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씩 화면에 뜨던 글자들이 문장으로 완성되는 순간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마지막 '1초'는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도드라져 더욱 강렬했다. 이 영상의 제목은 '1초'다. 교육방송(EBS)의 간판 프로그램 <지식채널e>의 첫 번째 작품이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씨 클라우드'에서 이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누군가 "나로선 솔직히 좀 지겹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지식채널e>의 연출을 맡아 '1초'를 비롯해 270여 편의 프로그램을 만든 김진혁 EBS PD다.
▲ <감성 지식의 탄생>(김진혁 지음, 마음산책 펴냄). ⓒ마음산책 |
이 책에서 그는 단순히 인기 프로그램의 탄생 비화나 영광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곱씹은 생각들을 얘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 <지식e :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식>(북하우스 펴냄) 시리즈보다 깊고 내밀한 독서 경험을 독자에게 안긴다.
책에선 홀로 총대를 멨지만 프로그램은 완벽히 공동 작업이었다고 그는 강조한다. "생각나는 사람 없느냐"고 묻자 한 사람이라도 빠뜨릴세라 작가·제작진의 이름을 댄다. 이날 진행을 맡은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가 "김진혁 PD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 점 때문이다. PD라는 자리의 역할을 설명할 때도 그는 몸을 한껏 낮춘다.
"PD의 역할은 제작진 전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의 공유 여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한 배에 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채널e> 팀이 탔던 배는 어떻게 시동을 걸고, 방향키는 어디로 쥐었을까? 어떤 암초를 만나 왔을까? 출항지 격인 '1초'에서부터 두 번째 어쿠스틱 인문학이 시작됐다.
▲ 김진혁 PD와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
무관심 속에서 탄생하다
이권우 씨가 "첫 편의 제목처럼 '1초 만에 사라질 프로그램 아니냐'는 얘길 듣진 않았는가"라고 묻자 김진혁 PD는 "처음엔 아무도 관심조차 안 가졌다. 그래서 (제목이) 1초이든 2초이든 상관없었다"며 고개를 젓는다.
ⓒEBS |
"EBS 공중파 채널에선 이미 10년 전에 수능 관련 수업 방송이 빠졌는데 아직도 채널 13번을 틀면 칠판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지식채널e>로 붙였다. EBS가 수능 채널이 아니라 '지식' 채널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식채널e>는 늘 시청자의 피드백에 목말라했던 김진혁 PD 개인의 도전이기도 했다. 2002년 입사해 <직업 탐구>, <효 도우미 0700>, <미래의 조건> 등을 연출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던 그는 "이름을 말했을 때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프로그램", "파괴력을 가진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니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했다. 김진혁 PD는 "재미는 방송 프로그램의 숙명"이라고 강조하며 "소위 교양 프로그램이 취하는 재미에 대해 절제하는 태도가 못마땅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방식을 고민했고, 영화 예고편과 뮤직비디오처럼 상업적 영상의 방법을 혼용하는 사이 자연스레 <지식채널e>의 스타일이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1초'는 그 바람과 고민의 총체다. 당연히 탄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애초 <지식채널e>는 기존에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요약해서 보여준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의도는 시작도 전에 폐기된다. 보기에 그럴듯한 고속 촬영 기법으로 촬영된 <마이크로의 세계>(2004년)를 편집해 짧게 만들었더니 알맹이 없는 화면 나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이번엔 지식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는 문제에 놓였다. 그 때 그를 구원(?)했던 것이 위의 문장이다. 작가가 가져온 '우주의 역사 150억 년을 1년으로 줄이면,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온 시간은…1초'라는 문장을 끊어 읽는 순간 그는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혔다.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작가가 가져온 문장들 가운데 마지막 문장을 발견했고, 그것이 주는 직관적 느낌이 좋았단 이유만으로 거기에 맞춰 영상을 완성하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1초'는 '1초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고속 촬영 영상과 그것을 단순히 설명하는 자막으로 보여준 다음 마지막 문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게 된다. 김진혁 PD에 따르면 이는 인간의 '사고의 흐름'에 따르는 구성이다. 핵심 문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단순한 정보보다 '깨달음'의 영역에 있는 지식을 은근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지식채널e>의 이러한 전달 방식의 정체는 2005년 '스페셜' 편에 등장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고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다."
카타르시스가 아닌 무엇
'1초'를 만들며 깨우친 프로그램 방향은 김진혁 PD의 평소 생각과도 일치했다. 그는 계몽적인 메시지로 선동·선전하기보다 상대방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봤다.
▲ 김진혁 PD.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지식채널e>가 대중과의 소통에서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분석한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지식 안에 결핍돼있던 감성이란 부분을 주사 놓듯 보강했다면 <지식채널e>의 경우는 오히려 빠져 있었던 지식을 복원함에 따라 그 지식을 시청자가 마음껏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어떤 것도 억지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계몽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에 잘 부합했던 것 같다."
93학번인 김진혁 PD는 대학 시절에도 이른바 '운동권'의 방법인 직접적인 가르침에 우려를 갖고 있었다. "혹시 대학생 때 운동권이었느냐"는 이권우 씨의 질문에 그는 "그 정반대라고 볼 수 있는 학군단 출신이다"라고 응수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운동권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의 단점인 과도한 계몽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작품에) 반영됐다."
▲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 ⓒ프레시안(최형락) |
"브레히트는 극작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극중 환경을 통해 인위적으로 감정을 '배설'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각성을 이끌어내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진혁 PD는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자가 아니라 시민의 각성을 스스로 유도하게끔 만드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맥락에서 대중과의 소통 방법이 브레히트와 통하는 게 있지 않나 싶다." (이권우)
사회에서 소외되는 '소외 문제'
직접적인 비판을 경계하고, 사실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지식채널e>나 김진혁 PD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강한 프로그램/PD'다.
김진혁 PD는 "출발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도 만들어놓고 보면 꼭 사회적 관점이 들어가 있었다"며 "그것이 단지 'society' 카테고리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식채널e>를 관통하는 정신이 '소외'에 대한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 중 '철거민' 편이다.
'철거민' 편은 '왜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 늘 똑같은 화면을 보여줄까? 행복한 그림이 아닌 고통스럽고 힘들어 보이는 그림이 나온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기획이었다. 김진혁 PD는 이 편을 구성하던 중 과거에 찍었다가 묵혀 둔 영상을 떠올린다. 2004년 여름, 다른 프로그램 촬영 중 우연히 흘러들어갔던 동대문 운동장 안쪽의 '풍물 시장'의 모습이었다.
"동대문 운동장 안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밀려난 노점상들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풍물 시장'. 하지만 난민촌으로 밖엔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철거민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 자체보단 대형 쇼핑몰이 즐비한 서울 동대문 한복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명색이 방송국 PD인 내가 이 일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EBS |
김진혁 PD가 충격에 휩싸여 찍어 두었던 영상은 1년 동안 보도되지 못한다. 당시 서울시와 노점상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 섣불리 서울시를 비판하기 어려웠다는 핑계도 있지만 결국엔 일종의 '자기 검열' 때문이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철거 상인의 현실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변함이 없었고, 그때서야 '철거민' 편을 통해 전파를 탄다. 김진혁 PD는 이 일화를 통해 <지식채널e>가 '소외'를 자주 다루는 이유를 깨닫는다.
"아이템이 매번 '사회적 관점'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도 단순히 '소외'가 만연해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모르고 있던, 그래서 매번 충격을 받던 '나 자신'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결국 모든 소외의 공통분모는 그것을 모르고 있던 자기 자신이다." (<감성 지식의 탄생>, 136쪽)
그는 이러한 무지와 관련해 "언론이 사실 보도라는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거민의 비극이 만천하에 알려진 용산 참사에 대해서도 그는 "사전에 언론이 용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순한 사실에 대해서라도 보도를 더 많이 했더라면 극단적 상황을 막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채널e>의 진화
이어서 2007년에 제작된 '두 명의 대통령' 편과 '거대 우주선 시대' 1편도 상영됐다. 내용도 형식도 다른 두 편의 공통점은 지식채널e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EBS |
"그(링컨)가 노예를 해방한 가장 큰 이유는 비인간적인 노예 차별을 혐오해서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링컨이 쓴 편지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그가 수차례나 노예들을 비하하는 말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노예를 해방한 이유가 오직 '휴머니즘'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휴머니스트로서 링컨의 이미지는 일부일 뿐 결코 '전부'일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전기만 읽고 그를 '휴머니스트'라는 틀로만 이해하면 링컨은 그 자체로 '신화'가 된다." (<감성 지식의 탄생>, 170~171쪽)
나아가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모두가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은 아니라며, 외부의 사실을 받아들일 때 언제나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사실이 어떤 프레임 위에 올라와 얘기되는가가 중요하다"며 "<지식채널e>는 잘못된 프레임을 깨도록 하기 위해, 제 3의 프레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고 덧붙였다.
"누군가의 프레임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었다. 보는 사람 스스로 문제를 바꿔야겠다는 판단이 안 선 상황에서 프레임을 바꾸려 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크다. 다만 누구든 프레임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와 제3의 프레임의 존재를 인지하길 바랐다."
한편, 진화의 또 다른 한 축은 드라마 장르로의 확장이었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7편으로 구성된 '거대 우주선 시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시리즈는 거대 우주선이 지구 상공에 머물러 있다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갖가지 자료 화면과 자막을 스토리라인에 따라 배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픽션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인데다 내용이나 형식 모두 일종의 모험이었으나 김진혁 PD는 의욕을 불태웠다. "원래부터 영화 일을 동경했고, 드라마에 미련이 있었다"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가 이야기를 원한다. 대중에게 어떤 주장, 감성을 전달할 때도 결국엔 이야기로 풀어 줄 수밖에 없다. '대중성'을 <지식채널e>에 접목하고 싶었다. <지식채널e>의 원래 형태도 다큐멘터리를 차용한 것이지 정통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다. 이미 '정통'의 의미가 무색해진 상태고, 결국 유사 드라마 장르 혹은 장르 혼용을 통한 새로운 포맷으로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탄생과 진화, 그리고…
진화를 거듭하며 함께 성장해 온 <지식채널e>와 김진혁 PD는 2008년 8월 이별을 맞는다. 현재 그는 EBS 편성 기획부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특집 형태의 짧은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프로그램과 PD 모두 인기 절정에 있었을 때 결정된 하차였기에 김진혁 PD의 하차 당시 '보복성 인사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첨예한 주제였던 광우병을 다룬 '17년 후' 편이 한 차례 결방되면서 외압 논란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진혁 PD는 "<지식채널e>를 만들면서 구체적 압력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특정 아이템을 다루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정치적 압력이 있다면 PD가 특정 아이템을 외면하는 등 자기 검열 하도록 하는 간접적인 요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추적 60분> 결방 사례처럼 누군가 '방송 하지 마'라고 얘기한 게 사실이라면 그건 압력이 아닌 범죄"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여전히 <지식채널e> 하면 '김진혁 PD'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프로그램을 정립하는 시작 단계가 중요한 법이다. 그러나 대중은 언제나 PD보다 먼저 변화하기에, 시작한 이후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는 "(제작진이) '우리가 변화해야 해'라고 느낄 땐 이미 늦은 시점이다.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한다"며 시청자와 프로그램 사이를 연인 관계에 비유했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 보면 상대가 원하는 변화가 자연스레 서로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지식채널e> 팀에게 "프로그램이 5년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계속 새로운 포맷을 시도해 달라"고 격려했다.
이제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을 갖게 된 인기 PD로서 그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카타르시스가 아닌 은근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그이지만, 혹시 방송국을 벗어난다면 좀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 청중이 "마이클 무어처럼 영향력이 강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 욕망은 다른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다른 부분이란 "10년이 지나서 다시 봐도, 어떤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이 봐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다. 점점 보편성을 포기하고 작가의 관점과 개입을 강조하는 최근 다큐멘터리 제작 풍토에 보기 드문 고집이다.
향후 계획은 속 시원히 들을 수 없었다. 이권우 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묻자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내게 주어진 걸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말한다. 알 듯 말 듯한 대답이지만, 그가 3년간 <지식채널e>를 만들며 깨달았다는 궁극적 메시지와 연결 지어 보면 자못 심오하다.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구하는 것!"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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