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아파트에서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하면 그 다음은 어떤 일이 이어질까?
가정에서 분리했다고 그것이 그대로 재활용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악취와 오물이 묻은 쓰레기더미가 모이는 폐기물 적환장에서 재활용품 선별 작업이 이루어진다. 누가 그걸 하고 있을까? 사회적 냉대와 열악한 작업 환경을 견디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환경을 지켜내기 위한 오물 처리와 재활용 과정이 가능해진다.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지 못하면 그 현장과 인근은 순식간에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다. 쓰레기를 마구 버려도 괜찮은 줄로 아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늘기 때문이다.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더미를 뒤져 누가 버렸는지 단서를 찾아내는 일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고약한 일이다. 온갖 더러운 액체를 닦아내고 찢어진 봉투나 서류에서 주소를 찾아내 과태료 고지서를 작성하기까지 쓰레기 단속은 고달프고 힘겹기만 하다. 이 일을 하는 이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어찌될까?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짐을 맡긴다. 도착지에 이르면 그 짐은 내게 돌아온다. 이 작업이 잘못되면 그야말로 황당해진다. 수하물 처리를 위한 치밀한 작업은 공항 지하 터널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몫이다. 도시의 땅 밑으로 들어가 도시가스를 연결하는 사람들이나 유해가스의 위험을 마주 하면서 케이블을 연결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이 또한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나 디지털 사회로 발전해갈 수 없다.
고층 아파트에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로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일을 하는 이들은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폭설이 내려 교통대란이 일어날 때 이 눈을 치우기 위해 진력을 다해야 하는 이들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눈 앞에서 기가 질린다. 그러나 왜 이리 제설 작업이 늦장이냐면서 질타가 쏟아질 때 이들은 아무 소리 못하고 연신 삽을 움직인다.
1㎜의 오차가 수십만의 생명을 좌우
이뿐만 아니다. 전철의 안전 운행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전철 아래로 머리와 허리를 낮게 숙여 차량 바퀴를 일일이 측량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해진다. 바퀴 두께가 얇아지면 탈선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의 오차가 수십만의 생명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 <통>(매일노동뉴스 지음, 펴냄). ⓒ매일노동뉴스 |
도대체 우리 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밑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시속 100㎞의 고속도로에서 잡물 처리를 위해 달리는 차 사이에서 도로로 뛰어들어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것들을 치우는 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한국 사회의 자해 행위
<통>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한 최전선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은 도리어 가장 위험한 지경에 늘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적 배려는 부족하기만 하다. 고된 노동과 위험한 작업의 연속 속에서 이들은 날로 시들어가고 절망해간다. 그러는 만큼 이들의 사회적 안전망만이 아니라 우리 전체의 안전 지수도 위험 수위에 육박해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정규직 전환은 꿈꿀 수 없고 일용잡급으로 만들어 고강도의 노동과 보장 없는 미래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면,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작업 자체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건 우리 사회의 엄청난 자해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듣지 못했던 목소리, 그러나 들어야 하는 소리, 보지 못했던 이들의 모습, 그러나 반드시 봐야 하는 현장을 적나라하면서 친근하게 다루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정말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보통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나 무시 또는 선입견이 이 책을 통해서 깨끗이 교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다양한 노동자들의 존재와 그 수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할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아주 쉽게 결정하고 마음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통(痛), 통(桶), 통(通)
매일노동뉴스는 이 책을 펴내면서 <통>이라는 제목으로 현장과 소통하고, 소통에 기반을 둔 통합을 지향하며 그럼으로써 모두가 함께 화통하는 세상을 바란다고 했다. 또 현장의 고통과 소통하면서 모두가 서로 통하는 그런 미래를 꿈꾼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이렇게 사방이 막힌 현실을 뚫어내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책 <통>이 또 다른 차원의 통이 되었으면 싶다. 그건 이 사회의 고통, 아픔을 직시하고 (痛) 그것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리는 울림통(桶)이 되어 막힌 세상을 확실하게 뚫어나가는(通) 힘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하도 많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이제는 대충 망각되고 말았지만 날치기로 통과한 예산에는 갓 태어난 아이들과 산모를 위한 사회적 보호, 노인들의 난방, 결식아동의 배고픔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강자와 부자들의 욕망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삭감되거나 사라진 예산 항목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가난한 동네의 공부방 지원비도 잘라먹은 자들의 횡포 앞에서, 이들이 도대체 뭐하는 자들인가 싶다.
뿐만 아니다. 최근 들어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 대한 천대와 착취가 우리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 아주머니들은 외친다. "우리가 쓰레기를 치우니 우리를 쓰레기 취급하는가?" 쓰레기 치우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진 못할지언정, 이런 식으로 부려먹고 함부로 자르고 짓밟는 사회는 그 사회 자체가 쓰레기가 된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은 위험지대에 매일 몰리면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고 이들과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다.
한참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다가 이 역시 망각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자본 롯데마트의 치킨 게임에 담겨 있는 저 무서운 "독점의 탐욕"에 대한 질타는 사라지고 언제부터 그래왔다고 "소비자에게 혜택"이라는 기만으로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배려와 연대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은 <현장을 가다> 세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도록 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복지 사회를 위해
수사당국은 은폐하려 애쓰지만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의 추악한 몰골이 매일 여기저기서 폭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짓고 세우는 성채의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들의 절규, 이들의 탄식을 담아내지 못하는 복지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허울뿐인 복지 사회는 그 복지의 부담을 사실은 민중에게 전가시키고 권력과 자본이 그 공을 내세우는 나라가 되고 만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에서 가장 유념할 일이다.
강도 귀족의 출몰로 압축되는 미국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등장한 독점자본과 권력의 동맹 체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들의 힘에 짓눌려 사는 이들의 목소리와 그 삶의 현장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아 가면 알아갈 수록 세상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등골을 알게 모르게 파먹고 피를 빠는 자본과 권력 동맹의 흡혈귀적인 체제를 이겨내는 길은, 현실의 진상을 널리 알리는 일에서 비롯된다. 정체를 감추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바퀴벌레 같아서 햇빛이 비치면 도망가기 바빠진다.
역시 현장을 제대로 아는 것은 변혁을 위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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