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물질과 에너지 순환이 개인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엮여 있는가를 밝히고, 그만큼 각자의 행동이 아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이야기들의 확대판만은 아니다. 최첨단이라 할 만한 논의와 제안들을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책과 저자들의 구성을 보면 이해가 간다. 책 제목으로 쓰인 '월드 체인징'은 2003년 알렉스 스테픈이 설립한 단체이자 웹사이트(☞바로 가기)로,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혁신에 관심을 갖는 두뇌 집단을 표방한다. 과학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여하여 지구와 인류가 직면한 온갖 문제들을 망라하여 분석과 대안을 내놓고, 온라인상의 의견 교환으로 이를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 <월드 체인징>(알렉스 스테픈 엮음, 김명남 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예를 들어 위장 환경주의를 식별하는 법, 생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과 자연에 부담을 덜 주는 갖가지 소재들, 가구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디자인 하는 노력들을 알려준다. 이용 후 분해되는 휴대전화, 가방처럼 이동이 쉬운 조립식 주택, 미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곤충 고기 등 이미 알려져 있거나 혹은 과학소설(SF)에 등장할 법한 아이디어들을 보면 경이롭기도 하지만, 저자들이 과도한 기술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월드 체인징>의 많은 제안들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기술에 주목한다는 미덕이 있다.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특히 사회적 취약 집단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끈을 달아 땅에 굴려서 운반할 수 있는 원통형 플라스틱 물통인 'Q드럼'은 물을 50리터나 담으면서도 쉽게 집까지 물을 가져올 수 있어서 수많은 아프리카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강수량이 적은 지대에서 장대와 고운 발을 조합하여 물방울을 모을 수 있게 만든 '안개 수집기'도 참으로 기특한 물건이다. 한국에도 많이 보급된 태양열 음식 조리기나 자전거 발전기도 적정 기술의 사례로, 이 물건들이 개발도상국 벽촌으로 가면 그 상대적 유용성은 더욱 배가된다. 두어 장의 태양광 전지판 덕분에 아이들이 밤에 책을 보고, 어른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개벽이 일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되 상식을 거스르는 상식 만들기도 중요하다. 도시는 농업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쿠바의 수도 아바나 면적의 41%가 농토이며 여기서 생산되는 채소의 양이 쿠바 전체 생산량의 51%를 차지한다(86쪽)는 사실은 도시 농업의 커다란 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전력망에 물려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상식에서 벗어난다면 지역 수준의 소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도 가능하다(231쪽).
<월드 체인징>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도시에 대한 일관된 관심이다. 이들에게 도시는 해결 불가능한 슬럼과 공해의 집산지만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는 인구와 시설의 집중으로 인해 현재의 위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밀도가 높을수록 이동과 자원 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근접성에 따른 근접성'으로 인해 친환경적일 수 있다(293쪽). 녹지를 훼손하며 신도시를 확장하기보다 '도시 내부 우선 개발(infill housing)'을 하면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 대도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작은 노력으로 가장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월드 체인징>의 주된 접근 방법과 변화의 수단은 소비주의에 있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스스로 환경 부담을 낮추고 생산자에게 책임을 일깨우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생산과 유통을 유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해법의 전부는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월드 체인징>은 영리하고 현실적이게도 '정치'의 공간을 백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를 활용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도구들을 이야기하고, '소셜 네트워크' 활용과 직접 행동을 주문하며, 미용실이 지역 사회의 허브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눈길을 돌린다. 굳이 나누자면 비폭력 행동주의 정도라 할 노선이지만, <월드 체인징>에게 그러한 구분이 꼭 중요한 것이 아닐 것 같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노선이 아니라 현실의 결과를 만드는 극도의 '실용주의'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클릭티비즘은 좌파 운동을 망친다"(738쪽)는 주장이다. 마케팅에 근거한 온라인 캠페인이 정치력을 '확인율'이나 '조회율'과 같다고 생각하여 애먼 경쟁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또한 "몇 가지 링크를 클릭하기만 해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찌 보면 인터넷 검색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허상을 심어준 온라인파와 정치 운동가의 관계는 맥도날드 제품과 토종 요리의 그것과 같다"는 대목은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월드 체인징>의 사고는 예컨대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영향을 준 <그린 칼라 이코노미>(페이퍼로드 펴냄)의 반 존스와 매우 닮아있다. 기후 변화의 위기 앞에서 기업과 소비자, 정부 모두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함께 해결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가능하며, 그러한 희망을 설파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월드 체인징>은 이미 그러한 변화를 선택한 대기업과 혁신적인 중소기업들, 다양한 친환경 제품과 제조 방식을 소개하며 '비즈니스'의 기회를 강조한다. 물론 <월드 체인징>은 녹색 라벨을 붙여놓고 어떠한 자세한 설명도 없거나 문의 전화에 묵묵부답인 말뿐인 환경 기업들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잊지 않고 있으며, 소비자와 정부의 노력 없이는 기업이 변화할 수 없으리라는 환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어떤 '시장주의'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비자와 개인의 노력이 과연 기업의 이윤 동기와 시장 경쟁에서 비롯하는 전반적인 반생태적 경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의식적인 소비 행위가 낫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떤 조건 혹은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지면 기업의 행동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대체로 모호하며, 시장에 의존하는 해법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다소 둔감하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포함하는 생태계 거래권(614쪽)에 대한 기대도 그렇다. 이 항목의 저자는 탄소 거래 시장의 단점으로 체계가 복잡하다는 점, 꾀바른 거래자들이 시장을 '농락'할지도 모른다는 점, 유인책이 효력을 잃는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 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태계 거래권 구상은 개인 탄소 거래 시장(657쪽) 제안으로까지 나아가는데, 저자는 그것이 실제 작동에 난점들이 있겠지만 지구 온난화를 물리치는 일에 갖가지 기발한 접근법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소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훌륭한 소득일지 몰라도, 기후 변화의 엄혹한 현장에서 이런 평가는 너무 한가롭고 위험한 것이다.
이 책의 시장주의 경향에 대한 지적이 고답적인 좌파의 성마른 비판인지 아닌지는 현실 속에서 '실용적'으로 검토할 일이다. 다만 <월드 체인징>의 미덕과 이 책의 제안들이 갖는 유용성 못지않게, <월드 체인징>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맥락도 생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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