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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길을 따라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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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길을 따라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다

[프레시안 books] 박세열·손문상의 <뜨거운 여행>

15세기 말의 인류의 대부분이 그 존재를 몰랐던 아메리카 대륙은 몇몇 유럽인들에 의해 급작스레 세계사에 편입되었다. 그 땅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콜럼버스는 무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등극했다.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기록은 여행과 여행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92년 10월 12일 오늘날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정복자들과 연대기 작가들, 가톨릭 수사들은 정복 사업의 과정과 아메리카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이후로도 황금이 넘쳐나는 엘도라도와 그 아류 전설이 수세기 동안 지속되며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건넜다.

과학 탐사가 유행하던 18~19세기에는 라콩다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찰스 다윈 등이 남아메리카를 여행하고 그 결과물을 발표해 당대 유럽 최고의 과학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을 꿈꾸던 낭만적 여행가들도 넘쳐났고, 심지어는 1856년 아르헨티나에 왔다가 파타고니아 원주민에게 붙잡혀 3년 넘게 혹독한 노예 생활을 한 프랑스인 오귀스트 귀나르(Auguste Guinnard)의 불행한 여행기도 있다.

이처럼 신대륙을 향한 유럽인의 부단한 발자국은 아메리카에 유럽을 심는 결과를 가져왔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두 대륙은 5세기가 넘도록 긴밀하게 인종과 문화, 지배와 피지배, 교역 관계를 이어왔다.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 아메리카 대륙, 그 중에서도 특히 중남미에 대해 한국이 자신의 발과 눈으로 체험하고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남이 수백 년간 축적해둔 자료를 피상적으로 가져다쓰며 그곳을 중남미라고 부를지, 남미라고 부를지,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를지조차 아직 논의해보지 못한 상태지만 어쨌든 몇 년 전부터 그곳으로 향하는 배낭 여행객이 넘치고, 방송사의 여행 다큐, 가벼운 여행 서적과 기행문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뜨거운 여행 : 체 게바라로 난 길>(박세열·손문상 지음, 텍스트 펴냄). ⓒ텍스트
<뜨거운 여행>(텍스트 펴냄)의 박세열, 손문상 두 저자도 크게는 중남미로 향하는 이런 한국인 대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체 게바라의 여행 루트를 따라 가며 체의 삶과 그가 바라보았던 라틴아메리카를 느끼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두 사람이 여행할 때 나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살고 있었고, 여행기가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리며 챙겨보았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하나로 묶여진 여행기를 펼치니 시간대는 조금 달랐지만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사람과 내가 동일한 공간에서 비슷한 체험을 공유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못 마셔봤다고 아쉬워 한 카페 토르토니(Café Tortoni)의 커피를 나는 몇 차례 마셔보는 행운을 누렸고(사실 그곳의 탱고 공연도 꽤 좋은데 커피보다 더 아쉬워해야할 부분이다!), 오물을 뿌린 뒤 도와주는 척 가방을 닦으며 돈을 훔치는 수법도 내가 당한 그대로다.

2006년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몬테비데오로 가는 배를 타러 부두에 가다 오물을 뒤집어썼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가방을 닦아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감사의 인사를 하며 그에게 아르헨티나 사람이냐고 물으니 아주 짧은 순간 동요하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태를 파악했을 땐 2인 1조였던 그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고, 그들이 아르헨티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씁쓸하지만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책에서 언급된 바릴로체, 테무코, 아타카마 사막, 쿠스코, 마추피추 역시 한 번씩 가본 곳이라 친숙했다. 버스 여행 도중에 타이어가 터져서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린 것, 싼 버스를 탔다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일, 역마다 넘치는 숙소 호객꾼 등은 남미 여행의 필수 요소인지라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였다.

여행기를 읽다보니 칠레에 대한 몇몇 애매모호한 정보들이 눈에 뜨인다. 그냥 지나치기 보다는 명확히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우선 마푸체(mapuche) 원주민의 명칭에 대한 부분인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마푸체 원주민이 사는 곳을 아라우코(Arauco)라고 명명했고 거기에서 아라우카노(araucano)라는 이름이 나왔지만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땅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마푸체라 부르며, 스페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거부해왔다. 현재는 지명 아라우코가 남아있지만 일상과 학술 용어에서 마푸체라는 이름이 거의 정착했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한편, 칠레 독립기와 그 이후 엘리트들이 유럽 문화를 지향한 탓에 칠레 문화의 혼혈성을 부정해왔고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원주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칠레인과 마푸체는 서로 다른 정체성 속에서 항상 갈등의 소지를 갖고 있다. 2010년 8월 현재에도 마푸체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마푸체 원주민 그룹이 거의 50일째 단식 농성을 하는 실정이다.

책에서는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는 칠레의 초대 대통령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그는 아르헨티나의 산마르틴 장군과 더불어 칠레 독립전쟁을 주도한 칠레 군인이자 정치가로 칠레 독립 이후 최고 통치권자를 지냈다. 칠레 공화국의 첫 대통령은 1826년 재임한 마누엘 블랑코 엔칼라다(Manuel Blanco Encalada)였다.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근방의 해안도시 발파라이소(Valparaíso)의 뜻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닌데, 아마 발파라이소의 여러 언덕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부르는 이름과 혼동한 것 같다. 발파라이소는 스페인 군인으로 칠레 땅을 밟은 후안 데 사아베드라가 자기 고향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붙인 이름으로, 이처럼 스페인 군인들이 고향의 지명, 인명을 따서 식민지의 새 도시 이름으로 삼는 경우는 매우 흔했다. 스페인 수호성인인 산티아고의 이름이 '산티아고 데 쿠바', '산티아고 데 칠레',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에 여러 차례 쓰인 것이 그 좋은 예다.

최근 몇 년 동안 남아메리카 여행기, 특히 쿠바 여행기나 사진집들을 다수 출간되었지만 살펴본 결과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대부분 사전 공부가 충분치 않아 한 사회를 읽어내는 관점이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스페인어를 못해도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책도 있었다.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현지인과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니 당연히 부정확하고 모호한 주관적 해석이나 감상도 많았다. 교정 단계에서 스페인어 철자나 발음을 바로잡지 않은 책들도 적지 않다. <뜨거운 여행>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취합해서 여행을 떠나 즉흥적이고 단순한 감상만을 담은 가벼운 여행기나 사진집보다는 훨씬 충실한 여행기이며, 그곳을 여행할 다음 사람들을 위해 사물과 지명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병기해두는 수고가 돋보인다.

너무 넓고 다양한 중남미를 다 가볼 수 없기에 '체 게바라의 여행 루트'라는 다소 자극적인 선택을 했지만 두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중남미 사회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틀을 얻게 되었다. 콜럼버스 이전 원주민 문명, 유럽의 식민화, 19세기 독립 이후의 권력 투쟁과 20세기 후반부의 사회주의 정치 실험까지 하나로 묶기엔 중남미가 얼마나 거대한 테마인지, 식민 문화의 유산으로 인해 서로 닮아있지만 또 얼마나 지역색이 두드러지는 곳인지도 체감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중남미 좌파 운동을 통해서 중남미에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있는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역시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여행기에서 공감되고 높이 사고 싶은 점은 여행지 곳곳에서 아시아와 아시아인에 대한 몰이해를 체감하고 그것을 꽤 솔직히 기술한 점이었다. 우리가 중남미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나 자각은 있지만 반대로 중남미의 아시아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남미가 아시아와 역사적 맥락을 거의 공유하지 못한 까닭에 아시아와 아시아인들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다. 한국인이 어설픈 이국취향으로 중남미를 보는 것도, 이제 막 유럽과 미국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하는 입장인 중남미가 아시아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앞으로 시간과 정성을 더 들여야 하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정보 하나를 덧붙이자면, 두 사람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닭곰탕이라고 명명한 음식은 칠레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인 닭수프 '카수엘라 데 아베'(Cazuela de av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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