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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뱀 가죽 백', 욕 하는 너도나도 침 '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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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정아 '뱀 가죽 백', 욕 하는 너도나도 침 '질질~'

[프레시안 books] 김윤성의 <명품 판타지>

'명품'이란 단어가 논쟁을 가린다?

"4년 만에 나타난 신정아, 여전히 명품 종결자"
"신정아, 이브 생 로랑 명품 가방으로 구설수"


안 나오면 섭섭한 게 나왔다. 유명인, 그것도 문제적 인물이 들거나 입은 명품 논란. 해외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정환이 값 비싼 패딩 점퍼를 입고 공항에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반응이다.

▲ 또 한 번 '명품 논란'에 휘말린 신정아 씨. ⓒ프레시안(최형락)
이제 하이키든 로우키든 '조명'되는 인물들이 무엇을 들거나 입었는지에 대해 나오는 기사들도, 왜 '본질'을 가리고 거기에 집착하느냐는 타박도 하나의 클리셰(Cliché)가 됐다.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사실보다, 당사자들이 명품 논쟁에 휘말리면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한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실제로 패션이 논란이 됐던 당시 신정환의 관계자는 "해외 체류 기간이 길어져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추워져 그가 네팔에 머물 때 갖다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정아는 자서전에 아예 '명품족 유감'이라는 꼭지를 써 자신을 명품족으로 몰아갔던 언론에 항변했다. 그는 "나도 대학 다니던 철없는 시절에는 비싼 명품을 정말 많이도 샀었다"고 썼는데, 여기에 이미 명품을 많이 사 모으던 일이 '철없다'는 인식이 들어있다.

명품이란 단어는 이미 이렇게 이중적인 시선 속에 놓여 있다. 명품 그 자체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욕망의 대상일지 몰라도,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느니 '명품족'이라느니 하는 평가는 당사자에게 부정적 낙인이다. 굳이 불미스런 사건과 연루된 인물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셀러브리티의 사진 속에서, 명품은 보는 이들을 언제나 가치판단의 장으로 끌고 간다.

▲ <명품 판타지>(김윤성·류미연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이렇듯 명품이란 단어에 이미 욕망의 딱지와 함께 부정적인 먹칠이 엉겨 붙어 내던져진 마당에, 이 책 <명품 판타지>(김윤성·류미연 지음, 레디앙 펴냄)은 다소 '낡은' 전제를 내민다.

"('럭셔리'에 대한 번역으로) '사치재'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의 의견을 검토하게 되고, 내 돈으로 하는 소비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단어는 이런 논쟁을 교묘히 가린다."

따라서 이 책은 '명품'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이름 뒤에 가려진 실상을 파헤친다는 의도로 진행된다. 글자 그대로만 보면 '사치재'가 판단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고 명품은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 우리는 이미 명품을 상당히 논쟁적으로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명품'만 나왔다 하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한 번 더 돌려 보고, 게걸스러운 기사가 줄 잇는 것은 명품의 그늘을 알면서도 그 부수적인 효용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이기 때문에 더 쫓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타스티(환상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판타스타(환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케팅 전략에 지배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게임의 룰'을 바꿔보지 않겠냐는 이 책의 시작부터 갸웃거려진다. 과연 판타스티들이 명품의 본질, 즉 '환상을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게임의 룰이 바뀔까? 이미 모두 내면화하고 있는 사실 아닌가?

'게임 룰' 바꾸기엔 역부족

게임의 룰을 바꾸자는 건 말 그대로 그 시스템의 규칙을 엎고 새로 쓰자는 말이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전복시키거나, 그 권력관계를 폐기할 수 있게 하는 구조적 전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서문에서 "자본주의 세계의 승자는 환상을 만드는 판타스타 쪽"이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명품 가문과 유통 업계를 강자로, 소비자를 약자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소위 계급 배반 소비(?)를 하는 이들, 즉 '황새 쫓아가려는 뱁새'들 말이다. 이 관계를 엎으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명품을 욕망하거나 구매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사정은 녹록치 않다. 많은 이들이 '명품은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채우거나 보완할 재화로 그것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재화 구입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메커니즘은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재생산되기 때문에, 한 사람의 귀에다 대고 '판타지에 속지 마'라고 속삭여서는 좀처럼 해체되지 않는다.

저자가 인용한 대로 소스타인 베블런은 오래 전에 "지출이 어떤 사람이 '명성'을 떨치는 데 공헌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쓸데없는 물건'에 쓰여야 하고,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명성이 원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쓸데없는 물건'이란 종류 불문하고 패션의 넓은 의미에 드는 일체, 즉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물건들을 가리킬 것이다.

만일 이 책이 제목에 나오는 '판타지'를 깨부수고자 했다면, 먼저 이 패션이란 현대적 삶의 양식 자체가 어디서 출발했고, 여기에 지배된 상태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좀 더 면밀하게 고찰해야 했을 것 같다. 사실, 책 뒤표지에서 '판타지 자본주의 사회, 이제 게임의 룰을 바꾸자!'는 선언을 보고 내심 패션 자체에 대한 음해가 이어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명품 판타지>는 오히려 '명품'의 본래 뜻, '뛰어나거나 이름난 이름'에 어울리는 몇 가지 모범 사례들을 찾아내는 데 그친다. 특히 책 전체에 걸쳐 프랑스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의 실용 철학과 그가 만든 기능적인 옷, 즉 쓸모가 입증된 패션에 대한 옹호가 눈에 띈다.

가령 저자는 나팔바지처럼 펄럭거리고 재킷은 엉덩이 위로 짧게 올리는 스타일의 트레이닝복에 대해 "이런 트레이닝복은 진짜 운동할 때 입는 옷이 아니고 젊은 남자들이 많은 실내 운동장을 슬슬 걸어 다닐 때에나 입을 이유가 있다"며 "이런 옷을 입은 여성은 정말이지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이 '생각 없는' 여성들과는 달리, 샤넬은 "그녀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스포츠를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좀 더 몸을 움직이기에 편한 스포츠웨어를 고안해냈기에 위대하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지만, '판타지를 깨부수자'는 선언에서 기대한 건 이런 전개가 아니었다. 몸은 불편할지언정 몸매를 살려 아름답게 보이는 전략을 선택한 생각 없는 여성과, 스포티하고 쾌활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전략을 택한 샤넬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을까? 패션 교과서였다면 디자인 철학 상의 큰 간극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욕망과 판타지를 다루는 '사회과학'을 표방한다.

샤넬 표 실용적 스포츠웨어의 원천이 된, 그녀가 직접 즐겼다는 스포츠를 보면 패션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생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패션의 원천 자체가 남들과 강력히 구분지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대서양 연안의 도시 도빌에서 그녀의 중요한 연인 아서 카펠과 함께 수영을 즐겼으며, 웨스트민터 공작과 연인이 된 뒤 요트와 사냥을 배웠다고 한다.

(평소는 물론이고 전쟁 중이었던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면) 수영, 요트, 사냥은 보통 사람들은 즐길 수 없는 취미이며, 그래서 이 취미를 향유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샤넬은 달랐다. 샤넬의 복식을 실용·기능성보다 계급이라는 잣대로 평가했다면 명품 판타지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한편, 이런 대목도 당혹스럽다. 스타일의 '위계'를 은연 중 내비치면서, 구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 때다. 가령 저자는 '무심한 듯 시크(chic)한 매력'이라는 의미의 '프렌치 시크'를 확인해보려고 파리를 방문했을 때,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옷의 느낌이 아닌, 항상 입던 자기 옷을 막 걸치고 나온 듯 대부분 편안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서울 중심가 사람 옷차림을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선을 다해 치장한 것 같고, 제시된 패션을 공부해서 입은 듯"하지만 "파리엔 그런 느낌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우아함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날씬한 할머니처럼, 파리 시민들의 패션은 '나름'의 패션이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삶에서 배어나는 패션"이라고 덧붙인다. 과연 그런가?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맵시를 타고나 패션에 삶을 녹이고, 누구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데도 뒤뚱거리며 뒤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모든 패션 트렌드가 파리를 위시한 서양의 대도시에서 시작되고, 오랜 기간을 두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 '구조'가 있을진대, 그런 부분에 대한 꼼꼼한 설명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좁고 깊은' 화두였다면…

이 책이 전체적으로 명품 판타지를 낱낱이 해부한다고 보긴 어렵다. 샤넬로부터 이어진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며 패션이라는 환상 세계 속에서 좀 더 현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뿐이다. 저자의 조언은 흡사 스타일을 소재로 한 자기 계발서와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우리는 내 지갑을 열게 하려고 남들이 짜놓은 전략에 걸려드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전략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경쟁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

전체적인 메시지는 종잡기 어렵지만, 군데군데 눈에 띄는 지적들은 많다. 특히 환경대학원 박사 학위, 환경단체에서의 활동 등 환경과 관련한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에코'라는 트렌드에 대한 관심을 적잖이 표출한다. 비틀즈 멤버 폴 메카트니의 딸인 스텔라 메카트니가 동물 가죽과 털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예다. 차라리 이런 세부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좀 더 차진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또 "동대문 봉제 공장의 노동자, 매장 판매원, 옷을 기획하는 디자이너에게 4대 보험이 보장되고 주 5일제도 잘 지켜지는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정규직으로 숙련될수록 월급도 높아져서 살 만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처럼, 한국의 왜곡된 패션 노동 구조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어느 주제보다 문제의식이 뚜렷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4년차인 가까운 지인이 무리한 야근과 박봉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짜 문제적 '판타지'는 작업장과 매장의 괴리에서 나오는 거라고 절감했다. 화려한 은막 너머에 있는 '연봉 300만'의 영화 스태프들, 비정규직으로 묶여 있는 오페라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패션 세계 구성원들도 소위 예술 계열 노동자들의 고질적 병폐를 겪고 있다.

이야기가 샤넬의 개인사와 복식 철학을 밑에 깔고, '상황과 지위에 맞는 실용적 패션'이라는 테마로 흘러갈 것을 예상했더라면 아마 책을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패션계를 둘러 싼 명품 판타지나 직업 판타지를 조망하려면, 관찰보다는 적극적인 취재가 필요할 듯하다.

가령 로베르트 사비아노의 <고모라>(박중서 옮김, 문학동네 펴냄)와 같은 충격 요법 말이다. 이 책은 나폴리의 범죄 조직 '카모라'가 100년 넘게 명품 패션과 마약, 유통과 건설에 '검은 손'을 뻗쳐 온 역사에 대해 잠입 취재하여 기록한 폭로 르포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할리우드에서 '명품 드레스'로 위용을 떨치는 값 비싼 옷들이, 어떤 열악하고 영세한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패션이 욕망을 먹어치우며 생존하는 산업이라는 점과 그 욕망은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이 다른 이들의 고통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있는가 하는 고찰. 이런 '그림자'와 마주하게 하는 기획이 아니라면, 어떠한 패션 관련 사회과학서도 '샤넬 멋있다', '파리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욕망 외엔 전해주지 못할 것 같다.

"(명품 판타지) 무대의 뒤편에 열심히 돋보기를 들이대고 냄새를 추적"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나갔지만, 이 책은 샤넬과 20세기 초 파리 모더니스트들의 일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이야기 등 재미있게 읽을 만한 구석은 적지 않다. 저자가 다음 차례로 기획 중이라는 아파트와 대학에 대한 판타지 이야기는, 좀 더 '지금, 현재' 문제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긴장감 있는 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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