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11년 '親북 冊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하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11년 '親북 冊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하나?

[이권우-김학원-장은수-이홍·上] 책으로 전망하는 한국 사회

지난 7월 31일 '프레시안 books' 창간호가 나온 지 꼭 5개월이 지났다.

처음 '프레시안 books'를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주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신문, 잡지들이 앞 다퉈 연예, 게임, 여행, 쇼핑, 패션, 미용 등에 지면을 할애하는 때에 책이라니…. 한 언론의 기자는 적극적으로 말리면서 아예 연예를 다루는 새로운 매체를 권했다. "강 기자 드라마, 연예인 좋아하잖아? 이름은…'에로시안' 어때?"

기자가 보기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충격 속에서 어느새 대세가 되어버린 모바일 디지털 환경에서 책이 설 자리는 더욱더 좁아질 게 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모바일 기기의 충격에 잔뜩 위축된 출판계의 모습도 불안을 부추겼다.

한편, 다른 흐름도 눈에 띄었다. 2010년 초부터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 등처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책들이 트위터 등을 통해서 많은 독자와 만나는 모습은 여전한 '책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출판사가 단테를 읽는 모임을 열었더니, 수십 명의 독자들이 매주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에서 단테의 <신곡>을 매개로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려는 이들이 수십 명이나 되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던가? 여전히 책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매개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이런 기대와 불안 속에서 '프레시안 books'를 만든 지 5개월. 그리고 21세기의 다음 10년이 시작되는 2011년이 밝았다. 새해에는 책과 사람들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그 안에서 책은 자신의 존재감을 어떤 식으로 보이며 진화할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놓고 책 동네의 '고수' 4인이 모였다.

지난 4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의 사회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장은수 민음사 대표, 이홍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가 만났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좌담은 애초 예정된 시각인 4시를 훌쩍 넘긴 6시에야 끝났다. 이들은 그 후에도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책과 한국 사회에 관한 온갖 얘기를 쏟아냈다.

그들의 '격정 대화'의 주요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서 소개한다.


책의 위기인가, 책의 변신인가?

▲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새해가 밝았다. 2011년은 21세기 첫 10년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10년을 시작하는 해라서 더욱더 각별하다. 이참에 지난 10년간 책 동네에서 있었던 일들을 점검해보고, 다음 10년을 전망해보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또 최근 들어서 어느 때보다 '책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된다.

김학원 : 책의 위기라…. 가시적으로 보면 분명히 위기다. 지난 수십 년간 TV, 컴퓨터 등의 등장과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책은 계속해서 지식 정보 전달과 같은 자신의 역할을 다른 매체에 내주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책의 황금시대는 이미 20~30년 전부터 조금씩 쇠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20~30년간의 변화와는 다르다. 지금은 이전과는 또 다른 근본적 전환기인 것 같다. 지난 수십 년간 책의 위기가 말해졌지만, 여전히 최근까지 책의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도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지하철은 책과 <메트로>와 같은 무가지가 경쟁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책은 지하철에서 사실상 퇴출되었다.

이제 지하철에서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무가지와 경쟁한다. 책이 지배권을 행사하던 마지막 공간 중 하나를 스마트폰에 내준 것이다. 지하철만 그런 게 아니다. 침대는 어떤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었던 사람도 침대에서는, 수면제 대신 사용하는 용도더라도, 책을 펼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제 침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영화를 본다.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책이 온전하게 지배력을 부분적으로라도 행사하던 공간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미 지하철, 침대는 책의 공간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책의 위기는 과거에 말해졌던 위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홍 : 1992년 말 출판사에 처음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책의 위기'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 해가 없었다. 책을 만들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출판계는 항상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었다. 도대체 단군 시대에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기에…. (웃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말하는 책의 위기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책의 위기가 조금 더 위태롭게 들리는 것은 그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책의 위기=출판의 위기=읽기의 종언'이라는 등식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에 가깝다. 종이책이라는 한정된 매체만 본다면, 분명히 위기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읽는 것을 그만둘까? 종이책의 생존이나 소멸과 읽기의 문제는 출판인들과 달리 일반 사람들에게는 별개의 문제다.

사람들은 종이책이 없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읽을 것이다. 당연히 종이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읽기가 등장할 것이고 새로운 규범과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종이책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읽기는 축소되겠지만 소멸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가장 오래된 미래'인 책의 지위를 유지시켜줄 것이다. 새로운 읽기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콘텐츠 산업으로서 출판의 지평은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의 여명이다.

이권우 : 김학원 대표와 이홍 대표의 의견이 충돌하는데….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미 책은 문화 생태계의 가장 밑으로 전락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은 드라마 때문에 책을 안 읽는다고 푸념하는데 또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게임 때문에 드라마를 안 본다고 푸념하는 상황이니까.

▲ 이홍 웅진싱크빅 리더스북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김학원 : 글쎄,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잠이 들 때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면서 잠을 재촉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까? 오히려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뭔가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홍 대표의 말대로 테크놀로지가 추동하는 새로운 미디어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다. 활자 신문이 처음 등장하자 그것은 책과 충돌하기는커녕 상호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신문을 보고 또 신문을 보는 사람이 책을 읽고. 책의 황금시대는 신문과 함께 간 측면이 있었다.

컴퓨터, 인터넷이 등장할 때도 처음에는 혼란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책과 출판 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예전에는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서점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책을 훑어보고, 구매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스마트폰과 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스마트폰과 책은 서로 충돌하는 중이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지하철, 침대 등 지금까지 책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책이 사라졌다. 반면에 스마트폰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과거 책에 실렸던 것과는 다르다. 종이책의 콘텐츠를 스마트폰에 그대로 올린다고 해서 이전처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책을 접할까?

장담할 수 없다. 책이 처한 위기 상황을 제대로 주도면밀하게 파악하고 대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낙관할 때가 아니다.

이홍 : 역사적으로 등장해 지분을 확보한 주요 매체들이 맥없이 소멸되거나 대체된 예는 많지 않다. TV가 등장하면서 영화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되었고 실제 그런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 영화 산업의 규모는 역대 최대이다. 같은 영상이지만 분명한 차별화, 특히 콘텐츠의 차별성은 우월적인 지위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정점에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완고하게 붙잡고 있지만, 그 반대편인 대학로의 소극장들에서 오프라인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꾸준함도 명맥만 유지된다고 폄하될 수준은 아니다. 영상의 시대가 왔을 때 소리만 들리는 라디오가 아직도 멀쩡하게 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을 거라 예상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지금 책과 출판의 위기를 말하면서 던져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존해서 번창하고 있는 모든 매체들의 공통점은 진화와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좋은 시절 갔다고 징징거리지 않았다. 그럼 종이책은? 진화를 받아들이고 대체될 수 없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게을렀던 것이 지금의 위기를 낳은 게 아닐까?

종이책이 길을 찾아 자기 진화에 성공한다면,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생존할 것이다.

진짜 두려워해 할 것은…

▲ 장은수 민음사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장은수 :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자. 사실 책이 미디어의 한 주류가 된 이래,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처음으로 맞은 것은 아니다. 이미 20세기 초에 사진, 영화, 라디오 등 그때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디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것이 소설, 회화 등 종래의 미디어들에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1930년대에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바로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근대적 지식의 생산-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성찰했다.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나 '사진의 작은 역사' 등은 그 성찰의 결과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낸 새로운 미디어를 인문학적으로 전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 순간 기술은 인문학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어떤가? 계속해서 책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드물다. 기술의 충격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의 부재는 시민들에게 기술 만능주의자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게 했고, 그것은 다시 시민들의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어 냈다.

책의 위기, 출판의 위기는 어쩌면 그 결과가 아닐까? 지금 출판이 위기라면, 이야말로 그 진면목이 아닐까?

이권우 : 책의 위기는 곧 인문학의 위기다?

장은수 : 그렇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칸트를 이야기하지만, 칸트의 철학으로 스마트폰을 사유하지 못한다. 베냐민은 오래된 사유의 전통과 최첨단 매체의 등장을 하나로 이음으로써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눈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관련해서 최근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게 전자책이다. 그런데 전자책의 '충격'은 있는데, 전자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부족하다. 스마트폰 또는 전자책이 위기를 불러오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생긴 게 아닐까? 현재 전자책에 대한 담론이 단말기 생산업자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예전에 신문이나 음반 또는 영화가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유통 쪽의 논리를 고민 없이 따라간 결과 콘텐츠 산업의 기반이 붕괴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진짜 출판의 위기다. 이런 식으로는 위기를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어렵다.

김학원 대표가 얘기하듯, 최근의 매체 환경 변화는 책의 근본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까지 종이책의 장점 중 하나는 '이동성(mobility)'이었다. 그런데 모바일 매체의 등장과 함께 종이책의 이러한 장점은 절대 우위에서 비교 우위로 바뀌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규칙으로 책을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 책에 대한 어떤 새로운 규칙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 그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생각보다 파멸적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즘 음악 기획자는 많은 경우 콘텐츠 생산자에서 콘서트 기획자가 되었다. 이제 음악 자체를 기획하지 않고 춤이나 공연 같은 음악 외적인 것에 관심을 쏟고 있다.

출판인들도 잘못하면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잃고 이벤트 기획자나 광고 기획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가령, 책은 공짜로 주고 돈은 강연회로 벌자, 콘텐츠는 무료로 제공하고 비용은 광고에서 충당하자 등과 같은…. 이는 음반은 공짜로 주고 돈은 콘서트로 벌자, 이런 음반의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콘텐츠 자체에 대한 고민, 즉 콘텐츠의 '고유성(originality)'에 대한 고민은 사라진다. 그런데 고유성을 포기하면 콘텐츠 산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일본 출판이 위기를 맞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8만 종 정도의 책을 내지만 그중에서 고유성이 있는 콘텐츠는 아주 적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의 책은 다른 책의 내용을 복제하거나 단순 변형함으로써 생산되고 있다. 한국은 고유한 콘텐츠를 생산할 능력도 없으면서 고유성을 강화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10년 후에 한국 출판은 고유한 콘텐츠는 찾아 볼 수 없는, 완전한 지식 수입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외면당하는 책, 이유는?

▲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책의 위기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의 위기로 나아갔다. 그런데 지금 독자들이 인문학을 외면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성찰적 지식도 부족하지만 대안적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들이 갈구하는 것을 책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다른 매체로 눈을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장은수 : 사실 성찰적 지식과 대안적 지식은 길항한다. 고유한 성찰적 지식이 없으면 현장에서 대안을 얘기한다고 해도 기존에 있었던 말들의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장의 문제의식에서 멀어지면 성찰적 지식이라 해봐야 자기 독백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독백은 근대적 지식의 근본적인 특징이자 약점이다.

근대적 지식은 모두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책은 혼자 쓰고 혼자 읽는다. 독백으로 쓰이고 독백으로 읽는다. 그것이 근대적 책의 규칙이다. 그런데 이런 근대적 지식과는 반대로 전근대 지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화 속에서 탄생했다. 소리 내어 읽기는 근본적으로 대화적이고, 타자의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성립한다.

근대적 지식은 대화에 기반을 둔 지식에 의해 견제당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폐로 떨어질 수 있다. 근대적 지식이 혼잣말을 하지 못하도록 균형을 잡는 게 바로 편집자의 역할이다.

이홍 : 산업사회의 중심은 생산자였다. 정보사회의 중심은 누구인가? 권력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했다. 대세이고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출판은 아직도 생산자 중심의 사고를 고집하고 있다. 방금 장은수 대표가 지적한 근대 지식의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이란 여전히 저자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이고 출판은 이런 구조를 독점해왔다. 정보화는 기본적으로 지식이나 정보의 생산뿐만 아니라 관계의 피드백을 통해 비판되고 수정되고 교체되어야 하는데 종이책은 이 문제에 대단히 비탄력적이다. 그러므로 자기 진화의 핵심은 종이책과 구조로서의 출판이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난 아직도 여전히 대안 부재의 상황이라 생각한다. 스마트한 매체들이 활성화되어서 꼭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텍스트를 읽는 게 가능해졌다. 그럼 이런 전자 텍스트를 열심히 읽는 사람은 종이책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들일까, 아니면 새로운 소비자들일까? 도대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텍스트를 읽을 것이라는 시장 판단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안 읽은 게 아이패드가 없었기 때문인가?

디지털 콘텐츠 환경에 대비한다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데, 어떤 것을 보면 '이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지 굳이 책이라고 할 게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장은수 : 이홍 대표가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출판에서 가장 고민이 덜 된 부분이 바로 '사용성(usability)'에 대한 고민이다. 가령, 전자 산업의 예를 들면 휴대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사용이 불편하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다. 애플의 성공은 이 부분을 파고든 덕이 크다.

그렇다면 책의 절대 우위가 사라진 시대에 출판은 다시 사용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종이책이 모바일 기기들보다 읽기에 편하지 않다면 독자들이 지금처럼 책을 선택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사용성에 대한 고민 없이 책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 지식인' 혹은 '독서 세대'의 등장?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방금 인문학 위기가 얘기가 되었지만, 2010년에는 '인문학 열풍'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현상이 출판계에 있었다.

장은수 :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시민 지식인의 등장이다.

예전에는 인생 후반전은 공부 없이 살 수도 있었다.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보통 10대 후반에 사회적 교육에서 배제되고 나면, 그동안 공부한 지식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20대 이후로는 지식의 적극적 축적이 없는 상태로 평생을 살았고,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출판계에서는 사십대 이후 분들은 사실상 없는 걸로 생각했다. 법정 스님 책을 찾아서 읽으면 대단한 거고. (웃음)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강단 지식인들과는 구별되는 수많은 시민 지식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학교의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능동적으로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정규 교육과 관계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은 각종 강좌를 찾아가거나 토론 모임 등을 통해서 보충한다. 이런 시민 지식인들이 진화한 형태가 바로 파워 블로거, 또는 마니아들이다.

그들의 관심은 책과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구축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사회는 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것을 끝없이 요청한다.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사회적 삶은 점점 길어지고 있으며, 지속적 학습 없이는 그들은 그 시간을 충만하게 채울 수 없다.

2010년에 있었던 독서 흐름도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은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공감의 시대> 등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인문학 열풍이라기보다는 30~40대에 포진해 있는 수많은 시민 지식인들이 이번에는 인문학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의 자신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책들을 읽는다. 가령,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아웃라이어>, <잉글리시 리스타트> 등. 올해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따라서 작년 독서계에 나타난 현상은 인문학 열풍이라기보다는 독자들의 사회적 좌절 혹은 사회적 열망이 그런 책의 소비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느 언론에 '올해의 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추천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그건 도서 구매를 통한 집단적 항의 시위라고. (웃음)

이권우 :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김학원 대표는 어떻게 보았나?

프레시안(손문상)
김학원 :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인기를 끈 것은 인문학 열풍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한국 사회의 이른바 '독서 1세대'가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들이 아이를 낳으면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어린이, 청소년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최근 온갖 강좌,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이들 '독서 1세대'의 영향 덕분이다. 사실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대학을 다니는 내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세미나를 했었다. 이들이 바로 지역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강좌 등에 등록해서 바로 예전에 자신들이 했던 그런 모습을 재연한다.

그들이 권하는 책을 읽고 성장한 아이들이 이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이 되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지난 2008년 여름에 촛불을 들었던 '촛불 세대'와 겹치고. 나는 이들이 잠재적인 '독서 2세대'라고 생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이런 독서 1세대와 2세대가 서점, 광장, 특강의 강의실에서 만나며 10대에서 50대까지, 여성과 남성을 넘나들면서 더 광범위한 독서 세대를 형성해온 시장의 물적 토대 속에서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하던 참에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아이한테 최근에 읽은 책을 물었더니 똑같은 책 두 권을 언급했다. 부모와 아이가 즉 독서 1세대와 2세대가 같은 책을 읽은 것이다. 즉, 부모가 아이와 같이 입시 설명회도 가지만, 서점에서 같은 책도 고르는 것이다.

이렇게 독서 1세대와 2세대가 결합되는 상황을 잘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의 욕구를 얼마나 사로잡느냐에 따라서 향후 10년간의 한국 출판계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1세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책과 또 책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마련하고 더 나아가 잠재적 2세대를 확실한 2세대로 안착시켜야 한다.

이런 일이 성공하면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도 기존의 책으로 대표되는 콘텐츠가 살아남을 수 있고, 더 나아가 3세대, 4세대가 차례로 등장해 한국의 독서 인구가 많아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인기가 던지는 화두다.

이홍 :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히트가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부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문학 열풍'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면 특히 고전 읽기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징후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다른 책으로의 확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한계는 명백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은 수십만 명의 독자들이 다른 인문·사회과학 책을 얼마나 찾을까? <정의란 무엇인가>가 50만 부가 넘게 나갔다지만 그 중에 80% 이상, 혹은 그 이상의 독자가 다른 책을 찾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지난 10년간 쏟아졌던 인스턴트 지식 책에서 이탈한 독자들의 실망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경제·경영서가 대표적이다. 1980~90년대에 한국의 CEO와 비즈니스맨들의 손에는 마쓰시다 혹은 소니의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에 관한 책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겅호>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을 돌려가면서 읽었고 잭 웰치의 신화와 피터 드러커의 사상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책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책들은 시류를 따라 무분별하게 동어 반복된 책들이고 심지어 그냥 복제된 경우도 많았다.

이마저도 2007~8년 외환 위기와 신자유주의 붕괴를 겪으면서 세상에 미안한 책들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실망한 독자들이 각성하고 인문학이란 바탕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문제를 보자는 일련의 흐름이 생간 건 사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을 읽으면서 그런 반발에 동참한 것 아닐까?

문학의 침체 또는 노화?

ⓒ프레시안(손문상)
이권우 : 오늘 얘기의 한 주제가 인문학인데, 지난 10년간 문학 특히 한국 문학의 침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도 눈에 띄었다. 장은수 대표가 보기에는 어땠나?

장은수 : 최근 상황은 '한국 문학의 침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2010년에도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황석영의 <강남몽>,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등과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왔고, 김훈, 박민규 등도 나름대로 선전했다. 따라서 침체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문학적 성취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는 지난 10년 동안 등단한 작가의 베스트셀러가 거의 없다. 최근 한 대형 서점에서 지난 10년간의 베스트셀러 500종을 꼽았는데, 그 안에서 지난 10년간 등장한 소설가의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황석영, 조정래, 김훈, 신경숙 등 이전 세대의 작가들은 모두 자기 세대의 독자들은 대량으로 확보하고 있는 반면에, 지난 10년간 등단한 작가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럴까?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새로운 작가들이 자기 세대와 비동질성, 혹은 비동시성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혼자 뒤쳐져 있거나 혹은 혼자 앞서 나가고 있다. 어쨌든 그들이 동세대들에게 광범위한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이런 문제에 주목한다면 분명히 지난 10년간 한국 문학은 쇠퇴 혹은 침체했다. 수많은 문학 편집자들이 이런 정체를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가령, 단편보다 장편을 권장한다든지, 인터넷 공간을 소설 연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만든다든지 등….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다.

물론 2010년에도 황정은, 김혜나 등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했지만 있었지만 모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문학적 한계라기보다는 확산의 한계 같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또 다른 괴물이 등장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학원 : 아이돌 스타들이 활동하는 모습처럼 베스트셀러 작가들 몇몇이 바통 터치하듯이 릴레이로 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더구나 이런 스타 작가들의 작품도 계속 재미나 문학성 양쪽에서 다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 아닌가?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어느 순간에 독자들이 더 이상 한국 문학을 찾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라 몇몇 스타 작가에만 의존해온 출판사 역시 책임이 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치 대중음악에서 홍익대학교 앞이 그런 공간이듯이 한국 문학의 인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작가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세대의 문제의식을 마음껏 발산하는 작품을 투고할 문예지 또 정기적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출판사나 작가들이 스타 시스템으로 만든 대중 공간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공간을 확보하는데 관심과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출판사나 작가들 역시 대형 서점에서 독자들을 사인 행렬에 줄을 세우는 것만 아니라 다섯 명 열 명이라도 독자와 눈 맞추며 작품을 이야기하며 보다 깊게 소통하는 언더그라운드 활동의 영역과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스타들에 대한 졸업 현상이 오기 전에 이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 오른쪽부터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장은수 민음사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이홍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장은수 :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언더그라운드는 답답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1990년대 초에 기존의 문학 제도에 반발한 이들이 <리뷰>, <이다>, <상상> 같은 잡지를 무대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고, 그런 노력이 모여 <문학동네> 같은 잡지가 등장했다. 지금 스타 작가로 꼽히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한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하려면 기존의 문학적 틀이 답답한 작가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그런 언더그라운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이 부재하니까 기존의 문학 권력 혹은 편집자의 관리로 만들어진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작가들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 편집자들이 제일 우려하는 현상은 '문학 졸업 현상'이다. 역량 있는 예비 작가들이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으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되면 한국 문학이 더 활력을 잃게 되고, 그것은 결국 한국 문학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이홍 : 나는 문학 분야에 대해서는 관전자에 불과하다. 그런 입장에서 봐도 한국 문학, 특히 문단의 폐쇄성은 대단히 지겹고 고루하다. 전통인지 뭔지는 몰라도 등단 제도가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인데 자기들끼리 권력 만들어서 짬짜미하고 키워주기 하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폐쇄성이 싫어서 서클을 벗어나는 순간 선배 작가들에게는 물론 언론과 출판사로부터도 왕따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숨통이 막힌 구조에서는 실력 있는 신진이라 해도 비즈니스를 못하면 변두리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새로운 작가들의 언더그라운드로 기능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마저도 최근에는 몇몇 기성 작가들이 장악하면서 신문, 잡지와 같은 오프라인의 권력이 온라인까지 이어지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독자들은 교체되었는데 작가들이 교체되지 않고 있다. 대가들이 생존하는 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떠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대중은 이야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소설과 문학은 출판의 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틀과 구조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게 된다. 한국의 작가들도 이런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일본의 소설을 보면, 한국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와 기발한 이야기 구조가 돋보인다.

막막한 서정성의 과잉이나 끝없이 사변적인 자기 독백, 의미 없는 성장 이야기에 졸렸던 독자들을 읽기의 재미에 빠지게 해준 것이 사실이다. 천편일률적인 폐쇄성을 걷어내고 훨씬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통한 독자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문단은 모르겠으나 문학 출판의 미래는 어둡다.

책을 통해서 2011년 한국 사회를 전망해보는 4인 좌담의 나머지 내용은 오는 14일 발행되는 '프레시안 books' 23호에서 계속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