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날 서울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모이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 결과 10만 명의 시민들이 모이자고 했던 '국민 대회'가 불과 1000명 정도의 시민들이 모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식이라면 '4대강 죽이기'는 정부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말 것 같다.
'국민 대회'는 '인간 띠 잇기'를 가장 중요한 행사로 추진했다.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 바로 '인간 띠 잇기'이다. 가만히 손을 잡고 서 있는 것으로 뜻을 알리는 것이 '인간 띠 잇기'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4대강 죽이기'라는 전대미문의 폭력에 맞서서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4대강 지키기'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찰의 강력한 제지에 막혀서 전혀 실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조현오 경찰청장의 '첫 작품'은 이 정부의 불통성을 강력히 과시하는 것이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일대는 그야말로 경찰과 경찰차의 거리였다.
경찰은 우선 또 다시 '차벽'을 설치해서 시민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인간 띠잇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번의 '차벽'은 2년 전에 서울광장에 설치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세종로 양쪽의 보도를 모조리 경찰 버스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많은 경찰 버스들은 어디서 왔을까? 그렇게 '차벽'을 설치하고자 얼마나 많은 기름과 혈세를 썼을까?
경찰의 대응은 '차벽'으로 끝나지 않았다. 많은 수의 의경들을 광화문 일대에 배치했던 것이다. 먼저 광화문 광장 안에 많은 수의 의경들을 배치했다. 의경들이 광화문 광장 안에서 거의 '인간 띠 잇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로 양쪽의 보도 안에도 많은 의경들을 배치해서 아예 시민들의 통행 자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경찰은 시민들이 건널목을 건널 때 건널목 양쪽에 늘어서서 시민들이 건널목 안에서 어떤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야말로 광화문 일대는 '국민 대회'의 장소가 아니라 '경찰 대회'의 장소로 변질되어 버렸다.
당연히 경찰의 저지는 '차벽'을 설치하고 경찰을 배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후 5시에 참여연대는 동아일보사 앞에서 모여서 약간의 사전 행사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전 행사를 '불법 집회'라며 즉각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어쩔 수 없이 집회 장소로 허가받은 광화문 우체국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경찰은 이동하는 참여연대의 활동가들과 회원들을 가로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잠시 동안 상당히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몸이 편치 않은 여성들도 있었는데 경찰은 막무가내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한쪽으로 밀어붙여서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경찰이 왜 이렇게 무리한 저지를 했던 것인지 지금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 참여연대 집회에서 연설하는 필자. ⓒ책먹는여우 |
오후 6시에 동아일보사 앞에서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모여서 '인간 띠 잇기' 선포식을 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선포식과 행진을 강력히 저지하고 나섰다. 방패를 앞세운 경찰이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의 대표들을 가로막았다.
국회의원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경찰은 겨우 기자 회견 형식으로 열린 선포식은 허용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경찰의 포위망 속에 갇힌 채 이루어졌다. 경찰의 포위망 밖에 있는 시민들은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의 대표들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 김상희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등 여러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이 있었으나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허가받은 장소인 보신각 앞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에게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며 즉각 해산하라고 경고하는 참으로 성실하고 충직한 모습을 보여서 시민들을 즐겁게 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허가된 장소로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5시 반에 참여연대의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허가된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다가 경찰로부터 봉변을 당한 것처럼 6시 반에 국회의원들과 시민들도 같은 곳에서 같은 봉변을 당했다. 경찰이 방패를 들고는 시민들의 정당한 이동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강하게 야단치자 경찰은 겨우 한 줄로 사람들이 이동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잠시 뒤에 이마저도 다시 막아 버렸다.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등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마당에서 경찰에 의해 이동이 저지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대체 이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시민들은 야유했다. "여기 장관 딸이 있다. 경찰은 비켜라." 한 시민은 경찰에게 국회의원의 보호에 관한 훈련을 받지 않았냐고 격렬히 따졌다. 한참 뒤에야 경찰은 물러났다. 경찰의 행태에 혀를 차며 보신각 앞에 당도하니 사회자가 아주 맞춤한 구호를 외쳤다. "업무 태만 근무 태만 저승사자 각성하라!"
▲ 1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인 시민들. ⓒ환경운동연합(박종학) |
경찰은 왜 이렇게 강경하게 시민들의 평화로운 집회를 가로막았을까? 조현오 경찰청장이 취임하고 처음 맞는 대규모 시내 집회여서 그랬을까? 혹시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청와대에서 강력한 지시를 내렸던 것은 아닐까? 어느 경우이건 간에 경찰은 시민들은 물론이고 국회의원들마저 무시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세종로 북단에는 페퍼포그 차들이 대기해 있었고, 거리 곳곳에 수십 명의 사복 체포조들이 대기해 있었다. 지난 토요일에 광화문 일대는 놀랍게도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폭력과 긴장이 팽배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양이더니 그의 무참한 폭압 통치를 모방하고 싶은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로 '4대강 살리기'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속으로는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4대강 죽이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경찰의 과잉 대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대강 살리기'는 이 나라의 생태와 경제를 동시에 파괴하는 전대미문의 이중 파괴 사업이다. 우리가 이 사업을 막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업을 강행하면 소수의 토건족과 투기꾼은 큰 이익을 취하겠지만 이 나라는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는 마침 일제의 조선 강제 합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 침략의 문제도 다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나라는 이제 '4대강 살리기'로 더욱 더 명확한 망국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 같다.
김정욱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삶을 걸고 '4대강 살리기'가 망국의 '4대강 죽이기'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4대강 살리기'가 100원 투자해서 25원밖에 벌 수 없는 희대의 쪽박 사업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은 '4대강 살리기'로 34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더니 실제로는 2300개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아무리 방송을 통제하고 인터넷을 억압해도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4대강 살리기'는 망국의 이중 파괴 사업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서 보와 댐을 완성하더라도 그렇다. 보와 댐이 건설되었다고 해서 그냥 '4대강 살리기'를 강행하는 것은 이미 크게 다쳤으니 아예 죽여 버리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4대강 살리기'의 이름으로 강행된 보와 댐을 모두 폭파해서 철거해야 한다. 그리고 강변과 강바닥이 최대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강 살리기이다. 망국의 이중 파괴 사업을 막무가내로 강행하면서 사회 통합이니 공정 사회이니 하고 외치는 것은 자신의 신뢰성을 스스로 마구 파괴하는 것일 뿐이다.
이 때문에 큰 화가 치밀면서도 참으로 '안습'이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된다. 권력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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