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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쾅' 소리에 쏟아진 눈물, '아! 핏빛 추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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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쾅' 소리에 쏟아진 눈물, '아! 핏빛 추억이여!'

[親Book]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

일병을 달고 첫 휴가를 나온 조카가 나흘 만에 백령도 부대로 복귀하고 나서 불면증이 부쩍 심해졌습니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창밖에서 들리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에 번쩍 눈을 뜨기도 하고, 꿈속에서 누구의 멱살을 잡고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다가 제풀에 놀라 깨기도 합니다. 그렇게 홀로 깨어 캄캄한 어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이 현실이 꿈인지 몇 해 전 금강산에 올랐던 것이 꿈인지, 모든 것이 흐릿해지며 눈물이 납니다.

평화와 화해를 향해서는 그리도 더디기만 하던 역사의 수레바퀴가 증오와 대립을 향해서는 왜 이리 빠르게 거슬러 가는지, 역사에 대한 비관을 떨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죄로 청춘을 저당 잡힌 이들을 위해서도 지금은 지성의 낙관이 필요할 때, 그래서 1년 만에 다시 <냉전의 추억>(후마니타스 펴냄)을 꺼내 들었습니다. 오늘의 절망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희망을 삼기 위해 펼쳐든 책인데, 쏟아지는 눈물로 책장이 다 젖고 말았습니다.

▲ <냉전의 추억 :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북한 문제 전문가 김연철이 쓴 <냉전의 추억>은 분단 60년 동안 남북이 겪은 단절과 교류의 역사를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하게 전합니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다시 보아도 소름이 끼치고 어떤 것들은 이제는 영영 옛일인 듯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끔찍한 것은 한국에서는 '도끼 만행 사건'으로 알려진 1976년 8월 18일의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입니다. 미군 장교 두 명이 미루나무를 자르러 갔다가 북한 경비병에게 맞아죽은 그 사건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어린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 드디어 전쟁이 나는구나' 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사건 직후 '데프콘 3'이 '데프콘 2'까지 올라갔으니 그런 두려움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때만이 아닙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내내 전쟁에 대한 공포는 늘 내 옆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서 북한 공비가 이승복 어린이의 입을 찢어 죽였다는 말을 듣던 그 날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 특히 전쟁이 가져올 참혹한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뭐 그리 겁이 많으냐고, 왜 지레 걱정을 하느냐고요? 죄송합니다, 겁이 많아서. 하지만 정작 낯을 붉혀야 할 사람은 소심한 내가 아니라 어린애에게 그런 공포를 심어준, 그런 공포로 권력을 유지해온 사람이 아닌지요.

냉전은 인간의 그런 두려움을 자양분 삼아 공포를 부추기며 이어진 치사한 체제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념 대립의 시대가 지면서 더불어 그런 치사한 체제도 무너졌다고, 냉전은 정말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 중. 그래서 책의 제목은 <냉전의 추억>이지만 책의 갈피갈피에는 채 추억이 되지 못한 현실의 냉전을 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습니다.

책 속의 에피소드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상대에 대해 '그랬으면 좋겠다'거나 '그래야 한다'는 시선을 고집할 때 냉전의 망령은 되살아납니다. 1994년 6월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입니다. 미국에선 합참의장이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대통령 클린턴에게 보고했고, 한국의 주식 시장은 폭락하고 라면과 방독면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김영삼이 "북한이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자멸과 파멸의 길로 갈 것"이라고 경고하는 가운데 내무부에선 '전시 국민 행동 요령'을 배포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고, 김영삼 정부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합참의장이 클린턴에게 보고한 시나리오를 보면, 90일이면 북한을 제압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미국군 3만 명 한국군 45만 명, 민간인 사상자 100만 명의 희생과 1조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 몇 달 전 <중앙일보>에는, 국민이 사흘만 참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군 관계자의 낙관을 인용해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만, 첨단 시스템을 이용한 미국의 비관적 전망을 넘는 그런 낙관의 근거가 뭔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입니다.)

훗날 김영삼은 회고록에서 당시 클린턴과 대판 싸웠다, 그때 싸우지 않았다면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거라고 회고했지만, 김연철은 여러 증거를 들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사실 그 상황에서 파국을 막은 것은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의 방북이었으며, 그 방북을 추진한 것은 김대중과 주한 대사 제임스 레이니였습니다. 김영삼은 오히려 "카터의 방북은 실수"라며 클린턴에게 비난을 퍼부었지요. 아마도 그가 기억하는 '대판 싸움'은 이것이었을 공산이 큽니다.

대통령 김영삼이 일촉즉발의 위기에도 꿈쩍 않고 미국의 협상을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은, 가만두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망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망한다'는 믿음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결과는 북한의 멸망이 아니라 1997년 외환 위기였습니다. 망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 경제였던 셈인데, 주관적 신앙이 객관적 현실을 무시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듯합니다.

김연철은 책에서 1999년 대북 정책 조정관 윌리엄 페리가 '한반도 냉전 종식을 위한 포괄적 접근'(일명 페리 프로세스)을 발표하면서 한 말을 세 차례나 인용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시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대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것, 그러고 보면 사랑도 외교도 기본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한편, 이 책에는 위태로웠던 긴장의 순간들과 함께,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헌신의 추억들도 여럿 담겨 있습니다. 남북이 총포를 겨눈 지금도 개성공단에서는 남북이 어울려 제품을 생산하고 있듯이,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로 교류와 방북은 엄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55년 맨몸으로 임진강을 건넜던 청년 김낙중이 이듬해 노래를 부르며 군사 분계선을 내려왔을 때, 그 '미친 짓'이 미래의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한 이는 남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포연이 가시지 않은 1954년 부산 거리에서, "전선에서 쓰러져 가는 가난한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며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없는가?"라고 외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그를 사람들은 정신병자나 간첩으로 취급했지요.

솔직히 그 모습을 봤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 겁니다. 1989년 황석영과 문익환, 임수경이 잇달아 방북하는 것을 보면서 그랬듯이, 철벽과도 같은 분단의 장벽에 저렇게 맞서다니 순진하고 무모하다고 혀를 찼을 겁니다. 하지만 평화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열망에서 나온 그런 무모함이 있었기에 장벽엔 금이 가고 마침내 남북이 오가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분단을 넘어 평화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치밀한 분석과 계산만큼이나 순수한 헌신도 필요하다는 것을 <냉전의 추억>은 일깨워줍니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다짐이 담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북한 정권은 당연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지 시도 때도 없이 분풀이하듯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냉전의 추억>이 보여주듯이, 교전규칙에 명시된 대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능력이 있을 때는 안정도 번영도 평화도 가능하지만, 쓸데없는 복수심은 오히려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반도는 1994년 6월 이후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리석고 모자란 탓인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 막막함에 마음이 무너져 다시 눈물이 흐릅니다. 그래요, 나는 울겠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전능의 신이 아닌 슬픔의 힘이니, 60년 전 이 땅에 뿌려진 피눈물의 기억에 기대어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우리가 흘린 피와 눈물을 잊지 말기를, 그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기를,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슬픔을 부르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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