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용이 담긴 '칸쿤 합의문'은 194개국 중 볼리비아를 제외한 193개국이 찬성했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왜 이 합의문에 반대했을까? 이번 칸쿤 총회를 현지에서 지켜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정필 상임연구원은 바로 볼리비아가 칸쿤 합의문에 반대한 이유를 추적한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은 칸쿤 총회의 쟁점을 살펴본 공공운수노조(준)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속 기고의 마지막이다. <편집자>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폐막 예정 시간인 12월 10일 오후 6시(칸쿤 현지 시간)를 훌쩍 넘겨서 11일 새벽 4시를 넘겨서야 협상 결과 소식이 들려왔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각종 웹사이트를 넘다들었다. 해가 떠서야 윤곽이 잡혔고,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칸쿤 합의문(Cancun Agreement)'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 "기후 변화 국제 협상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을까?
협상가들이 밤새고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면서, 지난해 이맘때 그들이 한일이 떠올랐다. 3장짜리 문서에서 조금 두꺼워진 분량으로 갱신된 '코펜하겐 협정문(Copenhagen Accord)'이 1년이 지나 날치기로 통과된 것이다. 칸쿤의 "좀비 컨퍼런스(zombie conference)"는 그렇게 끝이 났다.
194개국 중 찬성 국가가 140개국에서 193개국으로 늘었으니, 그리고 미꾸라지 볼리비아만 끝까지 총회장 물을 흐렸으니 칸쿤 합의에 절차상 하자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총회 의장인 멕시코의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자는 볼리비아의 반대가 최종 보고서에 각주(note) 형식으로 유의될 것이고, 단 한 국가의 훼방으로 193개 국가가 이뤄낸 타협안이 무산돼서는 안 된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만장일치를 미덕으로 여겨온 '유엔 다자주의'라는 절차상 흠결의 이면에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패권주의가 숨어 있다. 일개 국가가 볼리비아가 아니라 미국이었으면 결코 통과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합의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이 수년 동안 작업해온 과정에 비토(veto)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요 선진국이 저질러온 국제 탄소 레짐의 만행에 눈을 감는 에스피노자의 픽션은 교토의정서를 누더기로 만든 다름 아닌 미국에게나 적용해야 할 것이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무용론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게임의 룰을 생각해면 어떨까. 역사적 배출량의 반비례로 최빈국, 군소 도서 국가, 개발도상국에게 기후 부채 지분을 보장하여, 구속력 있는 감축 목표 등 주요 의제에 대해 결정하도록 하자. 지분으로 발언권과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총회장을 가득 채운 협상가들이 신봉하는 자본주의 룰에도 적합할 테니 말이다.
이런 방식이 마녀 사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지금과 같은 현실주의에서의 타협은 역설적이게도 기후 변화의 가해자(피고)가 아닌 기후 변화의 피해자(원고)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 유엔의 역할을 살리고 기후 정의를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코차밤바 민중 총회'가 주장한 '기후 정의 재판소'와 '기후 변화 세계 민중 투표'의 의미에도 부합한다.
▲ 12월 9일, 고위급 회의에서 기후 정의를 강력하게 대변하는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프레시안 |
그렇다면, 볼리비아는 왜 끝까지 저항했나. 먼저 칸쿤 합의의 의미를 살펴보자.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즐겨 쓰는 '절반의 성공'에는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이들은 대개 칸쿤에서 보잘것없는 성과라도 나오지 않으면 현 유엔 기후변화협약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전제로 삼았다. 따라서 칸쿤 합의로 현재의 균열을 봉합하여 내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유엔 기후 체제의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코펜하겐 의정서와 이를 둘러싼 맥락이 갖는 퇴행적 성격에서 찾아야 한다. 코펜하겐 그 후 1년의 협상 과정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의 기후 변화 피고 국가들의 외교 승리로 점철되었다. 그 와중에 중국 등 신흥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압력을 피하는데 바빠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대변하는 일에 손을 놨다. 그리고 당장 기후피해를 덜고자 하는 솔직하고 당연한 필요를 감출 수 없는 최빈국들은 욕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 결과, 칸쿤은 낡은 코펜하겐을 담은 낡은 부대에 불과했다. 산업화 이전 2도 상승 제한 '언급'은 변함이 없고(1.5도 논의도 나중에 결정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후 부채 보상은 연간 최소 2000억 달러 논의에서 후퇴하여 최대 1000억 달러로 고착되었다. '녹색 기후 기금(Green Climate Fund)'은 누가 얼마나 무슨 재원으로 마련하는지 미정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세계은행(WB)이 최초 3년간 펀드 관리를 맡게 된 것은 매우 기민하게 결정되었다.
▲ 12월 7일, 국제 공동 행동의 날 행진에서 기후 재정에서 세계은행을 퇴출시키자는 캠페인을 하는 주빌리 사우스(Jubilee South).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개발도상국에 대한 MRV(측정, 보고, 검증) 방식은 선진국의 지원에 대해서는 국제 검증으로 통과되었고, ICA(국제적 협의 및 분석) 방식은 자율 감축에 대해 개발도상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에서 인정되었다. (지금이 아닌) 추후에 구속력 있는 감축도 가능하다는 인도의 깜작 발언과 공명하는 이 부분은, 향후 선진국이 (신흥 )개발도상국에 대한 감축 압박과 통제에 보다 공격적으로 나설 길을 닦아 준 것으로 풀이된다.
1년 사이의 역주행은 오히려 포스트 교토 체제의 기반마저 흔들어버렸다. 2도 상승 제한 목표에 5~9기가톤 감축이 부족하게 된 '배출 간극(Emission Gap)'을 결과한 코펜하겐 의정서의 후과는 1차 이행 기간과 2차 이행 기간의 간극(gap)을 없애도록 노력하겠다는 땜질 문구의 탄생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빗대어 "세계탄소거래기구(World Carbon Trade Organization)"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유엔 기후변화협약에는 또한 배출할당량(AAU)의 잉여배출권(hot air) 유지, 산림 훼손 방지(REDD+) 신설, 탄소 포집 및 저장(CCS)의 청정 개발 체제(CDM) 확대 등 시장 메커니즘이 보다 강화되는 '잘못된 해결책'들이 득실대고 있다. 원주민 권리, 인권, 젠더, 공동체 참여, 정의로운 전환 등 여러 세이프가드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합의문에는 탄소 시장의 가속화를 제어할 실질적인 장치가 부재하다.
개발도상국과 민중에게 백지수표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합의문에 격한 반응을 보인 볼리비아는 합의 없는 "코펜하겐 어코드 II" 채택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제안은 신성불가침이고, 우리의 제안은 폐기 처분되었다.' 그런 강제된 "잘못된 승리"는 인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룰 것이라면서 버텼지만, "국제사회의 다자주의의 가치를 확신시켜준 큰 진전을 보였기 때문에 칸쿤은 모두에게 성공이다"라는 멕시코 대통령 칼데론의 한 마디에 협상장에서는 기후 정의가 설자리가 없었다.
볼리비아의 마지막 한마디는 "역사기 심판할 것이다"였다. 코차밤바의 기후 정의 정신은 계속 지속될 것이며, 역사는 칸쿤에서 일어난 일을 심판할 것이라고. 애초에 협상가들에게 로비하는 전술을 취하지 않았던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na) 등 민중 진영에서는 칸쿤 합의를 두고, "나쁜 협상을 할 바에는 협상을 안 하는 것이 낫다"며 이미 "민중에겐 수많은 진정한 해결책들이 있다"고 협상 결과를 평가했다. "Anti Cop" 주장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비아 캄페시나가 주축이된 "생명,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한 국제 대안 포럼(Alternative Global Forum for Life and Environmental and Social Justice)" 한켠에서 진행하는 "반자본 반캅" 행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볼리비아 등 약한 국가와 다양한 급진적인 목소리를 제기하는 시끄러운 시민사회를 이중으로 배제한 유엔과 멕시코 정부는 2주 동안 크고 작은 도전을 경험해야 했다. 관점과 입장 그리고 조건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칸쿤에는 다섯 가지의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협상 개입 위주의 국제 NGO의 칸쿤 메세와 문 팰리스, 중남미 사회단체와 기후정의네트워크(CJN)의 민중 정상회의 및 캠프, 비아 캄페시나 및 반자본주의 진영의 캠프, 그리고 클리마포럼10과 국제노총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때론 독자적으로 때론 연대해서 활동했다. 복잡한 멕시코 정치 지형과 투쟁의 전통에 따라 다른 전략을 취했겠지만 공통된 목소리는 기후 정의였다.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이 12월 7일에 열렸다. 다른 두 곳에서 분리돼 행진이 진행됐다는 점 말고도 특이한 점은 국가-시민사회 연대를 보여주는 기후 정의 전선이었다. 이미 올해 4월 볼리비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은 코차밤바 민중 총회의 성과를 반영하듯, 비아 캄페시나, 원주민 환경 네트워크(Indigenous Environmental Network), 지구의 벗 인터내셔널 외 많은 사회단체들 대표들과 알바(ALBA) 국가 고위직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협상장의 잘못된 협상 과정과 내용을 비판하고 진정한 협상을 위해 전 세계에 기후 정의 운동과 행동을 요청했다. 기자 회견 후 행진은 '기후 정의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천 개의 칸쿤'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함께 했다.
12월 10일, 고위직 공식 연설이 끝날 시간, 문 팰리스 로비에서는 침묵 시위대가 나타났다. "Global South," "Women," "Indigenous," "Youth," "No REDD," "Cochabamba" 구호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던 활동가들은 얼마 되지 않아 보안요원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그리고 예상했듯이 코차밤바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주장은 좀비들의 협상문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칸쿤은 끝났다.
이곳 서민들의 1년 소득을 하룻밤 숙박비로 쓰는 주요 정부 협상가들에게 칸쿤 합의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들이 마시는 샴페인이 천 사람의 피고, 그들이 씹는 이국의 안주가 일만 백성의 살이라면, 푹풍 몰아칠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합의문에 박수칠 때 기후 정의 목소리 높아질 것이다.
기후 정의의 출발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는 세상을 바꿔 기후를 바꿀 작당이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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