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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은 수학공식 같은 것?

대안학교의 길<9> '함께 하는 법'을 통해 배운것들

짧은 십 여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참 '배움'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배움'이란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달달 외우는 것에 불과했다. '배움'은 나에게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그렇게 나는 배울 줄도 모르고 배움을 나눌 줄도 몰랐다.

***'더불어 사는 삶'은 '수학공식'과 같은 것?**

이우학교에 들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사는 삶'은 한동안 나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수학공식처럼 여겨졌다. '더불어'라는 말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던 나에게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이우학교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불어 사는 삶'을 내 삶 속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우학교에서 2년을 지내오면서 우리는 참 많은 경험을 했다. 특히 수행평가로 하게 된 온갖 연극이나 그림자극, 인형극, 뮤지컬 등의 크고 작은 10여 개의 공연들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깨닫게 했다.

특히 지난 학기에 음악과 수행평가로 공연한 '뮤지컬 명성황후'는 우리 학년 모두가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 공연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도전을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동양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공연하라는 미션(?)을 받은 우리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함께 한 만큼 성취감도 크더라"**

대본에서부터 음악, 안무, 의상과 소품까지 모두 우리가 준비해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준비 기간이었다. 작은 노트북을 통해서 본 뮤지컬 명성황후의 웅장한 노래와 안무, 그리고 의상은 우리를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근차근 일을 분담하며 준비해 나갔다. 원래의 길고 방대한 양의 대본을 줄이고, 재밌고 기발한 파트를 넣었다. 우리가 아는 노래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연습하고, 안무를 짜고 리허설을 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회의를 하고, 연습을 하며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가 열정적으로 명성황후 뮤지컬 준비에 참여했다.

드디어 공연 날. 학교에는 공연할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전날 고등학교 1학년의 연극 공연 때 핀 마이크를 무리하게 사용한 탓인지 첫 번째 공연인 우리 반에게 주어진 핀 마이크는 총 6개였는데 그 중 3개는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나머지 3개의 핀 마이크와 줄 마이크로 진행해야만 했다. 게다가 우리 반의 명성황후 역을 맡은 친구는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하는 바람에 목이 쉬어 버렸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음향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잘 들리지 않는 핀 마이크 대신 조금 어색하더라도 줄 마이크를 사용했다. 마이크의 개수가 적어 비중이 적은 아이들은 마이크 없이 노래하고 대사를 했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열심히 노래하고, 연기를 했다. 종종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공연하는 동안 만큼은 정말 즐거웠다.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준비기간에서부터 공연, 그리고 뒷정리까지 힘들게 고생하고 노력한 만큼 많은 것을 얻은 공연이었다. 힘든 상황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동하고, 이해하고, 단결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많은 아이들이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을 배웠다. 길고 지루한 회의에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 밤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하는 동안 지친 친구들을 북돋아 주며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공연을 하면서 큰 성취감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고자 하셨고, 우리가 배우고자 했던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 같았다.

***'함께' 하려면 '남의 얘기'를 들어야**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모두 함께 하는 공연'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술과 수행평가로 그림자극을 했을 때였다. 그 때의 나는 뭐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의욕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새로운 일에서 우리들은 자꾸만 서로 부딪혔다. 회의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할 줄 몰랐고, 목소리 큰 아이들은 자신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림자극에 필요한 인형들을 제작할 때에도 소극적인 아이들에게는 굳이 참여하게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은 점수를 못 받는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림자극이 인형극이나 뮤지컬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어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일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회 활동에서도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학교 1, 2, 3학년이 고루 참여하는 중학교 총학생회 집행부 회의는 함께 일하는 법을 깨닫지 않고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없다.

중학교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처음에는 모든 일에 의욕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나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1학년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그 아이들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선배라는 느낌 때문에 쉽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나의 주장을 굽히고 다른 아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노력해서 자유롭게 말하고 의논하는 회의 분위기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나의 주장을 펼 때나 다른 사람에게 충고할 때 강하고 단도직입적인 어투로 말하곤 했다. 그것은 듣는 이를 불쾌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것은 나의 친구들은 물론 선후배나 때로는 선생님께도 상처를 주게 되었다. 학생회 활동을 통해 친해지게 된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같이 회의를 하게 되는 총학생회 집행부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물론 같이 회의를 하는 친구들도 강하고 단도직입적인 말투보다 부드러운 말투를 쓰게 되었다.

회의뿐만이 아니라 학생회 활동은 자기의 개인적인 시간이나 심지어는 잠잘 시간을 아껴가면서 참여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회의가 밤늦게까지 계속될 때가 많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주말에도 모여야 한다. 이런 일들은 보통 부서별 혹은 개인별로 나누어 할 때가 많은데, 이 때에도 우리는 '함께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일'을 나누어 할 때 '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함께 '우리의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나'의 책임감과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이 때 '나'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다. 우리 중학교 총학생회 집행부 아이들은 점점 이러한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나를 성숙시킨 기간을 되돌아보며**

한 번, 두 번… 공연이나 학생회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 할수록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했던 내 태도와 나 혼자 잘하려는 이기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나는 잘 하고 있다'는 자만심이 많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차츰 배워나가고 있다. '더불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함께 하는 법'을. 또한 나는 내 삶 속에 그것들을 적용시키고 있다. 이우학교에서 보낸 지난 2년은 나를 성숙하게 했고,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게 했다.

똑똑한 한 친구가 말했다. "스스로 배우는 것이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는 그런 소중한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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