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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도 판사도 장관도, 룸에서 '터치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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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도 판사도 장관도, 룸에서 '터치하는' 나라!

[프레시안 books] 강준만의 <룸살롱 공화국>

"배반은 도덕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최근 들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친동생이 부당한 돈을 받았다. 당신은 친동생을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친동생이 당신의 적과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친동생을 배반할 것이다. '불법, 비리는 눈감아줄 수 있다. 단, 나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비정한가? 어쩔 수 없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국식 패거리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명제다.

남성들은 오늘도 '정치적 이득'을 함께 추구하고자 룸살롱에서 각종 '대사'를 해치우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최근 한 공직자가 "스마트폰에 '카카오 톡'(메신저)을 깔았는데, 연락이 끊긴 룸살롱 마담들에게 연락이 쇄도해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기자는 왜 그 공직자의 스마트폰에 룸살롱 마담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마담이 있는 자리에서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했을까.

영화 <부당거래>에 등장하는,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요정 형태를 띤 고급 룸살롱의 풍경이 그려졌다. 조직폭력배 취재로 유명한 한 기자는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말이 된다"고 했다는데, 기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풍경은 일반인에게 낯설지 않다. 아침 화장실에서 신문 한 부만 훑어도 그런 일들이 일상다반사라는 것은 누구나 알게 되리라.

▲ <룸살롱 공화국>(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강준만의 <룸살롱 공화국>(인물과사상사 펴냄)은 이런 사건들을 '신문 콜라주'를 하듯 이어 붙인다. 열쇳말은 제목대로 '룸살롱'이다. 그 역사는 우리의 굵직한 현대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일제 시대에 조선인은 일본 관료들한테 아주 잘 보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되지 않았거든요. 대표적으로 당시 조선 은행계, 기업계에서 큰 역할을 했던 한상룡같은 매판 자본가는 자신의 집을 개방해서 총독부 관료들을 접대하는 것을 일종의 의례처럼 하고…." (박노자)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1950년 12월 29일 부산 피난 시절 <조선일보>에 실린, '고급 요정 폐쇄령'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뒤져낸다. 당시 김두한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전쟁 통에 "양주병을 앞에 놓고 엔조이에 한창들"인 늘봄 댄스홀의 문을 열고 권총 16발을 공중에 발사했다고 한다. 이런 암흑기는 지났지만 요정은 남았다.

이 책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500~600명 수용 규모의 삼청각이 그 출발이다. 그 삼청각 오픈 파티에 참석한 중정 요원 50명의 위엄을 묘사한 신문 기사를 지나, 1979년 10·26 궁정동의 '만찬', 1988년의 '룸살롱 올림픽' 천태만상, 룸살롱에서 술 마시다 같이 마시던 판사 앞에서 칼 휘두른 조폭의 사연, '문민정부 황태자' 김현철과 DJ(김대중)의 아들 김홍업이 이권 청탁 장소로 애용한 룸살롱 '지안', 386 정치인의 5·18 광주 룸살롱 파동, 그리고 최근의 스폰서 검사 사건과 '장자연 성 착취 사건'으로 드러난 연예인 접대 실태까지 룸살롱으로 엮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현대사 풍경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 놓는다.

이 같은 룸살롱 65년의 기록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룸살롱이 '성 매매'를 필연적으로 수반했다는 점 그리고 고위층만 출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04년 10월 판사들이 룸살롱에서 성 접대를 받아 세간에 알려졌던 일이나, 2009년 청와대 행정관의 성 접대 사건, "나도 기자들에게 모텔 키 많이 나눠줘 봤다"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의 발언, "100명의 검사를 접대했다"는 기업인의 제보로 시작된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면 그렇다. 기업인, 검사, 판사, 정치인이 은밀한 '칸막이' 안에서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떤 '향응'을 제공받았을까. 진실은 상상에 맡기자.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성 접대 사실을 부인했다.)

어떤 사건도 진실이 밝혀진 적은 없다. 그들의 힘 자체가 워낙 세기 때문일 것이고, '친구(동료)의 도덕성'은 눈감아 주는 사회의 분위기와 '힘 센 놈'을 서로 챙겨주는 끈끈한 관계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울고검 검사 김규헌은 2009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연예인 성 상납 사건 수사 때 엄청난 외압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사 착수 1개월 만에 충주지청장으로 '좌천'된다. 그에게 쏟아진 로비(혹은 협박)는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이었다. 법무부 밖 고위직 관료, 나중에 장관이 된 고위직 공무원, 사업하는 후배들이 김 검사에게 '압력'을 넣었다. 연예기획사와 이들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개별 조직의 이해가 상충되더라도, 이른바 기득권층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사회, 그곳이 '코리아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강준만이 '룸살롱 공화국'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추적한 이 보고서는 룸살롱이 의사 결정 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까지도 넌지시 포함하고 있다. 룸살롱 안의 칸막이에서 이뤄진 결정들이 한국 사회에 엄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 물론 이런 주장이 입증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겨레> 1999년 1월 20일자 칼럼에는 "심지어 룸살롱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 외근 사무장이 만나 형량과 재판 기일을 결정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익명의 변호사 사무장의 말이 인용돼 있다. 판사들이 들고 일어서 결국 '사과 기사'를 싣는 촌극으로 이어졌지만, 강준만은 "아무려면 룸살롱이 법정이었겠는가.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하면서 교훈으로 삼자는 뜻에서 나온 선의의 과장법으로 보는 게 옳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넘길 순 없잖은가 말이다"라며 심증을 보탠다.

강준만의 '한국 사회 문화사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룸살롱 패거리 문화의 특성을 '칸막이 문화'로 설명한다. 그는 "룸살롱의 물리적 본질은 '칸막이'가 아닌가. 칸막이는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이며,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지역 갈등에서 유흥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간과한 것도 있다. 룸살롱은 왜 태어났으며, 왜 그렇게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 룸살롱 문화를 대하는, 소위 '짬밥 높은' 언론사 인사들의 인식이 재미있다.

<서울신문>은 2000년 6월 27일자 기사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원래 폐쇄된 회원들의 모임인 '살롱(salon)'이 우리나라에서 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room)와 어울려 전혀 다른 개념인 룸살롱으로 진화한 것은 돌연변이 현상이다. (…) 우리 사회에 소비 목적만의 룸살롱만 존재하는 것은 일부 고소득층의 불건전한 과소비가 부추긴 병폐라고 하겠다."

룸살롱이 '과소비'의 문제란다. 한편, <문화일보>의 논설위원 김성호는 2006년 1월 23일자에 '술자리 양극화'를 비판하면서 "고급 술집은 희소화돼야지 보편화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고급 술집은 희소화 돼야 한다"는 논리,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룸살롱 자체의 문화를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인데, 룸살롱의 행태에도 일정 부분의 '마지노선'이 존재한다는 저열한 인식 수준이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에게 돌발적으로 한 질문은 이랬다. "한국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룸살롱 등 잘못된 직장 회식 문화 때문이 아니냐?" 이 질문에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신 기자 간담회를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가 생길 때가 많다"고 답했다.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신기자들의 행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한국의 '2차 문화'를 되돌아본다면, 외신 기자가 꽤나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 책에는 '접대'가 출세나 성공이라는 단어와 어울려야 한다는 세태를 꼬집으며, 룸살롱을 하나의 '문화사'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러나 '룸살롱이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은 생략돼 있다. 룸살롱 공화국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장'을 흐린다고 생각한 저자가 부러 이 화두를 뺐는지 모를 일이지만, 룸살롱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룸살롱을 대하는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이 놀라울만한 균질성을 보여주는 이유, 그것은 신문 기사의 콜라주 위에 세워진 '공화국'의 역사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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