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경험을 가지고 책을 세권 쓴 셈인데, 그만큼 아담이라는 특별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다가 세상에 내놓은 과정은 그녀의 인생을 전후로 갈라놓는 극적인 분수령이었다. 이 책은 갑자기 삶 속으로 들어온 하나의 이야기, 세상을 향해 말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해서 도저히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는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담은 평범한 아기가 아니라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기였고, 엄마 마사는 일찍부터 그 사실을 알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낳아 키운다. 이렇게 상황 설정이 되고 나면 대개의 독자는 이 책이 가령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이론화할 수 있는 어떤 주장을 가진 책이라고 예측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낙태 반대론자와 한 덩어리로 치부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 책이 지니는 여러 미덕 중 하나는 저자 마사가 확고한 느낌과 인식을 가지고 행동하지만, 그것을 이론적인 하나의 원리로 주장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낙태 문제든 무엇이든 상반되는 두 가지 필연성이 공존하는 일에 부닥쳤을 때는 어느 쪽을 택하든 후회와 자책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이 경우 어느 쪽이든 하나의 입장이나 원리로 논리화해서 제시하고 그 원리에 입각한 행동 여부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죄책감과 후회를 할 필요가 없게 될지는 몰라도 그것은 살아있는 삶이 아니다. 이 책은 두 가지 필연성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로 인해 겪게 된 삶의 감격과 기쁨, 좌절감까지 기록한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이다.
▲ <아담을 기다리며>(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
엄마 마사는 모르몬교 신자지만 종교적 광신과는 거리가 멀고 가난했지만 머리가 아주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괴짜 교수였고, 마사의 여덟 형제자매의 평균 아이큐(IQ)는 165이다. (그런데 임신한 아이 아담은 아이큐가 35 정도 되리라고 기대된다.)
이 여덟 형제가 모이면 대화는 날카로운 유머와 이중 의미, 암시 등을 가득 담고 굉장한 속도로 진행되었고,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말의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녀는 자기 피붙이들 사이에서 지적인 경쟁이라는 섬세한 기술을 처음으로 배웠고, 자신이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태도를 배웠다. 이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욕은 "멍청이, 바보, 백치"였고, 마사는 의학적으로 백치라고 진단받은 아이를 임신하고 집으로 가면서 자기 집안에서 누군가를 깎아내릴 때 수도 없이 써온 백치라는 말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하버드 이전부터 이미 마사의 삶에서 두뇌 활동은 대단히 중요했고, 이런 인생관과 태도는 하버드에서 훨씬 강화된다. 아담을 임신하고 하버드에서 지낸 7년간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녀는 그게 두려움에 찬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무서울 만큼 명석했고 나는 항상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할까봐, 내가 얼마나 우둔하고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멍청이인가를 드러내는 말을 하게 될까봐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첫 아기를 낳던 날도 마치 덤불 속에서 아기를 낳아 안고 나오는 원시 부족의 여인처럼 진통을 하면서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아기를 낳자마자 친정 엄마의 품에 넘기고는 다시 하던 일을 마쳐 그날로 보고서를 교수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들을 통해 그녀는 자신뿐 아니라 모두들 하버드에서 가면을 쓰고 있고, 화제가 되고 있는 학자나 이론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는 체하며 지내왔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확인한다.
결국 그녀는 하버드의 교수와 학생들의 드러난 삶의 이면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경쟁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웃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마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임신중독증에 가까운 극단적인 신체적 시련 속에서 혼자 전전긍긍하다 거의 죽음에 이른 그녀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임신 중에 그녀는 여러 번 기적을 경험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이 보이고, 화재 연기 속에서 신비스러운 손이 나타나서 구해준다.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신비스러운 도움의 손길이 미친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과정은 "이상한 무엇이 녹는 듯한 느낌, 나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통제력이 느슨해지는 느낌, 위험할 만큼 기분이 좋다는 느낌"으로 묘사된다. 논리적으로 이전의 불만스러운 삶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태도로 이행해가는 것이 아니라 임신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면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관의 변화는 아담이 태어나기 전에 갖고 있던 믿음, 즉 엄격하게 훈련된 재미없는 일이 좋은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인생의 첫 20년을 교육 제도가 제시하는 모든 시험을 통과하려 애쓴 뒤에 그 모든 노력의 목표는 즐겁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계속 생각해왔다.
그런데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뱃속에 품으면서 사회관습이 설정한 그 경직된 기준 이외에, 행복에 다다르는 좀 더 직접적인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삶은 고행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예기치 않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것이며,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도 좋은 것이 아닌가. 마사는 인생을 즐겁게 사는 근본적인 지혜를 자신의 이 '바보' 아들에게서 배웠음을 고백한다.
남보다 앞서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이 없는 사람, 현재의 순간에서 기쁨을 찾는 데 몰두하는 사람에게 사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녀는 말한다.
"아담의 출생은 운명이 우리가 가장 잘 세운 계획이라도 부숴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에게 낯설고 다채로운 삶의 여정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뿐이다."
아담이 태어난 후 그녀는 자신이 아담에 대해 느꼈던 그 모든 두려움은 결국 그 아이가 "강하고 완벽한 위대한 마사"라는 자신의 겉모습을 부수어버릴 것이라는 공포심이었음을 깨닫는다. 사실 멍청하다든가 못생겼다든가 하는 아담에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들은 어느 시점에 그녀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재앙을 회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치 회심한 바울처럼 그녀는 이제 "가장 큰 두려움은 지나갔다 (…) 내가 몹시 귀중한 것이라 생각한 것들이 모조 장신구처럼 값싼 것들이며, 내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 것들이 직접적으로 내 영혼에 자양분을 주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담과 함께 살고 아담을 사랑하면서 '사물의 핵심을 보는 법'을 배운다.
그 배움은 무슨 유별난 영성수련이나 훈련이 아니라 어린 아담이 늘 그러듯이 길을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장미뿐만 아니라 관목들까지 냄새를 맡아보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은 "거의 숭배에 가까운 사랑과 친밀함을 가지고 평범한 생명을 대하는 주의집중의 결과"이다. 그러면 삶의 신비로운 영역이 보인다. 진정한 마술은 "늙은 호박과 생쥐와 달빛에, 일상적인 삶 너머가 아니라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지속되는 것이고, 만만치 않다. 그녀는 아담이 말을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때마다, 다른 아이가 아담에게 손가락질하며 웃는 것을 볼 때마다, 그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풀죽은 얼굴이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죄책감으로 가슴이 찢어진다. 그녀는 그 유순하고 상냥한 아담이 무서운 세상 속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아직도 자신에게 묻는다.
"왜 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가?"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의미를 자신이 결코 알지 못할 것임을 느낀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힘든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직면하고 그것을 "삶이라는 피륙 속으로 흡수했을 때만 자신을 용서하고 진실한 연민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아담이라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독립적인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면서 경험하는 경이로움의 기록이며, 살아있다는 벅찬 감격으로 가득 차있는 기록이다. 그리고 이 책은 피상적인 윤리나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고, 자기가 확실하게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를 감수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삶의 기쁨과 괴로움을 아주 솔직하게, 명쾌한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전문적인 작가가 아님에도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언어화해서 표현하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녀의 예리한 언어를 읽는 것 자체가 호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마사는 임신 중 초음파 화면에서 아기를 처음 보았을 때, 말 그대로 아담이라는 느낌, 즉 흙의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는다. 그리고 <리어왕>의 한 구절, "바로 그거야. 덧붙인 것이 없는 인간은 그렇게 가난하고 헐벗은 동물일 뿐이야"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떤 점에서, 이 책은 '흙의 사람'인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하버드의 엘리트 학생 부부가 유한하고 덧없는 생명으로서 그들 자신의 존재에 충실하기를 배워가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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