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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사유화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프레시안 books] 라이몬·펠버의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민영화인가 사유화인가?

조선 왕조에서 식민지 통치 그리고 다시 박정희식 개발 독재에 이르는 국가 폭정에 치를 떠는 민주주의자라면 당연히 국가(國家)보다는 민간(民間), 관(官)보다는 민(民)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국가 관료 지배 하의 국영 기업보다는 민간이 주인인 민영 기업이 더욱 민주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한국에서 국영 기업 민영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데, 당시 민영화를 추진한 사람들은 실제로 "관치 경제 타파"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병행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민영화에 임했다. 그리고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많은 진보 지식인과 진보 언론 역시 국영 기업 민영화를 당연시했다.

그렇지만 민영화란 정확히 말해서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즉,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해온 공유 재산을 소수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 본래 의미이다.

'사적(private)'이란 영어 등에서도 좋은 뜻을 가진 말이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 매우 친밀하고 애정 어린 것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만일 모든 사람의 생존에 공통적으로 필수적인 공유 재산을 갑자기 몇몇 친한 사람끼리 사적으로 소유하여 독점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국민 개개인 모두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수돗물과 전기, 가스, 의료, 노후 보장 등을 위한 공공 재산이 소수 사람들의 사유 재산으로 되어 그들만의 사익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황당한 일들이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더구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취약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한국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와 문명이 앞선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의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김호균 옮김, 시대의창 펴냄)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진행된 사유화(privatization)가 얼마나 가식과 거짓에 가득 찬 '미친 짓'이었는지에 관해 잘 정리된 기록이다.

사유화의 덫

▲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미헬 라이몬·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김호균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이 책의 독일어 제목은 "사유화 흑서(Schwarzbuch Privatisierung)"이다. 얼핏 '흑서'란 '백서'(white book, 정부의 공식 활동 보고서)의 반대말인 같은데,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따르면 '흑서(black book=Schwarzbuch)'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행한 동유럽에서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고서를 말한다. 이 독일어 제목을 통해 저자들은 오늘날 '민주주의' 정부들이 행한 '사유화'를 나치의 인류 대학살에 비유하는데, 실제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사유화'가 어떻게 수천만 명의 생명과 생존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훌륭한 책의 저자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는 30대 후반으로 모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가 활동 무대이다. 라이몬은 <행동의 시대 :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반대자들>(2002년)의 저자이고, 펠버는 <세계 무역의 숨겨진 게임 규칙(Die geheimen Spielregeln des Welthandes)>(2008년) 등의 저자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비유되는 '흑서'라는 독일어 제목, '미친 사유화'라는 이 책의 한글판 제목만 보게 되면, 이 책은 신자유주의 비판서가 흔히 그러하듯이 불쾌하고 참담한 현실에 대한 무거운 보고서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서평의 필자 역시 그런 첫 인상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 마음이 거북했던 것이 사실이다.

독자들은 염려 푹 놓으시라.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독자들은 저자들의 화려하고 경쾌한 글 솜씨에 놀라게 된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어 버리게 될 정도로 저자들은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독자들을 이끈다. 저자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펠버가 화려한 '춤 솜씨'를 자랑한다고 하는데, 이 책의 글 흐름은 경쾌하고 즐거운 비엔나의 왈츠 또는 남아메리카의 살사 댄스를 생각나게 한다. 더구나 역자 김호균의 훌륭한 번역 솜씨 또한 이 책을 술술 읽히게 만든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1997년에 출판되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세계화의 덫>과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의 덫(Die Globalisierungsfalle)>은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중도 좌파 잡지 <슈피겔>의 기자 겸 편집자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이 공저했고 강수돌이 번역했었다.

이 서평을 쓰는 나 역시 1999년경에 <세계화의 덫>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주창하고, 뿐만 아니라 1990년대 후반에 전 세계를 휩쓸던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세계화의 덫>은 독자들에게 읽기 쉬우면서도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 훌륭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의 서평을 쓰면서야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사유화에 대한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 역시 독자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좋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면 이 책의 제목을 <세계화의 덫>의 후속편, 즉 <사유화의 덫>이라고 짓고 싶다.

철도, 전기, 건강 보험, 연금을 사유화하면…

한국에서도 1993년 이래 '공기업 민영화'라는 이름 하에 사유화가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진행되어 온 사유화 논의와 정책은 통신과 철도, 전기, 가스, 상하수도 등 이른바 네트워크 기간산업에 국한되어 온 측면이 크다.

물론 이 책 역시 철도(영국), 전기(미국, 노르웨이), 상하수도(프랑스와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사유화와 그것이 초래한 비효율과 비극적 결과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사유화 논의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여 사유화된 건강 보험, 사유화된 교육 주식회사, 사유화된 적립식 연금 제도 등도 다룬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건강 보험, 교육, 연금 제도를 사유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주류 학자와 논객의 논리를 복지 제도, 금융 시장, 국가 재정 등 복잡한 제도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관점을 가지고 반박한다. 따라서 이 책의 많은 분석과 서술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건강 보험과 연금 제도 등을 다루는 전문가도 참고할 것이 많다.

사유화의 덫, 선진화의 덫

더구나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들고 있는 사례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선진국인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서울대학교 박세일이 주창한 '선진화'를 말하며, 이명박 정부는 아예 선진화를 국정 모토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선진화는 사실상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신자유주의화이며, 그 선진화의 일환으로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의료 산업화와 교육 산업화 즉 건강 보험, 교육, 연금 제도 등의 시장화가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게 되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추진하는 '선진화'의 최종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20여 년 전부터 일어난 '선진적인'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특권과 부패? 사유화가 더 효율적?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강점은 사유화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 증거를 들이대며 지적한다는 점이다. 흔히 주류 학자들은 국영 기업이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게다가 특권적인 관료와 공무원들, 게다가 노동조합 및 정치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까닭에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다.

우리의 진보 세력 내부에도 "공무원 및 공기업 노동자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그것이 '특권'과 '반칙'을 분쇄하고 '공정 사회'를 이룩하는 길이라는 시각이 큰 호응을 얻어 왔다. 특히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 같은 이들은 '개발 독재' 시절에 구축된 거대한 마피아(관료, 공기업 임직원, 변호사, 의사, 노동조합 등)가 만든 '부패와 특권의 온상'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이라고 보면서, 그들의 반칙과 특권을 분쇄하는 것이 진보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개발 독재'의 유산을 분쇄하는-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마저도 훌륭한 '진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과연 철도와 전기, 가스의 사영화(민영화),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 보험 및 교육의 사유화, 노인 연금 등의 사유화가 과연 더 효율적이고 더 투명하며, 더 '공평'하고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길인가? 이 책이 잘 보여주듯이, 공기업 및 공공 부문의 사유화, 민영화야말로 오히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비효율의 극치이며, 더구나 공공 재산을 몇몇 소수의 사유 재산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사익(私益)을 둘러싼 부패와 특권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마피아가 생성된다.

미국의 전력 산업 사유화 과정에서 부상한 엔론(Enron)의 경영진이 어떻게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 신용평가회사와 유착하여 소액 투자자와 직원을 등쳐먹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 이 책은 영국의 철도 사영화 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철도주식회사의 주주들이 영국 정부와 국민을 어떻게 등쳐먹었는지, 얼마나 많은 특권과 특혜가 그들 투자자에게 제공되었는지도 잘 보여준다. 또 이 책은 상하수도 민영화/사유화 과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좌파적인 만델라 정부와 볼리비아 문민 정부의 정치인들이 얼마나-세계은행 및 IMF의 후원 하에-특권화되었는지도 잘 보여준다.

사유화 과정, 더 나아가 시장주의화 과정 일반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마피아의 존재와 이해관계는 왜 세계 최고의 경영 효율성을 가진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을 왜 굳이 한국의 일부 관료와 정치인이 사영화/민영화하려 애쓰는지 그 숨겨진 이해관계를 짐작하게 해준다.

미국식 선진화와 유럽식 선진화가 다른가?

더구나 유럽인에 의해 쓰인 이 책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역시 신자유주의와 사유화 물결에 깊게 침식되어 왔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 등을 공급하는 유럽의 사영화된 (과거의 공기업이었던) 서비스 업체들이다. 그리고 수익 극대화를 지상 목표로 하는 이들 서비스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유럽연합(EU)의 대외 통상 정책에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는데, 이것은 한국과 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한미 FTA보다 더 한국에 불리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비벤디(Vivendi) 등 프랑스의 상하수도 기업들이 세계 각국 정부에게 상하수도 사영화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례는 한국-EU FTA 비준 이후 유럽의 수도 회사들이 한국 정부에 대해 상수도 사영화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임을 예고한다. 또 이것은 우리나라의 삼성엔지니어링, 두산중공업 등 상하수도 플랜트 업체들이 서울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에너지 및 상하수도 사업의 사영화를 위한 제도적 틀(규제 완화 및 사영화)을 성사하고자 EU 및 미국과의 FAT 협정을 밀어붙이는 사정도 짐작케 한다.

FTA와 사유화 : 왜 윤증현은 '서비스업 규제 완화'를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사유화와 관련하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FTA를 했을 경우 논쟁의 핵심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다.

한국의 제조업 국제 경쟁력은 이미 상당 수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따라서 한국-EU FTA가 되었건, 한미 FTA가 되었건, 자동차와 전자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출 증대와 수입 증대 효과, 그 상쇄 효과 등의 득실을 계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더구나 그 상쇄 효과를 각종 계량경제학 모델을 이용하여 추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국이 유럽 및 미국과 FTA를 했을 경우 정말로 중요한 피해는 서비스업 영역에서 발생한다. 특히 이것이 역진 방지 조항 및 투자자 국가 소송제와 결합되어 있을 경우에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서비스업이란 바로 상하수도, 철도, 우편, 가스, 전기, 의료, 노인 연금, 금융 등 국민들 개개인의 일상적 삶과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재이며 국민들 개개인에게 봉사/서비스하는 공공 인프라이다. 그런데도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도 서비스업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이다. 상층의 특권적 관료 세력은 건강 보험의 사영화와 공교육의 사유화 강화 등을 위해 FTA를 이용한다. 이것은 대형 할인점 규제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유럽과의 FTA 협상을 핑계 대는 것과 같다.

만약 유럽 및 미국과의 FTA가 국회에서 비준될 경우에도 한국의 제조 기업은 여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FTA는 모든 국민 개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서비스 공공재의 사유화를 돌이킬 수 없이 확고하게 만들 것이고, 그리하여 일부 특권적 엘리트를 제외한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국민들 상당수에게 상하수도와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의무 교육과 건강 보험 혜택이 중단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다.

FTA의 문제는 우리 경제의 국제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국민들 개개인의 '삶'이다. 그 삶이 위협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영화의 덧'이고, 따라서 '미친 사유화를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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