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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핏물이 '콸콸콸'…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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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핏물이 '콸콸콸'…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안종주의 '위험사회'] 인간이 만든 재앙, 가축 전염병의 창궐

구제역은 언제 끝이 날 것인가.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국을 휘젓고 다닌다.

바이러스의 습격에 농심이 죽어간다. 농·축산인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제 위험의 단계를 넘어 위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더는 기댈 곳이 없다. 정부 당국을 믿지 않은 지 오래됐다. 구제역의 망령과 저주로 농·축산인은 자포자기 상태이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구제역 대유행이라는 대재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가축 전염병 공포가 신묘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구제역에 이어 12월 말에는 조류인플루엔자까지 한국을 덮쳤다. 정부와 농·축산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좋을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재까지는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구제역과 달리 조류인플루엔자는 확실한 인수 공통 전염병이다.

물론 사람에게 전파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람의 사망은 주로 후진국에서 일어난다. 한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을 위험성은 낮은 편이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중증 인체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사례는 2003~2009년 447명이며 이중 263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아제르바이잔,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등 의료 체계가 열악한 국가에서 주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바이러스의 세계다. 어제까지 사람과 잘 지내던 바이러스가 오늘에는 살인마로 표변할 수 있다. 따라서 조류인플루엔자의 유행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체에 얼마나 치명상과 피해를 주느냐와 관계없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가축 전염병이 우리 사회에서 경계해야 할 위험 요소로 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대량 살처분에 따른 농·축산가의 막대한 손실과 육류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서민 가계의 부담 증가와 같은 경제적 위험은 피부에 당장 와 닿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와 함께 살처분에 동원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살아있는 소, 돼지, 닭 등을 대량으로 땅에 파묻으면서 느끼는, 대량 생명 살상에 따른 심리적 위축과 동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이다. 여기에다 감염과는 거리가 먼 데도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소·돼지·닭·오리 따위를 먹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관련 음식점이나 식육업자도 조마조마 하며 지내고 있다.

30년 전쯤의 일이다. 필자가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 연구소에는 의약품 연구 등에 사용하기 위한 동물 사육실이 있었다. 생쥐와 래트, 토끼 등의 실험동물을 키우던 이곳에서 일하던 50대의 한 기능직 직원은 1년에 수백 마리씩 동물을 죽인다는 죄책감을 달래려 술을 자주 마시곤 했다. 연구소에서는 1년에 한 차례 동물 위령제를 지내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심리적 위축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30년 전쯤에도 이러했는데 지금 동물을 죽이는 사람은-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천, 수만 마리를 한꺼번에 죽이는-그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이 옛날보다 더할 것임에 분명하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동물 복지에 이어 동물 해방운동까지 벌어지는 요즘 설혹 전염병이 돌아 법대로 살처분을 한다 할지라도 산 채로 수십만 마리를 매장하는 모습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대처 방법 밖에 없냐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지난 11월 20일 경상북도 안동 와룡면 일대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생매장'하는 모습. 농림수산식품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나, 시간·인력을 이유로 제대로 살처분을 하지 않고 가축을 생매장하는 사례가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목격되고 있다. 이 사진은 <경북매일신문>이 찍은 것으로, 지난 12월 14일 동물보호연합 등이 기자 회견에서 공개한 것이다. ⓒ경북매일신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나 40년 전에도 가축 전염병이 있었다. 탄저병과 같은 인수 공통 전염병은 지금보다 당시에 더 유행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수십만 마리의 가축을 한꺼번에 산채로 매장하거나 죽이는 일은 없었다. 가축이 전염병에 걸리는 것은 가축 탓이 아니다. 사람 탓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살처분 당하는 것도 사람 탓이다.

가축의 처지에서 보면 지금 사회는 분명 위험 사회다.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도 이들은 산 채로 매장되기 때문이다. 농·축산인의 처지에서 봐도 현대 사회는 분명 위험 사회다. 자신이 키우던 가축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인근 지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애지중지 기르던 가축을 몰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축 전염병 창궐과 이로 인한 가축 대량 살상은 거의 재앙 수준이다. 산 채로 마구 파묻은 돼지 매몰 구덩이에서 나온 돼지 핏물이 계곡물을 오염시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괴기 영화의 소름끼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 장면을 텔레비전 방송이 아닌 맨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분명 소름이 돋았을 터이다.

가축 대량 소비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축 전염병의 창궐은 우리에게 새로운 동물 윤리와 함께 식생활 문화를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필자는 피터 싱어와 같은 동물해방론자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하지만 고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오늘날의 식생활 문화는 한번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생활 문화가 비만과 심혈관 질환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생활습관병)을 일으키는 것도 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대량 사육에서 비롯한 비좁은 우리 등 열악한 사육 환경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기분이 언짢아질 것이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를 떠올린다면 적어도 고기 애호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구제역과 같은 가축 전염병은 예방과 초기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 주요 쇠고기 수출국인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어느 나라보다 가축 전염병 발생에 신경을 쓴다. 그 결과 구제역 발생은 지금까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도 충분히 구제역의 유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거나 장치는 되어있더라도 현장에서 잘 가동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제도적 장치에 허점은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또 왜 구제역이 짧은 기간에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게 됐는지의 원인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축산 분뇨 처리 차량이나 처리 업자, 가축 거래상 등이 바이러스를 전파하지는 않았는지, 역학조사를 한 수의사나 관료, 그리고 매몰 처분 따위를 한 작업자와 차량이 다른 지역을 다니면서 전파하지는 않았는지 정밀 조사를 벌여야 한다.

사실 지금쯤은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된 정확한 원인을 정부가 밝혀냈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축산가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전파 원인을 찾아냈어야 한다. 구제역이 전파되고 있는 양상을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대처 방안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며 구제역이 발생하고 확산될 때마다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불신은 또 다시 전염병의 확산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식생활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이는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섬진강 등 강 인근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물고기를 날로 먹고 간흡충증과 같은 기생충 감염 병에 걸렸는데도 당장 민물고기 생식을 중단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고기를 즐겨 먹던 사람이 구제역 창궐을 계기로 고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장 식생활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가축을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해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성이 강한 가축 전염병 또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 유행하는 것을 막는 데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축 전염병의 발생이나 창궐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수렵·채취 시대를 거치면서 육식 문화는 인간의 자연스런 삶의 일부였다. 인간은 탄생 때부터 채식과 육식이 어우러진 잡식을 해왔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자고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고기 소비를 줄이고 가축의 사육 환경을 바꾸는 변화를 지구촌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함께 벌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값싸게 육식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됐다. 전 세계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 방향을 틀 때다. 적어도 미국과 서구국가, 그리고 이들 나라와 거의 대등한 경제적 부를 누리는 일본이나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말이다.

전염병은 가축에서 생기든, 사람에서 생기든 자연 재해(natural disaster)이며 동시에 인공 재해(artificial disaster)이다. 구제역과 같은 가축 전염병도 그 피해가 크면 백성들은 '나라님' 탓을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신묘년 새해를 맞아 공동체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치명적인 가축 전염병 또는 인수 공통 전염병의 발생과 창궐을 막아줄 통한 책은 없는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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