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는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계간 <창작과비평>의 통권 150호 발간을 맞아 24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먼저 희생 장병들에 대한 명복을 빌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며 이렇게 답했다.
백 교수는 "정부로서는 공격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응징을 하자니 확전될 가능성이 있어 굉장히 고민이 클 것"이라면서도 "당장의 휩쓸림에 매몰되지 말고 좀 더 넓은 관점의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이 긴 관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기본 임무를 저버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낙청 교수는 '북한의 도발 사건이 일어나면 북측이 아닌 남측 정부의 안보 무능을 탓하는 것은 진보 진영의 관습화된 정부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을 놓고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백 교수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지구에서 일어난 관광객 피살 사건 때도 북한을 강력히 비판하는 등 자신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북한의 잘못에 눈감아주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당시 백 교수는 6·15 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는 다만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체제이면서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분단 체제에 함께 소속돼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북한의 불안정성은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북한 붕괴론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기본적 대북 인식이나 태도를 지적하는 것은 관습화된 비판이라 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최근 6자 회담을 제의하고 9·19 공동 성명 실천 용의를 내비쳤음에도 우리 정부가 '전략적 인내'로 일관한 것이야말로 비판받을 일"이라고 강조했다.
1966년 1월 창간한 계간 <창작과비평>은 그동안 문인을 발굴하고 문학 비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는 한편 한국 사회의 담론 형성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특히 한반도 문제, 남북 관계, 통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백낙청 교수는 "<창작과비평>이 통일 문제에 있어서 독보적인 계간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창작과비평>만의 기여가 있다면, 통일 지상주의나 분단 환원론을 경계하고 분단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강조해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이나 베트남의 통일처럼 일시에 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특징을 갖는데, 그러면 일반 시민들이 끼어들 틈새가 넓어진다"면서 "이러한 시민 참여형 통일을 이끄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오른쪽), 백영서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창비 |
'창작'과 '비평' 두 바퀴로 굴러온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로 <창작과비평>이 44년 만에 통권 150호 발간을 달성했다. 계간지가 3개월에 한 번 발간되는 것을 감안하면 37년 반이 걸렸어야 했지만, 1980년대 폐간 사태를 겪으면서 7년이 더 걸렸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4년 전인 2006년, 40주년 기념호를 낼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4년 전에 여러분께 했던 약속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비>는 40주년 기념호를 내며 '운동성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었다. 그간 시사 쟁점에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인터넷 칼럼 '창비 주간 논평', 주간 논평 게재 원고를 선별해 발간하는 단행본 <A4 두 장으로 한국 사회 읽기> 시리즈, <이중 과제론>, <87년 체제론>, <신자유주의 대안론> 등으로 묶여 나온 '창비 담론 총서' 시리즈가 모두 4년 전 약속의 산물이다. 이러한 노력이 통했다는 의미일까. 백영서 교수는 "주변에서 젊은 대학원생들이 <창작과비평>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미시적 관점을 제시하는 잡지는 많지만 여러 가지 사안을 놓고 종합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신뢰할 만한 곳은 역시 <창작과비평>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창작과비평>의 발행 부수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1970년대의 2만 부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1만 2000부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정기 구독자도 9000명 이상으로 탄탄하다. 백영서 교수는 "해외 지식인도 부러워 할 정도로, <창비>는 비판적 지식인의 잡지로서는 유일하게 시장에서도 성공했다"면서 "'창작', '비평' 두 바퀴로 굴러간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소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원인이다"라고 자평했다. <창비>는 통권 150호 발간을 맞아 또 한 번 의미 있는 시도를 한다. 바로 '창비 사회인문학평론상' 제정이다.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분과 학문의 틀을 벗어나 통합적 학문을 지향하고 주체적 담론 생산에 앞장 설 신예 평론가를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이다. 백영서 교수는 "이런 공모전은 사실상 처음이 아닌가 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밖에도 <창비>는 창간호부터 150호까지를 USB 메모리에 담은 '전자 영인본'을 출시하는 등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한다. 이번에 출시된 150호 발간 기념호는 △지난 10년간의 한국 문학의 성과를 되짚고 앞으로의 10년을 전망하는 특집 △차기 총선·대선 등 정치적 재편기를 점검하는 좌담 △신예 소설가 특집 등으로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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