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 수족구병은 얼핏 보기에 같아 보이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부터 완전히 다르다. 구제역은 인수 공통 전염병이 아니다. 지금까지 구제역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구제역 증상을 일으킨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구제역에 걸린 소고기를 육회로 먹더라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위산에 의해 쉽게 파괴되고 몸속에서 소멸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구제역은 전파력이 강하고 폐사율이 높아 축산업과 관련 업계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일단 발생하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생한 해당 농가는 물론이고 인근 축산 농가들의 소와 돼지까지 긴급히 살처분(殺處分)해서 매장하고 소독과 통행 제한을 엄격하게 시행한다. 안동을 위시한 경상북도 일대와 충청남도 그리고 경기도에서 이미 20여만 마리의 우제류 가축이 살처분됐다.
수년간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가축을, 특히 워낭소리 애잔한 일소, 만삭이라 출산이 코앞인 암소와 암퇘지, 갓 태어나 비틀비틀 걷는 송아지를 갑자기 매몰해야 하는 축주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다행히 구제역에 감염되지는 않지만 구제역으로 인한 생이별의 슬픔과 후유증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에서는 지난 12월 14일에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2010 구제역 피해 가축 합동 축혼제." 주최 측에 따르면, "구제역 발생으로 희생된 가축의 넋을 달래고 가족같이 기르던 가축을 매몰시킨 후 시름에 싸인 축산 농가와 구제역 매몰 지역에 투입된 공무원을 위로하고 구제역 확산 방지를 염원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타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의미 있는 행사였다. 수의과대학과 관련 연구소에서 실험동물의 넋을 기리거나 도축장에서 인간을 위해 죽는 가축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매년 수혼비(獸魂碑) 앞에서 수혼제(獸魂祭)를 지내는데,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뜻 깊은 행사에 걸맞은 인도적 방역을 실시했는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의 방역이 급하고 중요한데 인도적인지 아닌지가 뭐 중요하냐고 반문할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목적" 때문에 중요한 "과정"을 경시했다가 또 다른 커다란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법이다.
우선 "살처분"이라 함은 관련 법규에서 "안락사를 한 후 소각이나 매몰을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인력, 장비, 자금,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취제를 주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생매장"을 하고 만다. 생이별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생매장이라니, 그 죽어가는 두렵고 서글픈 눈빛을 어찌 잊을까.
이런 감정은 차치하고라도 생매장에는 실질적인 폐해가 따른다. 살아 있는 동물은 죽거나 제대로 마취된 동물처럼 가만히 있지 않기에 매장지에 까는 비닐에 구멍을 내기 일쑤다. 그러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침출수를 따라 흘러나올 수 있을뿐더러, 그 침출수가 주변 지하수를 오염시켜 식수나 용수를 썩게 만들고 악취도 발생시킨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이런 이유로 살처분에 강하게 반발한 농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법과 보상금을 이길 자는 없다. 설령 안락사시키더라도 침출수가 새나올 가능성은 그대로 남는다. 경기도에서는 만일의 경우 생수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지만 상황 무마를 위해 둘러댄 임시방편일 뿐이다.
▲ 지난 11월 20일 경상북도 안동 와룡면 일대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생매장'하는 모습. 농림수산식품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나, 시간·인력을 이유로 제대로 살처분을 하지 않고 가축을 생매장하는 사례가 2000년대 이후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이 사진은 <경북매일신문>이 찍은 것으로, 지난 14일 한국동물보호연합 등이 기자 회견에서 공개한 것이다. ⓒ경북매일신문 |
그리고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구제역의 특징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한국식 신속정확한 살처분"은 방역의 효율과 경제성 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구제역 발생 지역 인근 반경 500m 이내는 물론이고 적극적 방역 차원에서 반경 3㎞ 이내의 우제류 가축까지, 심지어 발생 농가를 다녀간 사람이 방문한 타 지역 축산 농가 인근의 가축까지 예방적 차원에서 모조리 살처분하는 것이 과연 항상 효율적이고 경제적인가. 그리고 인도적인가.
여기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위 완벽한 방역과 편리한 행정을 위해 관습처럼 시행해온 방식을 개선하려면, 이런 경우 위로부터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구제역은 우리나라에서 1930년대에 처음 발생이 보고되고 나서 60여 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 재발하여 이후 발생 빈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1종 법정 가축 전염병이다.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는 중요한 질병인 만큼 예방과 방역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분석과 투자가 필요하다. 약학, 미생물학, 전염병학, 공중보건학 같은 수의학 및 축산학 분야의 지식과 기술은 물론이고 행정 시스템은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방역 방식은 거의 답보 상태에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구제역은 오늘날 자연 감염 못지않게 인간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말하자면 인재(人災)인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교통이 발달해 교류가 늘고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감염 경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가 아닌 현재 상황에서 자연 감염과 인간에 의한 전파 모두를 좀 더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여 통합적 시스템 차원에서 질병 통제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다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현행 살처분의 효율과 경제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다 알겠지만, 실제로 우리보다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방역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만약 수십억 내지 수백억 원을 들여 현재 우리가 생각지 못한 "개선된" 방역 방식을 개발해낸다면 지금처럼 수천억 원에 이르는 피해를, 장차 같은 식으로 거듭될 수도 있는 피해를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나아가 보다 친환경적이고 인도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다른 생물과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습관처럼 잊고 산다. 인간 때문에 죽어가는 다른 생물의 수를 줄이는 것은 곧 다른 생물 덕분에 살 수 있는 인간의 수를 늘리는 길이다. 만약 우리가 키우는 동물 가운데 하나가 인간에 비견할 만한 문명을 이루어 인간을 사육한다고 생각해보라. 인간에게 급성 전염병이 발생하자 수십만 명을 살처분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는가?
인류는 인간 중심의 "이기적 정의" 때문에 지금의 전 지구적 위기를 맞았다. 인도적이란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정의란 올바른 도리와 공동선(共同善)을 의미한다. 산 너머, 물 건너 생면부지의 농장에서 발생한 구제역 때문에 매장지에 내던져진 어린 새끼 돼지의 눈에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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