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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저 '천박한' 기자예요!

[2011년 책 100권 읽기 ①] "눈 빠지도록 읽었습니다"

일찍이 독서에 관해 많은 명언을 남겨주시어, 기사 쓸 때마다 남몰래 감사하곤 하는 쇼펜하우어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한다.

"사색 없이 다독(多讀)하는 사람은 글씨본에 따라 글씨 연습을 하는 사람과 같다."

그렇다. 책 읽기가 내 전두엽이나 마음에 아무 자극도 주지 못한다면 그 수가 100권이든 2000권이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는 떨림 없는 상대와 줄줄이 사귀어봤자 득 될 것 없다는 연애관과도 일치했다. 대학 시절 언젠가 명사랍시고 특강을 온 이는 "군대 다녀와서 2000권을 읽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앞뒤로 하는 말은 전부 헛소리였다. 독서가 저리도 무용한 것일 수도 있구나, 하며 본래의 모토인 '차라리 술 빨자'를 되새기기도 했다.

스스로도 은근히 '몇 권 읽었다'고 자랑하던 이들을 낮춰 봤기 때문이었을까. 이른바 '100권 읽기'를 내세운 2011년 '프레시안 books' 첫 머리기사(☞관련 기사 : "2011년 한비야와 의기투합할 '용자'를 찾습니다!")를 쓰고 나서 생각보다 거세게 발끈하는 독자들을 보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과거 민감한 문제의 기사에 쏟아지곤 했던 "무식한 기자"라느니 하는 노골적인 욕설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던 기자였으나, "<프레시안>이 이런 천박한 독서론을 내걸다니 실망이다!"라는 우아한(?) 댓글에는 크게 움찔하고 말았다. '천.박.한.'이라! 움찔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미심쩍은 구석, 변명하고 싶은 구석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감정은 구체적으로 이랬다. 첫째, 캠페인의 취지에 완벽히 공감하지 못하고 기사를 쓴 게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 둘째, 기사의 진짜 메시지는 일종의 독서 권장이요, 다독가들의 응원인데 '한비야'나 '100권'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 셋째, '천박하다'는 말로 구별을 지으려하는 '고귀한' 독서관에 대한 냉소. 넷째, 이렇게 변명 혹은 보론을 덧붙이고 싶은 욕망이 증명하듯, 의도대로 기사를 써내지 못했다는 열패감. 다섯째, 나 자신 역시 권수를 헤아리는 게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고 은근히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 한마디로 "에이, 뭐들 이리 잘났어" 싶은 마음과 "아니야, 오해가 있다면 그건 글쓴이의 잘못이지"라는 반성의 오락가락 합주곡이었다.

이에 대해 묵혀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단 기사의 메시지는 잘 뜯어보면 보인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독자들의 눈을 끌기위해 '미션 임파서블'이라느니 '한비야와 의기투합' 등 자극적인 글귀를 제목에 걸었지만, 결코 100권 읽기를 강권하거나 좋은 면만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한비야 씨의 말처럼, "어떤 방법이 하고 난 뒤 가장 기분이 좋은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만족하나 연구하면서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로 취재 당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100권 읽기'에 도전해 본 적 있거나 지금 당장 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은 독서라는 삶의 중요한 행위의 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계획하고 실험해 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무적인 독서에 반대한다. 독서가 인생의 진리나 실마리, 아니 적어도 실용적인 팁을 얻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사람들까지 꼬드길 재주도 못 된다. 그리고 백 명이면 백 명의 다다르고자 하는 목적지와 관심 분야가 다르고, 백 권이면 백 권의 존재 가치와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잘 안다. 다만 기사는 더 많은 세계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계획을 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인문학으로 내면을 성찰하고 싶다는 이나, 좀 더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싶다는 이나, '교양'을 챙기겠다는 이나 그 결은 다를지언정,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은 세계와의 만남을 기대한다는 욕망은 같지 않겠는가.

아마 그것이 질이 아닌 양으로 표현된 데 대한 반감이 그날 몇몇 독자들과 나를 괴롭혔던 감정의 정체였으리라.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 보면, 어중이떠중이 100명을 후루룩 만나기보다 진실한 친구 1명과 깊게 사귀는 것이 '질'적으로 낫다고 평가되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좀 더 공을 들여 100명을 깊게 사귄다면? 혹은 그들을 '어중이떠중이'라 재단하지 말고 어느 하나라도 나와 조응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보려 노력한다면?

사람의 가치나 책의 가치나 처음부터 절댓값이 존재하는 것일 리 있겠는가. 문학평론가 김현은 일찍이 '바둑알'이라는 기가 막힌 비유로 '관계'의 의미를 설명했다. 홀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수한 관계 속에서만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편견 없이 많은 이(책)들과 사귀면서 때때로 그에게서 배울 점을 발견한다면 '양'에 대한 쏠려 있는 가치판단을 교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 위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지금, 100권이란 숫자를 계획해 놓고 한 권 두 권 책을 읽어나가며 "못 해먹겠다"거나 "이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단 2개월 남짓 흘렀을 뿐이다. 파스칼 키나르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떠돌아다니는 것. 책을 읽는 것은 방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독서 행위 자체에도, '100권 읽기'라는 계획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호기심으로 더듬어 가다

그럼 어떻게 읽었나를 보자. 기사에 소개했던 '노하우' 대로 ①나만의 목록을 만들고, ②다양한 분야의 책을 강약 조절해가며 번갈아 읽고, ③자투리 시간·통 시간을 확보했으며, ④독서 노트·스마트폰으로 생각을 기록했을까? 반은 그랬고 반은 그러지 못했다.

먼저 목록은 애초에 없었다. 다양한 분야를 읽고, 그 중에서도 과학과 역사 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워낙 그때그때 궁금한 게 널뛰듯 바뀌는 성격이라 미리 지도까지 그려놓으면 갑갑할 것 같았다. 가령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다음 세계 지도, 전쟁사 서적을 뒤지거나, 어떤 감독의 특별전을 보고 평론집을 뒤지는 등 다른 곳에서 받은 영향을 독서로 푸는 식이다. 다만 금요일쯤 주말에 읽을 책 후보를 골고루 4, 5권 정해 놓는 것은 잊지 않았다.

▲ 읽은 책 관리에 유용한 아이폰 무료 앱 'iReadItNow'. ⓒitunes.apple.com/app/ireaditnow
한편, 읽은 책들이 대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었기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경중 조절해가며 읽었다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③과 ④의 경우, 확실히 '100권 읽기'라는 계획을 조금씩 의식한 결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내고,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기사에서 소개한 'iReaditNow'라는 독서 기록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독서 패턴을 보는 데 아주 유용했다.

그렇게 지난 2개월여 동안 읽은 책은 (수십 권의 만화책을 제외하고) 18권이다. <길상천녀>(요시다 아키미 지음, 애니북스 펴냄), <본격 제2차 세계 대전 만화>(굽시니스트 지음, 애니북스 펴냄) 등 만화책을 뺀 이유는 그것까지 포함시킬 경우 금방 계획이 끝날 것 같아서다. 버트런드 러셀의 논리학자로서의 삶을 다룬 <로지코믹스>(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외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처럼 과학기술 혹은 철학 분야로 구분되어 있는 만화책을 두고서는 약간 고민도 했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다시피 숫자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실험은 1월 기사를 쓸 때 손에 들려 있던 <불면증과의 동침>(빌 헤이스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부터 시작됐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을 다룬 고전 <프로파간다>(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공존 펴냄), 오키나와(류큐) 문학을 표방하는 메도루마 슌의 단편소설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아시아 펴냄), 전후 일본 문학·영화의 전쟁 기억을 담은 <냉전문화론>(마루카와 데쓰시 지음, 너머북스 펴냄. ☞관련 서평 : "아시아의 피를 먹은 일본, 기억상실증에 걸리다!" ), 성애와 사랑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 <사랑 예찬>(알랭 바디우 지음, 길 펴냄), 종교에 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편소설 <게르마늄 라디오>(하나무라 만게츠 지음, 이상북스 펴냄), 미국 전역의 정신장애아들을 만나러 다니는 여행기 <숏버스>(조너선 무니 지음, 부키 펴냄. ☞관련 서평 : "정상인들은 정말 역겨워요!" ), 음식을 테마로 이(異)문화의 즐거움을 비추는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 유머 넘치는 사후(死後) 인터뷰집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커트 보네거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진보에게 정치를 권하는 강의록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등이 1월에 만난 책들이다.

2월은 <불면증과의 동침>과 짝을 이루는 과학 에세이 <5리터>(빌 헤이스 지음, 사이언스 북스 펴냄), <미식견문록>을 보고 팬이 된 유머 넘치는 필력의 소유자 요네하라 마리의 <문화편력기>, <마녀의 한 다스>(마음산책 펴냄)로 시작됐다. 각종 오해와 헛소문에 가려져 있는 게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 <게이 컬처 홀릭>(게이컬처홀릭 편집위원회 지음, 씨네21북스 펴냄), 아시아 천 년의 기억을 '새기는' 일에 대한 기록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오윤희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 ☞관련 기사 : "고려대장경, '한민족'의 유산? 아니라니까!" ), 미디어 격변 시대에 책의 미래를 논하는 <전자책의 충격>(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마지막 기회라니?>(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홍시 펴냄), 그리고 국내에서 16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온 브레히트의 전쟁시집 <전쟁교본>(워크룸프레스 펴냄)을 읽었다.

물론 통독하지 않고 한 번 펼치거나 군데군데 읽은 책, 읽다 포기한 책은 제외시켰다. 그것까지 포함시키면 당시 관심사와 호기심의 지도가 완성되지만, 이 목록만 봐도 몇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냉전문화론>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하는 전후의 기록 작품들이 매우 궁금했는데, 국내에 소개된 게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선택한 게 오키나와인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이다. 또 게이이자 피의 전기 <5리터>를 통해 에이즈에 걸린 애인에 대한 구구절절한 마음을 보여줬던 작가 빌 헤이스에 빠져, 신간으로 날아든 <게이 컬처 홀릭>을 집어 드는 식이다. 작가가 게이 커뮤니티가 잘 발달된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구(區)에 살았기에 '과학기술-인체'로 분류되는 그의 논픽션엔 군데군데 '게이 문화'가 언급되고 있다. 저자 인터뷰를 위해 읽은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은 고려대장경 이야기이자 일종의 매체론이기도 한데, 때마침 지인이 매체 격동에 관심이 많은 일본 저널리스트 사사키 도시나오를 권해줘 '대장경'으로부터 천 년 진화한 그릇 '전자책'까지 만날 수 있었다(<전자책의 충격>).

시력 교정 수술과 빌 헤이스의 추억

사실 이번 기간엔 100권 읽기 시도의 최대이자 최후일 복병을 만나기도 했다. 2월 1일, 회복 기간이 3주 정도 걸리는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술 후 사흘은 밥 먹을 때만 실눈을 잠깐 뜰 뿐, 내내 눈 감고 라디오만 들으며 지냈다. 회복이 먼저이기에 빨리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런데 통증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몇 주 간 스마트폰, 모니터, 신문 등 가까운 것들이 뿌옇게 겹쳐 보이는 현상이 계속되자 슬슬 조바심도 나고 우울해졌다. 운동이나 술, 외출도 자제하라고 했기에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셈이었다. 그나마 심심풀이로 했던 것마저 눈을 사용하는 다큐멘터리 보기, 그림그리기였으니 평소에 시각에 얼마나 의존하고 살았는지 절감했다.

활자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세상은 참 지겨웠다. 책은 물론이요 신문, 트위터, 문자메시지, 외화의 한글자막 등 나를 울고 웃게 하는 많은 것들은 활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동안엔 들리는 것도 시원찮고 식욕도 떨어지는 느낌이었으니, 모든 감각의 활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 <불면증과의 동침>(빌 헤이스 지음, 이지윤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신체에 생긴 변화가 강렬했기 때문일까. 이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고 감정이입이 됐던 책은 빌 헤이스의 <불면증과의 동침>과 <5리터>였다. 전자는 저자의 인생을 괴롭힌 수면, 후자는 저자의 동성 애인인 스티브와 커플의 삶을 괴롭힌 피에 대한 전기이자 자서전이다.

저 자신이 집착할 수밖에 없는 테마에 대해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과학책보다 감정적이다. 가령 해당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의 연구 업적을 설명할 때도 그저 관련 기사를 재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인의 가족을 찾아가 그가 어떤 아빠인지 들으며 그의 인생을 재구성해보는 식이다.

여기서는 의료 제도 역시 하나의 시적 영감이 된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헌혈을 원하는 남성 지원자가 "단 한 번이라도" 다른 남성과 성행위를 한 적이 있다면 평생토록 헌혈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한편으론 "건강하고 HIV 음성인" 저자와 같은 이들이 장기를 기증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나는 스티브에게 내 심장이라도 떼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혈액만큼은-간단하게 뽑을 수 있고, 또 넘쳐나는 것임에도-결코 줄 수가 없다." 크아….

눈. 아마 내 인생을 괴롭힌 신체 건강상의 테마가 있다면 아마 눈일 게다. 빌 헤이스식 글쓰기를 이어 받는다면 먼저 눈에 대해 쓰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 신체검사 시간 때 시력 검사판 '0.5' 밑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아 안경을 맞춘 이후로부터 '뺑글뺑글 안경'이라 놀림 받던 중·고등학교 시절, 렌즈 한 쪽이 찢어져 '짝눈이'로 수업을 받는 날도 있었던 대학 시절, 12시만 넘기면 눈이 뻑뻑해져 밤샘 음주를 포기했던 일들까지 괴로운 기억의 원천이었다. (시력 교정 전 시력은 -9.25 정도다.) 3주 정도 수술 회복 기간을 거치면서 눈, 정확히 시력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좀 고생하고 나니 더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독서는 자서전을 쓰기 위한 준비라 했던가, 당장 내일부터 눈 관련 과학 서적을 뒤질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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