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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홀린 꽹과리…"나는 세계 춤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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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홀린 꽹과리…"나는 세계 춤꾼이다!"

[권은정의 '아우토반 코리안'] 젊은 예술가 김보성·박명현

김보성과 박명현을 처음 만난 건 베를린 '세계의 정원' 축제에서였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정취를 담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문화 행사를 곁들여 공개하는 날이었다. 한국의 정원 앞에서 우리 팀이 탈춤을 추고 있었다. 꽹과리를 신나게 두드리며 날렵한 춤사위를 하던 한 춤꾼이 유창한 독일말로 구경 온 독일 어린이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탈이 뭐로 보이나요? 사자? 고양이?"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어린이들에게 탈춤이 뭔지 쉽고도 재미있게 설명해 준 그 춤꾼이 바로 김보성이다. 파독 광부로 온 아버지와 간호사로 온 어머니를 둔 한국인 2세다. 줄곧 베를린에 살다가 대학은 한국에서 다녔다. 사물놀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를 마치고 곧장 베를린으로 돌아와 유럽 전역에서 우리 문화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김보성 씨. ⓒ한민영

그가 사물놀이를 처음 접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한독 문화단체협회에서 교포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냥 갔어요. 유치원, 초·중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한국 춤과 사물놀이 그런 것들을 가르쳤는데, 재능 있고 없고 상관이 없었어요. 다들 부모님이 보내서 갔는데 우리는 그 시간이 무척 재밌었어요."

당시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러 왔다가 아예 독일 땅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가정마다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아이들은 점점 커 가는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청소년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게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사물놀이와 탈춤, 고전무용 등을 위주로 한 우리 전통 문화 워크숍이 매년 열렸다. 교포2세 아이들에게는 한국적인 것을 아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또래들과 모여서 노는 일이 재미있었다.

"엄청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따로 선생님 없이 1년에 한번 한국에서 오신 분이 가르쳐준 것으로 연습을 했는데 저마다 의견들이 달랐어요. 대부분 열네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는데 서로 옳다고 하는 가운데 우리 것을 보는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1994년, 당시 베를린에서 세계 음악 콩쿠르가 열렸다. 한국 사물놀이를 가지고 나가고 싶었다. 당장 '천둥소리'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려 출전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부모들은 물론 교포 사회 전체가 기뻐하며 환호했다. 애들끼리 모여서 노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떨치는 성과를 냈으니 말이다. '천둥소리'의 멤버로 김보성은 열심히 활동했지만 그때까지도 사물놀이는 그저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좋아하는 정도의 취미 활동일 뿐이었다.

큰 변화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말을 배우러 1년 동안 한국에 갔어요. 그 시간을 이용해서 충청남도 부여에 있는 사물놀이 교육원에도 다니게 되었는데요. 그때 본격적으로 사물놀이를 배운 거죠. 그전에는 내가 대학에 가서 전공으로 이것을 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어요."

ⓒ한민영
부여에서의 시간은 김보성의 내면에 있던 어떤 소리를 듣게 만들었다.

"시골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생활하면서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어요. 뭐냐 하면, 내 안에도 한국적인 게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때까지 그런 생각 전혀 없이 살았었어요. 제 주위에 보면 '나는 한국 사람인가?, 독일 사람인가?' 그런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런 고민 안했어요. 그냥 나는 나,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혼자 앉아서 꽹과리 연습하고 있었어요. 멀리 산 경치 보면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거죠. 아, 옛날에 이렇게 꽹과리 치면서 농사도 짓고 이리저리 다녔겠구나, 이 음악 안에는 한국 경치 이런 게 다 들어 있구나, 한국 경치가 이렇기 때문에 음악도 이런 것이고 한국 음식이 이러니 가락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런 것이 다 갑자기 이해된 거예요.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거죠."

'내 안에 살아있는 한국'을 발견한 김보성은 자신의 삶을 사물놀이 안에서 이루겠다고 결심했다. 독일로 돌아와서 부모님께 '대학가는 대신 사물놀이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완전 반대하셨죠. 너 미쳤느냐고 하시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셨지요. 그렇지만 저는 무작정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 했지요."

당시 채 스무 살도 안 되었지만 그는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혼자 힘으로 가겠노라 당찬 결심을 했다. 한국행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시간당 7~8유로를 받았는데 하루 몇 시간씩 했더니 돈을 꽤 모을 수 있었단다. 그때는 돈을 엄청 많이 번 것 같았다고 말한다.

"제가 아주 고집이 센 딸이어서 부모님께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요. 내 뜻과 다르면 부모님 말씀이라도 절대 따르지 않는다 했지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도 고집이 세요. 그래서 제가 이어받았죠. 또 지금 우리 딸아이가 물려받은 거 같아요. 하하하…."

김보성은 15개월 된 딸아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그의 부모는 독일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해 오신 분들이다. 1980년대 독일 땅에서 열리는 각종 민주화 모임에는 아이들도 부모 손을 잡고 늘 같이 있었다. 당연히 운동가 곡조가 귀에 박혔다. 아이들은 가사를 알 리 없었지만 목청 높여 어른들 따라 불렀다. 그 노래의 정신이 김보성을 키우는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한민영
독일 아가씨 김보성이 사물놀이를 배우겠다고 한국에 '무작정 상경'했지만 어찌 쉬웠겠는가. 돈과 인간관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포 여학생은 깨달아야만 했다. 아마 회의가 들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사물놀이의 스승 김덕수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들어가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사물놀이를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 안했어요. 인생의 철학 그 자체를 살아야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께서 그 대학에 가면 도와주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대학 갔어요. 벌어 온 돈도 다 썼으니까요."

그리고 한국 남자 박명현을 만났다. 당시 그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과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그도 애초 대학에서 공부한 것과 달리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사물놀이를 아예 인생 본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한국 음악과 타악기 연주로 김덕수의 지도를 받았고 진도씻김굿 문화재 박병천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4년여 간 진도북춤을 사사 받기도 했다.

"한창 배울 때는 새벽 4시까지 상모 돌리는 날도 있었어요. 공부를 그 시간까지 해야 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텐데, 그때는 정말 하루 두 세 시간만 자도 피곤한줄 몰랐어요. 은연 중에 내 삶 안으로 들어왔구나, 내가 이것을 해야겠다, 하는 그런 느낌이 있으니 가능한 거지요."

환상적인 상모 돌리기로 공연 때마다 이곳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박명현의 말이다.

▲김보성, 박명현 씨(오른쪽). ⓒ한민영

이제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한국 전통음악을 업으로 삼아서 살겠다는 청년이 사윗감으로 나타난다면 딸을 둔 부모는 누구든 걱정을 먼저 할 것이다.

"북을 치고 징을 두드리고 하는 일이 어떻게 직업이 되겠느냐, 어떻게 먹고 살겠느냐 그런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이제는 장인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팬이 되었다. 손녀 돌잔치 때 아예 1시간짜리 공연을 준비해서 손님들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한 이도 바로 장인어른이었다. 딸 부부가 펼치는 각종 공연을 지켜보는 사이 저절로 자랑스러워진 것일 게다.

지금 이들 부부는 독일과 유럽 지역에서 한국을 알리는 문화 행사마다 초청받는, 가장 활발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공연자들이다. 유럽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전통 문화 전문 공연자는 많지 않다. 유럽 무대를 향한 박명현의 각오는 다부지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어디든, 언제든지 가려고 합니다. 우리 둘 다 장구, 꽹과리, 북 그런 타악기로 시작했지만 민속춤과 사물놀이 등 연희라는 큰 틀에서 보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 자체가 워낙 내용이 많으니까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면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유럽은 넓으니까, 우리 활동무대도 그만큼 넓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소리, 김보성의 꽹과리와 박명현의 북소리는 확실히 베를린 시민의 발길을 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절로 돌아보게 만드는 가락과 소리,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공통어가 아닌가. 먼저 눈길을 잡고 그 다음 내용을 알리는 일이 문화 행사의 순서라는 게 이들 전문 공연가들의 결론이다. 김보성은 공연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전한다.

"유럽인들이 우리 공연을 처음 보고서도 좋다고 하는데, 그건 한국적인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공연 자체에 대한 느낌이에요.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공연이 너무 좋아서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전통 음악이고 춤이라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큰 나라 중국, 강한 나라 일본 사이에 있다는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한국을 알려야한다는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 때, 한국을 알릴 목적을 먼저 내세우면 사람들이 재미없어 해요. 재미있게 하다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게 중요해요."

독일 지방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을 알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한국 홍보 비디오도 보여주고, 한복도 입혀주고, 공연도 보여주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요나라, 니하오마, 하면서 가더라는 것이다. 한국을 알린다는 좋은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좀 안타깝다.

"결국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남는 것이지, 그냥 단순히 보여주면서 알린다는 것은 별로 성과가 없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한국 문화가 아니라 어느 나라 것이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한민영

김보성은 문화를 통해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 특히 관심이 간다. 그는 현재 유럽연합(EU)에서 지원받아 시행하는 청소년문화센터 프로그램에 출강하고 있다. 지적 장애아들, 주로 가정 문제, 학업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을 위한 문화 체험 학습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1주일 워크숍에 참가해서 각 나라의 타악기나 춤 등을 배우는 건데요. 그중에 한 가지를 택해서 마지막 날에 발표를 하게 되요. 처음엔 다들 내가 여기 뭣 하러 와 있나, 하는 표정이지만 발표할 때는 잘하려고 애를 쓰거든요. 아이들이 각자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게 되면 되게 뿌듯해 해요.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모습을 보면 진짜 보람 느껴요. 내가 되게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고, 그 사람도 그것으로 즐거움이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거, 그거 정말 좋아요. 어렵게 사는 애들한테 더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요."

김보성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다.

"예를 들어서, 장구 수업을 할 때 이 악기는 이름이 장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장구'하고 따라 하거든요. 장단에 맞춰 장구를 치면서 저절로 한국 악기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이 음악은 한국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해서 알려주게 되는 거죠. 사실 저는 한국적인 것을 가르칠 의도 없이 그냥 재미난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결국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거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지 그게 중요해요. 그게 제 고민이라니까요."

김보성은 좀 더 큰 소망을 품고 있다. 한국적인 음악을 보다 넓게 이 세계의 공통 음악으로 퍼트리고 싶은 것이다.

"저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다른 음악 내용이나 다른 악기와 같이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색소폰이나 베이스 하는 이들과 같이 장구나 징을 치는 즉흥 연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제까지 제가 공부한 것은 전통가락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지니까요. 다르게 시도하면서 이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배운 대로 하는 것 보다 그 안의 에센스를 가지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큰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예술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어요."

그에게 한국의 전통 음악은 반드시 고국의 것으로 한정된 게 아니다. 그저 '그 자신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독일에 살건 한국에 살건 어디에서나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한 김보성은 행복할 것이다.

ⓒ한민영

한국의 가락을 온몸에 싣고 큰 세상으로 걸음을 내딛은 사물놀이 전문 공연가 김보성과 박명현. 용기와 열정으로 자신들의 길을 선택한 두 젊은이의 사물놀이는 유럽 무대에서 새로운 기운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넘어선 한국의 소리가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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