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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앞에 원자로 놓아 드려야겠네요!"

[원자력 생각] "서울에 원자력 발전소를!" 외칠 자신 있나요?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위원께,

지난 30일 <조선일보>에 쓴 칼럼("原電에 어른거리는 광우병 그림자")은 잘 읽었습니다. 이 칼럼에는 <프레시안>에 실린 몇몇 기사의 제목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프레시안 books' 32호 머리기사("이명박과 김정일이 동시에 사랑한 '그것', 그 정체는…") 내용의 일부도 소개를 했지요.

"'이명박과 김정일,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한 그것은…'이라는 글은 이 대통령의 원전 육성 정책과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을 동렬(同列)에 놓는다. 남·북한의 지도자가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핵 장난을 하고 있다고 싸잡아 비난한다."

그 글은 편지 형식을 빌려서 원자력 에너지를 놓고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신화를 책 몇 권을 중심에 놓고 정리한 서평입니다. 그 중에는 '원자력 발전소와 핵무기의 경계가 대중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또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제목은 그 대목을 눈에 띄게 뽑은 것이지요.

사실 칼럼을 읽고서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글을 인용하는 방식이 제목만 보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언론의 논설위원이 쓴 글치고는…' 하면서 덮었지요. 마침 그 칼럼에 기사 제목이 인용된 동료 기자가 반론을 쓴다고도 했고요.

▲ <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히로세 다카시 지음, 김원식 옮김, 이음 펴냄). ⓒ이음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김원식 옮김, 이음 펴냄)를 읽으면서 다시 그 칼럼을 떠올렸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정리한 이 책이 특별히 '원자력 에너지와 저널리즘의 유착'을 다루면서, 언론의 책임을 특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로세 다카시의 <원전을 멈춰라>는 원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난 1987년에 일본에서 나와서 화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국내에서는 1990년에 소개가 된 적이 있는데,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 맞춰서 출판사에서 발 빠르게 재출간을 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이면서 저는 '아!' 하고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68세인 히로세 다카시는 일본에서 유명한 독립 저널리스트로 꼽히는데, 이 책의 다음 대목은 그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지진, 해일이 일어나면) 정전이 됩니다. 예비 전원도 망가지고 그 순간 긴급 장치가 움직이지 않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 후쿠시마 현에서 해일이 일어나 해수가 들어오면 11기가 함께 노심 용해(melt down)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인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199쪽)

원자력의 진실 : 93% vs 33%

이 책에서 히로세 다카시는 아주 강한 어조로 원자력 에너지의 진실을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합니다. 그가 전하는 사실상 원자력 산업계, 원자력 전문가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일본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언론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토론을 위해서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한 번 보겠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력 발전소 수출을 성사시켰다고 온 나라가 들썩였던 2010년 1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흥미로운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93%나 됩니다.

이런 결과는 당시 여러 언론을 통해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또 다른 항목이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자신의 거주지 부근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을 놓고 '찬성'을 택한 응답자는 불과 31%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기관이 2009년 수차례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앞마당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 찬성하는 이들의 비율은 1년간 22%에서 30% 정도를 오갔을 뿐입니다. 아마 지금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낮아지겠지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열광이 가장 높았던 시기의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93:31', 이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평소 "대안이 없으니 원자력 발전소는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도 정작 내 집 앞에 그것이 들어선다면 머리띠를 묶고 반대하지 않을까요?

▲ <올림픽의 몸값>(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이 조사 결과는 원자력 에너지의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모두가 원자력 발전소를 거부하다 보니, 결국 그것이 들어서는 곳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지역입니다. 당장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후쿠시마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 소설을 한 권 떠올렸습니다. 국내에서도 꽤 인기가 높은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올림픽의 몸값>(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입니다. 이 소설은 1958년 도쿄 올림픽의 가상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도호쿠(東北) 지방 출신입니다. 이 소설은 도호쿠 지방이 일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얼마나 소외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바로 그런 소외 지역에 안겨진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소였지요.

원자력 에너지는 정의롭습니까?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원자력 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강원도 삼척을 보십시오. 어디서도 원자력 발전소를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지역 중 한 곳이 또 다른 희생양이 되기 직전입니다.

잘 알다시피,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대부분은 서울·인천·수도권,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울산, 포항 같은 공업 단지를 낀 대도시에서 소비합니다. 수도권에서만 전체 전력의 38%를 소비합니다. 그런데 정작 원자력 발전소는 전기 요금이 1만 원만 나와도 화들짝 놀랄 농민·어민들이 사는 곳에 들어섭니다.

이렇게 전기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다 보니 고압 송전탑도 필수입니다. 현재 전국에 송전탑만 3만8411개가 있습니다. 송전탑으로 인한 유형, 무형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도 전기를 가장 덜 소비하는 전국의 농민들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의롭습니까?

당장 이런 반론이 들립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떠안은 대신에 보상금을 타가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2008년 한 해만 1516억1600만 원이 발전소 주변 지역 사업에 쓰였습니다. 심지어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설 경주는 3000억 원 이상의 '당근'으로 회유를 했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원자력 발전소를 돈을 쥐어주고 떠넘기는 방식은 정의로운가요? 아니 정의로운지를 떠나서 이렇게 돈을 쥐어주는 방식이 계속 가능할까요? 이명박 대통령의 호언대로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10기~12기 정도를 더 짓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큰 '당근'이 필요할까요?

ⓒ프레시안(손문상)

서울에 원자력 발전소를!

히로세 다카시는 1981년에 <도쿄에 원자력 발전소를!>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영화 <도쿄 핵발전소(Tokyo : Level One)>(야마가와 젠 감독)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2005년 국내의 한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어요.

영화 속의 도쿄 도지사는 "도쿄 도청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지방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대부분을 소비하면서도, 그것의 문제에 둔감한 도쿄 시민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균 논설위원처럼 "당분간 원전 없이 살아갈 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인식한다면 또 "우리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전문가의 호언장담을 믿는다면 당장 서울로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괴담' 취급하는 김창균 논설위원부터 "서울 혹은 수도권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자"고 제안하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런 용기(?) 있는 지식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 사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황우석 씨를 비롯한 서울대학교 교수 몇몇이 2004년 1월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서울대학교에 유치하자"고 나섰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해프닝이 있었지요.

한 포털사이트의 신상 정보를 보니, 김창균 논설위원은 '한국참언론인상'을 수상했더군요. "서울에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하자"고 나설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야말로 원자력 에너지의 여러 문제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참언론인'의 태도 아닐까요?

원자력 없는 미래

저는 앞의 기사의 결말에서 독일 얘기를 잠시 했습니다. 독일은 이미 2000년에 '원자력 발전소 포기'("현재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만 원자력에 의존하자!")를 선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전력의 약 30%를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하는, 설비 용량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원자력 대국인 독일이 10년 전에 '원자력 포기'를 선언한 것은 획기적인 대안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그 선언을 통해서 원자력이 아닌 미래를 더 적극적으로 준비하자고 결의를 다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독일은 차근차근 '원자력 없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그런 준비는 더욱더 힘을 받을 전망입니다. 자, 이제 우리도 '원자력 없는 미래'가 과연 가능한지 한 번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의 대통령 중에서 처음으로 (그 정체에 대한 논란은 미뤄두고) '녹색'을 국정 운영의 머리에 놓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물꼬를 트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그 업적만으로도 이 대통령은 오랫동안 기억되리라 확신합니다.

"1등 신문" <조선일보>도 "괴담" 운운하며 진보/보수 편 가르기에 신경 쓰기보다는 이 '문명사적 전환'의 순간에 동참하는 게 어떨까요? '참언론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기자의 글이 길었습니다. 김창균 논설위원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2010년 4월 1일

강양구 드림.

이 글은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위원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빌린 <원전을 멈춰라>의 서평입니다. '프레시안 books'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원자력 에너지를 성찰할 수 있는 여러 책들을 편지 형식을 빌려서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은 내용, 형식 면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첫 번째 편지 :
일본이 핵에 무너진 날…"우리는 모두 일본인이다!"

☞두 번째 편지 : 이명박과 김정일이 동시에 사랑한 '그것', 그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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