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과일이 영그는 가을이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한 기후 변화로 가을 폭염이며 가을 폭우 등 영 이상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대로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가을이 아주 사라지고 말겠지만. 우리는 자연 속의 존재이니 자연을 돌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강은 산에서 시작되어 들을 휘돌며 적시고 바다로 들어간다. 강을 파괴하는 것은 생명의 원천을 파괴하는 것이고, 산과 들과 바다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강을 지켜야 한다.
강을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강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는 강에 대한 총체적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 강은 그저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은 허공 속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질 구조 속으로 흐른다. 지질 구조는 강변과 강바닥을 형성하고, 물은 그 속으로 흐르는 것이다.
이렇듯 강은 물과 강변과 강바닥의 총체이다. 물만을 귀하게 여기고 강변과 강바닥을 멋대로 개조하는 것은 결국 강을 멋대로 파괴하는 것이다. 물과 강변과 강바닥의 총체로서 강은 극히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강을 멋대로 파괴하는 것은 강 생태계를 멋대로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을 파괴하는 것은 생명의 원천을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수한 생명을 살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삶도 파괴되고 우리는 근원적인 생존의 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둘째, 우리는 강에 대한 수계의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 강은 상류에서 하류로 이어진다. 길은 끊길지언정 강은 끊기지 않는다. 강은 끊이지 않고 상류에서 하류로 계속 흐르면서 그 모습을 계속 바꾼다. 그 결과 강 생태계는 상류에서 하류로 가면서 계속 변한다. 강을 지키는 것은 이러한 강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강은 주변의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강은 물의 흐름이라는 선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강은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로도 주변의 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입체로 존재한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강을 이용하기 위해 개발하는 것은 결국 강을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강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주변의 공간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만다. 강을 지키는 것은 이러한 수계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강을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개발해서 이용했다. 그 결과 오랜 옛날부터 강의 파괴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강의 파괴는 언제나 문명의 파괴로 이어졌다.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였던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은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이 말은 "문명 앞에 강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는 말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강을 지키지 않는 문명은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역사 속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를 예시하는 문명의 거울이다. 역사를 무시하는 자는 반드시 역사의 복수를 받게 된다. 디케는 두 눈을 가리고 우리를 심판하지만, 클리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냉엄한 역사의 교훈을 저버리고 근대화와 함께 강을 더욱 더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파괴하게 되었다. 직강화로 굽이쳐 흐르는 강을 직선화했고, 호안과 제방을 건설해서 강변과 강바닥을 대대적으로 파괴했고, 보와 댐을 건설해서 강의 흐름을 대대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일찍이 괴테가 '파우스트'를 써서 극구 찬양했던 이러한 파괴적 개발의 노력은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서구에서는 50년 전쯤부터 그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강의 복원이 추진된 것이다. 그 핵심은 직강화를 해체해서 강의 원래 흐름을 회복하고, 호안과 제방을 철거해서 강변과 강바닥을 가능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보와 댐을 철거해서 강이 원래의 흐름대로 흐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정반대의 일이 정권의 차원에서 무시무시하게 강행되고 있다.
정부는 '4대강이여 깨어나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 말의 실상은 '4대강이여 깨부수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녹색 강변이 이제는 수많은 트럭과 불도저와 포클레인의 잿빛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자연이 아름답게 살아 있던 4대강 전역을 산산이 깨부수고 있다. 4대강 전역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호안과 제방이 건설되고, 거대한 콘크리트 댐들이 건설되고 있다.
강 생태계가 제 모습을 잃고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으며, 강 생태계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역사와 문화가 대대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4강 사업'은 살아 있는 강을 죽은 강으로 만드는 '死江 사업'이며, 살아 있는 강을 죽여 버리는 '殺江 사업'이다. '4대강 살리기'의 실체는 '4대강 죽이기'이다. 그것은 생태계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까지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총체적 살상과 파괴의 사업이다.
우리는 이 전대미문의 파괴 사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4대강 살리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강행하는 정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끔찍한 살상과 파괴의 사업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정 홍수기인 장마철에도 공사를 강행해서 어떻게든 '4대강 살리기'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했다.
현재는 80%에 이르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기정사실화되면 어쩔 수 없이 '4대강 살리기'를 지지하거나 용인하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가 맞게 될 것은 생태와 경제의 대대적인 이중파괴이다. 이러한 이중파괴는 극소수 토건족과 투기꾼에게 막대한 부를 안기고 이 나라를 분명히 망국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라는 망국적인 파괴 사업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업을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차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난 5월에 출간된 내 책 <생명의 강을 위하여>(현실문화 펴냄)에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지만 '4대강 살리기'라는 망국적인 파괴 사업은 '파행적 근대화'라는 역사와 그 결과 형성된 '토건국가'라는 구조의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파행적 근대화'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중착취를 당연시하고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근대화이며, '토건국가'는 막대한 혈세의 탕진과 소중한 국토의 파괴를 끊임없이 강행하는 기형적인 개발국가이다. '4대강 살리기'는 이러한 '파행적 근대화'와 '토건국가'의 극단화에 해당된다. 이 문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이명박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토건국가의 문제가 복지국가의 목표를 짓누르고 있다. 토건국가의 문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결코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막대한 재정이 불필요한 토건 사업에 탕진되고 있는 곳에서 어떻게 복지국가가 이룩될 수 있겠는가? 정말로 복지국가를 꿈꾼다면 먼저 이 꿈을 억누르고 있는 토건국가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토건국가에 대해 무심한 채로 복지국가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열심히 공염불을 외우는 것과 같다. 더욱이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극심한 생태 위기의 문제를 낳았다. 이 때문에 현대의 복지국가는 생태적 전환을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건국가의 개혁은 재정의 탕진과 국토의 파괴를 동시에 저지해서 생태적인 복지국가, 즉 '생태복지국가'를 위한 길을 크게 열게 될 것이다.
'4대강 죽이기'의 저지는 생명의 젖줄을 지키는 것으로서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제를 단순히 강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강 죽이기를 강행하는 구조의 개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9월 11일)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의 여러 곳에서 '4대강 죽이기'를 막기 위한 국민대회가 열릴 것이다.
서울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4대강 지키기의 뜻을 밝히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살강 정책'을 저지하고 4대강을 지켜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생명의 강을 지키고 토건국가를 개혁하고 생태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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