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시내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차림새도 아니고 빼곡하게 들어선 마천루를 두리번거리는 촌스러움도 아닌, 경차에 상하이 번호판을 붙인 모습이라는 말이 있다. 천정부지로 오르던 자동차 번호판 경매가격이 지난 3월 말 드디어 9만 위안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9만 위안(한화 약 1600만 원)이면 경차를 두 대 사고도 남을 돈이므로 사람들의 웃음을 살만하다는 것이 이유이다. 실제로 상하이 번호판을 단 자가용 열대 중에 아홉 대가 외국 브랜드라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상하이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번호판은 비싸야 몇천 위안, 필자가 거주하는 저장성(浙江省)의 2선 도시의 경우 자동차 판매상이 서비스차원에서 번호판을 달아 고객에게 가져다주는 것과 비교하면 베이상광(北上廣 :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1선 도시의 통칭)의 생활비용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양철조각이라 불리는 상하이의 자동차 번호판이 왜 화제가 되고 전국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되었는가? 2013년에 들어서서 비이성적으로 가격이 폭등한 번호판 경매가격을 급기야 시 정부가 나서서 규정을 바꾸고 대대적으로 규제를 강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상하이 자동차 번호판 시장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 상하이의 명물인 동방명주를 비롯해 푸동에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들. 현재 상하이 외부 지역의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량은 푸동으로 향하는 고가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 ⓒ뉴시스 |
교통량을 통제하기 위한 궁여지책
11·5 경제개발 기간 동안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580만대에서 1,800만대로 급증했는데 수치상으로 연평균 25%씩 성장했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도로증가율과 주차장 건설 등 부대시설 증설비율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 하겠다. 자동차와 교통량의 문제는 이미 경제영역을 넘어선 민생의 문제가 되었다. 교통총량 통제를 중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곳은 상하이로서 1994년부터 지금의 경매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당초 상하이시에서 경매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가장 시장원리에 충실한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액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낙찰되고, 급한 사람일수록 고액을 제시해서라도 낙찰을 받기 때문에 불필요한 자동차 증가에 따르는 교통 혼잡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뒤늦게 번호판 통제방식을 도입한 베이징은 상하이와는 다르게 추첨(야오하오, 搖號)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추첨에서 배제되는 특권을 가진 관용차량 비율이 높은 베이징에서는 일반 차량을 추첨으로 통제해도 별 무리가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완전히 운에 달린 것이므로 급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답답한 방식이다.
상하이에서 외지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주들은 출퇴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외지번호판은 러시아워에 고가도로를 올라갈 수 없으므로 제시간에 출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가도로를 오르지 못하면 푸동(浦東)으로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교통경찰이 진입을 막지 않지만 카메라에 찍힌 증거로 연말에 중고차 한 대 가격의 일 년 치 벌금을 물었다는 교민의 말을 들어보더라도 상하이에서 외지 번호판은 생활의 큰 제약을 받는 것은 틀림없다. 현재 베이상광(北上廣) 1선 도시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교통총량을 제어하고 있는데,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2선 도시들도 현재 1선 도시의 규제방식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중국도시들의 교통체증, 에너지수급문제, 주차대란, 환경오염 등 4대 문제를 거의 공통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약 20년간 실시해온 상하이의 번호판 경매방식이 최근 문제가 된 것은 비이성적인 가격상승 뒤에는 투기세력이 존재한다는 지적과 변칙적으로 운용되는 중고차시장의 번호판거래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여론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이달 25일에 실시되는 5월 경매에는 입찰 상한가를 7만 9900위안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그 근거는 지난 3개월간의 거래가격의 가중평균을 적용하여 산출한 수치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지난 6개월간의 가중평균을 적용하여 점진적으로 가격을 잡아나가겠다는 것이 상하이 시 정부의 구상이다.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기 시작한 지난 4월 말, 단 한 달 만에 4만 위안 이상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를 가격안정으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
투기의 온상이던 상하이 번호판시장
중국에서 투기를 목적으로 할 때 차오(炒)라는 형용사를 붙여서 炒股(주식투기), 炒房(부동산투기)등의 단어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상하이에서는 炒牌(번호판투기)라는 말이 성행할 정도로 자동차번호판이 일부들에게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상하이의 자동차딜러들의 말에 의하면, 상하이 자동차 경매에는 허수(虛數)가 존재해 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A자동차 판매상이 실제로 필요한 번호판의 개수가 100개라면 150개의 경매에 나서 일단 50개의 번호판을 확보해 놓는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자동차 딜러들에게 차를 구입하면서 번호판까지 같이 해결하기를 원하므로 만약을 대비하여 매달 여분의 번호판을 확보해 놓으려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자연히 낙찰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겠다. 중국에서 황뉴(黃牛)라고 하면 종전의 기차표 암표상을 떠올리겠지만, 최근 상하이에서 황뉴들은 자동차 번호판을 경매로 따놓고 웃돈을 얹어 파는 신종 암표상으로서 연간 20만 위안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고 하니 번호판 경매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어있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여기에 중고자동차 딜러들까지 합세하여 시장 질서를 극도로 혼란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상하이 시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고 즉시 시행에 나섰다.
지난 4월부터 적용된 새로운 규정은 경매가의 상한 액수를 정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의 번호만 경매신청이 가능하며, 낙찰된 번호는 6개월 이내에 본인의 명의로 사용해야 하고 이 기한을 넘길 경우 무효처리 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태껏 번호판 거래시장을 교란시킨 주범으로 찍혀있던 중고차 거래업자들에게도 철퇴를 가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신규번호판은 신규 차량에만 달 수 있으며, 번호판이 달린 중고차가 일단 양도되면 일 년간 재양도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명 번호판세탁(洗車牌)로 불리던 중고차 번호판 거래의 횡포가 상당 부분 근절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마이카 붐이 생겨 난지 수년이 지난 지금, 중고차업계는 이미 상당히 큰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상하이의 경우, 업계에 따르자면 새로운 규정으로 인해 중고차 딜러가 번호판 달린 차량을 매입하면 일 년 이후에야 고객에게 팔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중고차 딜러는 이제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이윤 공간도 대폭 줄어들게 될 공산이 크다. 향후 이 정책의 유지 여부는 중고차 매매업계가 이 거래 모델을 계속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정책에 영향을 미칠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간 성행하였던 대리경매업체(代拍公司)의 광고도 낙찰률 100%에서 슬그머니 80%로 바꿔달았다.
일시적 가격하락의 가능성
신규정이 시행된 첫 달에 무려 4만 위안 이상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보고 많은 전문가들이 성급하게 정책의 실효성과 성공을 칭송하였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계속 시행되고 세부조항들이 보완된다면 지난 3월에 보였던 9만 위안 이상으로 치솟는 비정상적인 거래가격은 앞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하이 시 정부가 말하고 있는 4만 위안대의(4만 위안이라는 가격도 이미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가격대 유지가 가능할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상하이의 번호판은 언제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가격상승은 필연적이다. 여태껏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에서 전례를 보여줬듯이 정부의 간섭이 직접 개입된 후 얼마간은 안정세를 보이다가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반탄력을 지닌 중국시장의 생리가 번호판시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을 듯하다. 게다가 번호판 경매가격 하락의 소식이 퍼지면 그동안 자동차 구매능력은 있으나 번호판의 부담 때문에 관망하던 잠재 소비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가격을 다시 올려놓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간 불편함을 감수하며 외지 번호판을 유지하고 있던 차주들도 다시 경매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현재 상하이 자동차 번호판 경매시장은 현장경매, 전화경매, 인터넷경매 등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눠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달의 경우 전화는 완전 불통상태, 인터넷은 접속폭주로 인해 트래픽 증가로 서버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지난달 경매가 실제로는 현장경매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한 요인도 있지 않겠나하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향후 전화회선 증설과 서버확충이 이루어진다면 경매참가자는 분명히 늘어날 것이고 거래가격 또한 대폭 상승할 것이라고 보인다.
멀어지는 중산층의 꿈
현재 중국이 앓고 있는 대기오염, 에너지수급 그리고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통총량의 조절이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거대도시로 점점 몸집을 불려 가는 상하이가 도로와 대중교통수단 확충을 외곽지역 신도시 확장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번호판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상하이 시내에서 집을 얻을 수 없을 만큼 부동산가격은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여태껏 소풍지나 주말농장으로 생각했던 숭장(松江)등지의 원거리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매일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서울의 젊은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단지 원거리 출퇴근을 위해 중고차라도 한 대 살 수 있음과 없음이 양 도시 젊은이들의 차이라면 차이겠다. 게다가 자가용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은 같으나, 번호판이라는 것이 상하이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 한다면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전혀 공신력을 가진 자료가 아니지만 매년 중국인터넷에는 '화이트컬러의 조건'이라는 내용이 발표된다.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중산층에 대한 꿈이다. 작년(2012년)의 표준이 월수입 5000위안(한화 90만 원)이었던 것이 올해 2만 위안(한화 360만 원)으로 바뀌는 바람에 많은 젊은이들이 현실의 벽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타 조건에 있는 방 두 개 이상인 자기 소유 아파트와 15만 위안(2700만 원) 이상의 자가용을 구비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꿈이 점점 더 멀어져 감을 느낀다고 한다. 상하이가 바뀐 규정으로 번호판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다른 시장의 투기현상처럼 또 다른 편법들이 나와 시장을 다시 교란시킬지 아직은 장담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상하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들의 대열에 자신의 차 한 대를 더 보태는 것이 외국에서는 고사하고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는 현실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양철 조각 하나가 중산층을 향하는 꿈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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