습이 유형별로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 실제 환자들 말고도 영화나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이들의 전형성을 섞어 가공의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주인공 철주가 손님들에게 제시하는 솔루션은 사실 내가 진료실에서 직접 행하는 방법들이다. 물론 책에서처럼 누군가의 집에 가거나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닐 수는 없지만 '상상해 보라'고 한다. 여기엔 내 판타지도 존재한다. 내가 실제로 제시하는 솔루션들을 직접 동적으로 해 보면 어떨까 하는 판타지.
프레시안 : 철주는 의사 하지현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직 정신과 의사인 그는 바(bar) '노 사이드'를 차려 자영업자로 변신했음에도 끊임없이 '의사 노릇'을 한다.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를 통해 충족시키고픈 판타지가 있었다. 의사로서 의료의 영역이 갖는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환상, 그리고 의사를 의료 영역에서 만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다는 일반인의 환상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보고 싶어 픽션을 썼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에 가는 건 꺼리면서도 정신과 의사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판타지를 갖고 있더라. 나 역시 정신과 의사라는 현실의 정체성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의사가 병원 바깥에서 의료 시술하면 불법이지 않나. 그래서 '전직 의사 철주'라는 안전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가 보통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증상'도 타협의 결과물이다. 나름 어려움과 싸운 결과로 그만큼의 증상이 생긴 거다. 그 사람을 견디게 하는 증상을 가위로 잘라내듯 없애버리면 오히려 와장창 무너질 수도 있다. 모든 증상엔 그런 순기능이 있다. 먼저 그걸 인정하고, 왜 이 부분에 빠져 있을까에 대한 원인을 찾는다. 증상이 왜 그렇게 기능하게 됐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이 바로 치료다. "얘(증상) 말고도 다른 걸 사용해도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라고 설득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이 과정이 꼭 의료 시스템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의사를 찾기보단 책을 찾는다. 혼자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팁을 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신선한 시도다.
하지현 : 예전부터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의 천편일률적인 글쓰기 구조에도 반감을 갖고 있었다. '진료실에 이런 사람이 왔다, 이런 문제가 있더라, 이런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 봐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관계의 재구성>(궁리 펴냄)에서도 영화라는 틀을 도입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형식을 고민할 것이다.
특히 어떻게 하면 재밌게 읽힐까를 고민한다. 보통 '좋은 기획은 두 줄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대박 나는 영화 시나리오는, 작가가 승강기 안에서 프로듀서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심야 치유 식당>은 "전직 정신과 의사가 심야 식당 하는 얘기야. 만화책 <바텐더>랑 비슷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에 다 알아 듣는다.
제목은 어디서 본 듯하다는 거, 안다. (웃음) 사실 이걸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출판사에서 권유했다. 내용은 <심야 식당>보다는 <바텐더>에 가깝다. <심야 식당>, <바 텐더>, <공중 그네>를 섞어 보면 이 책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섞다 보면 새로운 게 만들어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어디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들, 그런 게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
글 쓰는 의사, TV 나오는 의사
프레시안: 의료 시스템 바깥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얘기했다. 저자, 신문사 칼럼 필자, 방송 코멘테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하지현 : 그럴 수도 있다. 그런 활동이 정신과 의사로서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신정아가 <4001>을 왜 썼을까요', '왜 경쟁 지상주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할까요' 같은 질문에 답하는 일들은 본업에서 소득을 올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명의'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내게 특별한 치료법이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면 모를까. (웃음) 한마디로 '접객'과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은 사회학적인 접근, 정치 공학적인 비평의 틈바구니에서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지적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행동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정신과 의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활동은 내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훈련을 시켜주니까. 사안을 내 언어로 소화하고, 다수가 잘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만큼 좋은 학습법은 없다.
프레시안 : 하고 싶어도 글 쓰는데 익숙하지 못해서 과외 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다. 하지현이 책, 칼럼 등 글쓰기를 지속하는 방법이 있다면?
하지현 :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한다. 방법이라면 흔히 말하는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이다. 특히 책을 많이 읽는다. 책은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타인의 지적 활동의 총화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책을 고를 때는, 한 우물을 깊이 파기보다 3:3:3 원칙을 지킨다. 3은 내 본업을 위한 전공 관련 서적, 3은 책을 내기 위한 자료들, 3은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구입하는 책이다. 이러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다.
나는 글쓰기를 중국 요리에 비유한다. 중국 요리는 밑 준비는 오래 걸려도 요리 자체는 짧은 시간에 불로 확 볶아 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자료 조사, 구상, 인터뷰, 구조 만들기 같은 밑 준비만 잘 되어있으면 막상 쓰는 건 금방이다. <심야 치유 식당>도 주말만 들여 2~3달 만에 썼다. 어떤 소설가가 픽션은 첫 문장이 가장 어렵고 그 이후엔 펜대가 알아서 움직인다고 그랬는데, 나 역시 처음엔 마음 가는대로 즐기면서 썼다.
"나는 예외적인 경우다"
프레시안 : 요즘 심리학 서적 소비 추세를 보면, 자기 계발서에 가까운 긍정 심리학이 잘 팔린다. 독자들이 왜 이런 책에 끌린다고 생각하는가.
하지현 : 과거의 자기 계발서는 조직 내에서 처신하는 방법,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는 방법에 치중했다면 요즘 유행하는 긍정 심리학 자기 계발서는 '경쟁력 있는 사람이기 위한 마음가짐'에 치중한 책들인 것 같다. 이런 걸 보면서 '이제 믿을 거 나밖에 없다는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조직이나 공동체보다는 개인에 집중한다. 사람들이 '나라도 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기대치를 많이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건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고 본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높은 기대치에 다다르려고 아옹다옹 살아왔는데, 지금은 4~50대 남성들에게서조차 삶의 페이스를 늦추려고 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 아이들 유학 보내기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취미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한 번 열심히 살아 봤던 사람들에게 국한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얘기다. <심야 치유 식당> 첫 번째 이야기 메인 카피가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인데 20대 초중반 젊은 세대는 공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직 열심히 살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진료실 찾는 사람 중엔 '공무원 준비 중이다' '언론사 입사 시험 준비 중이다'라고 '준비 중' 팻말을 내건 친구들도 많다. 거의 다 부모님 손에 끌려온다.
프레시안 : 정신의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은 무엇인가.
하지현 : 정신의학의 특징은 최신 내·외 신경과학에서부터 인문학까지를 포괄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뇌, 약물에 대한 얘기부터 정신분열증 환자의 입원율을 줄이기 위한 사회 정책이라든가 통계 분야까지 아우른다. 대체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이냐 하는 인문학적인 성찰도 요구한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내 활동을 보고 정신과 의사들은 다 이럴 거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나는 굉장히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정신과 학문 자체는 생물학적 관점에 입각한 '의학'이다. 물론 나도 진료를 할 때는 의료 서비스를 행하는 의사로 임한다. 다만 언론을 통해, 책을 통해 인간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활동이라든가, 그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서 갖게 된 역할은 일반적인 '정신과 의사'와 차이가 있다는 거다. 청소년들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웃음)
프레시안 : 뇌 과학 분야 학자들은 프로이트 심리학을 비과학적이며 문학적 은유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오히려 2000년대 초반부터 반대되는 경향이 생겼다. '신경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이다. 과거에 기껏해야 '왼팔 움직이면 뇌 어느 부분이 움직이고 오른팔 움직이면 뇌 어느 부분이 작동하고', '사랑을 느끼면 며칠 동안 뇌 어디가 변하고' 하는 1차 방정식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던 뇌 과학이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새로운 프레임을 필요로 하게 됐다.
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거다. 뭘 갖고 얘기할까 하다 보니까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개념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신분석학 개념들이 입증도 꽤 되어 있고, 고차원적이기도 하니까. '전이'라는 게 무엇일까, '저항'은 무엇일까, 무의식이란 게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뇌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런 문제에 도전하게 할 만한 좋은 개념 덩어리가 정신분석학에 있었던 것이다. 마치 가속기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물리학자들이 만든 '쿼크'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처럼, 그게 있어야만 말이 되지만 아직 증명을 하지 못한 개념들이 있는 거다. 그게 정말 맞나 확인해 보는 거다. 이런 경향이 뇌 과학에서도 생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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