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은 가고 오웰은 남다
조지 오웰(1903~1950년)은 <카탈로니아 찬가>, <동물농장>, <1984> 등 유명한 소설(르포도 포함) 작가이다. 물론 책도 많이 썼지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 그의 인생관을 잘 표현해주는 건 당연 에세이들이다. 오웰은 수백 편의 짧고 긴 에세이들을 썼다. 이 책은 오웰의 에세이 전작 가운데 옮긴이가 일부를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다. 필명으로 조지 오웰을 썼다(George는 가장 흔한 영국 남자 이름, Orwell은 그와 인연이 있는 강 이름이자 마을 이름이다). 그는 사립 명문 학교 이튼을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식민지 버마에서 5년간 경찰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제국의 식민 통치와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결국 경찰 생활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와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나서, 그 체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를 출간하게 되고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
그는 사실적인 글쓰기를 원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린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탄압, 그리고 파시즘의 모습들을 글로써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런 전체주의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졌다.
전체주의는 과거를 계속해서 개조할 것을,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객관적인 진실의 존재 자체를 믿지 말 것을 요구한다. (229쪽)
"에릭은 가고 오웰은 남다"는 그의 묘비에 쓰인 글이다. 파시즘, 전체주의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함에 맞서려 했던 오웰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아 시대의 실상과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되돌아보다
이 에세이집의 목차는 발표한 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배열되었다. 물론 시대적으로 다르긴 해도 단독적인 에세이이기 때문에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오웰의 인생관, 정치관, 문학관을 자세히 이해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의 초기작은 영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들을 그린 내용들이다. 정부에서 마련한 임시 거처 "스파이크"에서 씹기도 힘든 빵을 먹으며 추위를 견디면서도 동료 부랑자들과 자신을 분리하는 잘난 체하는 부랑자, 담배 하나로 얻어진 우정과 같은 밑바닥 인생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식민지 시절 경찰 생활을 하며 겪었던 제국주의와 비인간성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코끼리를 쏘다'와 같은 글에서 나타나듯 이 시절에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원주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달하고, 그래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원주민'이 예상하는 바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게 그의 지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쓰고, 그의 얼굴은 가면에 맞춰져간다. 그러니 나는 코끼리를 쏴야 했다. (38쪽)
그의 초기작 대부분은 부랑자들과 함께한 생활이나 식민지에 대한 고발이다. 그런데 작가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페인 내전 발발이다. 그는 '파시즘'과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간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있었던 거짓된 사실을 밝히기 위해 힘썼다. 그가 총상을 입고 돌아와 쓴 소설들의 주제가 모두 정치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또 그는 자신의 조국 영국에 관한 글도 많이 썼다. 영국의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긴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영국, 당신의 영국'과 같은 글들이 그것이다. 또 민족주의(nationalism)에 대한 오웰만의 독특한 철학이 담긴 '민족주의 비망록'도 꼭 읽어봐야 할 에세이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보다 확대된 의미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정치적 가톨릭주의, 유대주의,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 평화주의와 같은 운동과 경향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느 정부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조국'에 대한 충성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집단이 실제로 꼭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181쪽)
어린 시절을 담은 '정말, 정말 좋았지'는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권위에 대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 어른들은 아이를 보면 '좋았던 시절'이라고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는 힘이나 성적, 빈부 격차 때문에 생기는 문제 등에 대한 망각이 숨어있다. 결국 오웰의 이런 에세이는 어른들에게 내리는 하나의 경고인 셈이다. 아이들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
나는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그가 살았던 시대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과 그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오웰은 우리나라에서 '반공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보면 좌/우의 논리를 떠나서 절대 권력은 부패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간성은 말살되는 현실을 논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을 읽기 전에 에세이집을 먼저 읽게 되어 그의 진정성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있다. 그는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에 그는 외로운 아이였으며 따라서 혼자 글을 쓰며 상상의 대상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25살 이전까지는 꼼꼼한 묘사를 하는 글을 썼으며,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는 것도 밝힌다. 그가 이렇게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글의 주제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정서적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297쪽)
하지만 글의 큰 변화가 생기게 된 동기는 스페인 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이었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 주제에서 벗어나 글을 쓴다는 건 그 시대에 살고 있었던 작가라면 난센스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고 밝힌다.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好惡),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297~299쪽)
또 그는 정치적인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충심에 따르기보다는 문학적 충심 사이에서 선을 보다 선명하게 그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 한 인간으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쪽의 시선에서만 보려고 하지 않았다. 양면을 모두 보려 했으며, 여러 관점에서 보는 비판적인 시선을 고수하려 했다. 정치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시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쪽 입장에서만 글을 쓰다보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글을 쓸 수 없다.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할 때 작가는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게릴라와 같은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글을 써야 하지 집단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웰의 글쓰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할까? 과연 정치적이지 않은 목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오웰이 끝까지 파시즘에 대항하여 글을 쓰려 한 것같이 지금도 거대한 권력에 맞서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우리사회가 병들지 않고 발전한다.
오웰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집필하며 끝까지 저항하는 정신이다. 언어의 타락은 사람들의 생각을 타락시킨다. 이는 우리가 똑바로 보고 있는 현실을 글로 옮기고, 진실에 더욱 다가가는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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