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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귀를 열어라, 제발!

[프레시안 books]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

진짜 쓰레기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읽는 내내 이 나라에는 온통 'G20 광풍'이 불고 있다. 그 광란의 바람은 이 책의 제목대로 끝나지 않은 추락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스티글리츠의 경고와 충고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이런 상황은 펼쳐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이명박 정권의 정신상태가 틀려먹었다. 이 정권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자신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늘날 세계 경제가 어디에 고장이 났고, 그걸 어떻게 고쳐야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있다.

더군다나 "악취가 나니 음식물 쓰레기 배출하지 마라"고 조처를 취하는 정부 기관의 후진성을 대하게 되면 국민적 모멸감마저 느끼게 된다. 아예 "밥도 먹지 마라"고 그러지. 쓰레기가 나오면 신속하게 치워야 그게 진정한 선진국이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보다 더한 악취가 나는 이러한 자세와 유치한 조처들이다. 그게 진짜 쓰레기다. 그것부터 배출하지 말아야 세상이 상쾌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고통을 당하고 신음하고 있는 진정한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 대처 방안에는 고민하지 않고, "의장국 역할"이라는 자리가 주는 환상에 취해 뭔가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양 하는 것도 가관이다. "성공적" 개최라는 단어에서 "성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점상을 내쫓고 소득 불평등 시정 요구를 하는 시위를 막고 런던, 피츠버그, 토론토에서도 이미 있었던 세계 시민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차단하는 것으로 그 성공을 도모하려는가? 그렇다면 그 성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성공인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 더는 없다

▲ <끝나지 않은 추락>(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노턴(Norton) 출판사에서 나온 스티글리츠의 책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뒤, 국내에 번역판이 이미 나온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라는 이름의 무게나 평판이 물론 한몫 했겠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의 책을 우리말로 소개한 작업이 있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의 책이 솔직하고 날카롭게 정리해낸 논지들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진 가치만큼의 주목과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었다.

본래 "자유 낙하"라는 뜻을 가진 그의 책 제목 "Free Fall"은 어떻게 해도 막아내기 쉽지 않은 추락, 또는 그가 표현한 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하강(a decline without an end in sight)"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더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진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정직한 자기고백에서 대안은 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2008년에 충격적으로 겪었던 미국 경제의 위기와 거품 파열이 늘 있어왔던 경기 순환의 일시적 현상이라고 여기면 큰 코 다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전과 같은 동력을 가진 수준으로 회생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논점을 가진 그의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단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파헤치고 대안을 내놓는 작업에만 그 관심이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대하는 시선, 생각, 이론에 있다면서 "시장의 자율성", "시장의 자기 조절 능력" 등에 의존하는 경제학은 폐기되어야 한다면서 일종의 이론 투쟁을 선포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위기에서 진정한 교훈은 배우지 못한 채 적당히 땜질로 그 순간을 넘기고는 또 다른 위기를 촉발할 조처나 정책을 되풀이하고 만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시장의 자기 조절 작용을 전제로 하는 미국 모델에 따른 세계 경제에서 이미 수차례 "시장의 실패"를 경험해왔는데 뭘 더 이상 이런 이론과 모델에 신뢰를 보내는가라고 일갈한다. 그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대대적인 반발을 하는 기업들이 막상 자기들의 처지가 힘들어지면 "정부, 너는 뭐하는가?" 하면서 손 벌리는 도덕적 해이와 이중적 태도를 지닌 점을 비판한다. 그는 이익은 자기들이 챙기고, 부담은 정부 즉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파렴치함과 욕심 사나운 거대 금융자본에 대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미국 자본주의의 최대 책임은 규제받지 않고 덩어리를 키운 거대 금융 기관의 방만한 투기에 있으며, 이를 감독하고 규제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연방은행의 책임 방기, 그리고 이들 금융 기관에 대한 평가를 기만적으로 해온 신용평가기관이 일차적으로 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놓아둔 채 개혁 조처에 미적거려온 전 연방은행 총재 그린스펀 같은 경우는 그 책임감을 제대로 지지도 않고 뒤늦게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에 대해 자신이 다소 오판을 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스티글리츠의 미국 자본주의 문제 분석은 매우 일상적인 현실을 놓고 알기 쉽게 풀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진 상당히 놀라운 설득력이다. 미국 자본주의 경제를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건 마치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 같다. 노련한 의사가 그 병인과 대책을 짚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경제학적 전문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경제적 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자의 소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절감하게 된다.

금융 자본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커지면서 문제가 생겨도 정부가 알아서 구제해주겠지 하는 식으로 위험도 높은 투기를 함부로 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대목에서나, 공적 자금을 투입한 이후 고위급 임원들은 보너스까지 챙기고 일반 노동자들은 집단 해고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분석하고 전달하는 대목에서나 우리는 미국이나 우리나 다르지 않는 상황에 있음을 보게 된다. 부자 감세가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이어지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재정 악화로 연결되면서 국민들에게 그 부담이 넘어가는 현실도 미국과 우리가 다르지 않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1999년 금산분리 법안인 '글래스-스티걸 법안(Glass-Steagall Act)'의 폐기를 통해 금융자본의 몸집이 커지고 이들에 대한 규제 장치가 해체되면서 위험도가 그만큼 높아져 결국 미국 경제가 파국을 맞이한 과정에 대한 분석도 우리에게 실감있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주택 신용 대출을 근거로 만든 증권 상품들이 여러 가지 포장을 통해 파생상품화해서 세계 경제에 거래된 결과, 서브 프라임 위기가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이어진 구조적 과정에 대한 그의 분석도 현실감 있게 우리의 눈을 틔워 준다. 결국, 시장의 자유를 내세워 자본의 방만한 투기가 규제되지 못한 끝에 1년에 2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의 집을 잃고 마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 미국 경기 전반에 충격파를 몰고 왔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그 위기의 늪으로 끌고 간 것에 대한 그의 엄중한 논고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스티글리츠는 세계 금융 시장의 구조 개혁과 미국 달러에만 의존하는 상황을 극복하는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그가 부자 감세 정책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게 된다. 부의 불균형 분포가 일반 국민들의 소득 감소와 소비시장의 위축으로 나타나 결국 경기 하강을 촉진하고 경제 위기를 막아낼 방법을 없게 하고 만다는 진단과 분석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대한 사회경제적 안전망 확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에 더해 그는 보험과 복지 정책의 확장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출과 이를 위한 부의 재분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는 경기 불안정의 밑바닥에는 투기적 금융 산업의 팽창에 비해 초라한 소비시장의 현실과 이로 인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의 저하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의 분석은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들의 소비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 새로운 투자를 가져오고, 그에 기반을 둔 일자리 창출과 경기활력의 강화가 뒤따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국민들의 사회적 안전을 위한 각종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그의 논지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된다.

미국 자본주의의 동력 상실 이후의 세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함께 토론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 그 대목까지 거론할 만한 여유는 없고,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했던 것은 그가 세계은행의 중요 책임자 위치에 있으면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에 깊은 관심과 책임을 느낀 학자라는 점과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정직하고 날카롭게 파헤치는 학자적 양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나로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당시 세계 금융 자본주의 질서를 분석했던 시기에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 하버드 대학교의 제프리 삭스,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글에 많은 도움과 통찰을 얻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의 미국 금융 자본의 약탈성과 투기성은 오늘날 자신의 붕괴를 자초한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진단과 전망은 더 이상 혼란이 없을 것이다.

G20이 이런 논점과 시선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읽고 대안을 마련해나가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는 일이자 또 다른 위기를 새로 준비하는 과정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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