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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이즈"?…아예 남녀 간 연애를 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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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이즈"?…아예 남녀 간 연애를 금하지!

[기고] 당신과 다르다고 우리를 미워하지 말라

정말 동성애가 '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한국 굴지의 신문에 해괴한 의견 광고가 버젓이 실리는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남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이 점에서 "동성애자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한 '바른성문화를위한전국연합' 길원평 교수의 지적은 진실의 일단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성애자 커플은 금방 깨진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움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이성애자보다 알코올에 더 의존하고 자살 시도도 더 잦다고 했다. 심지어 수명마저 짧다고 했다. 그래서 동성애자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옳은 얘기일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동성애자들이라고 예외겠는가.

그래서 그 단체는, 또 그 단체를 대변하여 글을 쓴 길 교수는, '동성애를 끊을 수 있도록' 동성애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단체와 길 교수가 주장하듯이 동성애자 커플이 정말 불안정한지, 이들이 나이가 들면 외로움에 시달리는지 잘 모른다. 결혼하지 않은 이성애자 커플이 동성애자 커플과 비교하여 훨씬 안정적인지도 잘 모른다. 동성애자 간 혼인이 보장이 될 때에도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성애자들은 나이가 들면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길 교수의 지적에 공감한다. 나도 한국의 동성애자가 행복하게 살기란, 아니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기란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 행복해지기 더 어려울까? 왜 알코올에 더 의존할까? 왜 자살 시도가 더 잦을까? 그 단체와 길 교수는 그 이유를 '동성애'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 정체성으로서 동성애 자체 때문에 알코올 의존성이나 자살 시도 경향이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애 자체 때문에 알코올 의존성이나 자살 시도 경향이 더 작아지거나 커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동성애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다. 그런 시선에서 비롯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과 편견, 억압이다.

▲ 동성애 커플을 등장시켜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 속 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바로 동성애자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 편견, 억압이다. ⓒSBS

나는 길 교수가 대변한 그 단체가 한 일간지에 내보낸 해괴한 의견 광고,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가 근래 들어 본 가장 저열한 차별과 편견, 억압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동성애를 미화했고 그런 드라마 때문에 동성애자가 될 수 있고 동성애자가 되면 에이즈에 걸리기 쉽다.' 아무런 근거 없이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논리 아닌가. 이런 류의 시선 속에서 동성애자들의 알코올 의존성이나 자살 시도 경향이 심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 교수도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들면서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련성을 주장했다. 누적 감염인 중 동성 간 성 접촉으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39.3%, 특히 남성 감염인에서는 이 비율이 43%라는 점을 인용했다. 또 10~19세 연령층의 누적 감염인에서 추정 감염 경로가 동성 간 성 접촉인 경우가 52명(48%), 이성 간 성 접촉인 경우가 46명(42%)이라는 통계를 인용하였다. 이어 "이성애자에 비하여 동성애자가 HIV 감염인이 될 확률이 훨씬 높으며 특히 청소년이 동성애자가 될 때에는 HIV 감염인이 될 확률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같은 통계를 달리 볼 수 있다고, 또 달리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자에 비하여 동성애자가 수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적용하면 동성애자 가운데 HIV 감염인의 비율이 이성애자 중 감염인의 비율보다 클 것이다. 하지만 수적으로는 이성 간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되었다고 보고된 경우가 더 많다.

또 길 교수 식으로 얘기하면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경우 누적 감염인 477명 가운데 467명(97.9%)이 이성 간 성 접촉을 통해 HIV에 감염되었다. 여성의 경우 동성애자에 비하여 이성애자가 HIV에 감염될 확률이 80배 가까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성들이 "이성애를 끊을 수 있도록 여성 이성애자들을 도와주어야" 할까? 물론 이런 주장은 난센스다. 길 교수는 '동성애=에이즈'라는 도식을 입증하려는 데 집착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입맛에 맞는 통계를 고르게 되고 그 해석도 왜곡된 것이다.

에이즈와 관련성이 있는 것은 동성애나 이성애 같은 성 정체성이 아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맺을 때 누구나 성 매개 질환에 감염될 수 있다. 에이즈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관계를 통한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동성애를 끊으라, 이성애를 끊으라'는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전한 성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돕고 서로 도와야 할 뿐이다.

또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때문에 감염이 의심되거나 걱정될 때 충분한 상담과 교육을 겸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잘 갖춰 놓는 것이 필요하다. HIV 감염을 확인하였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정비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정작 필요한 일은 이런 것들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당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를 박해하지 말 것. 당신의 선택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 것. 성 정체성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름의 문제임을 인정할 것. 당신과 우리가 다른 점은 성 정체성 하나 밖에 없음을 기억할 것.

이것이 어려운가? 그렇다면 딱 하나만 부탁하고 싶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이성애자들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성애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에게 우리를 이해해 달라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들과 다르다고 우리를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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