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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거지'의 등장? 악마의 초청장을 찢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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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거지'의 등장? 악마의 초청장을 찢어라!

[프레시안 books] 김재영의 <하우스 푸어>

"우리 회사의 대출 고객 가운데 한 명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결국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가 자살했습니다."

얼마 전 트위터 상에서 이뤄진 주택 문제에 관한 집단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 한 금융기관 중견 간부는 상당히 충격적인 증언을 내놓았다. 그는 계속된 증언에서 "주택 담보 대출 연체율이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아파트 가격의 70% 이상이 대출인 채무자는 극단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수도권에는 이미 비참한 '하우스 푸어'들이 많다"며 "이걸 언론에서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이미 하우스 푸어(house poor) 문제가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가운데 이미 하우스 푸어들이 넘쳐나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소개한 책이 출간됐다. 바로 문화방송(MBC) <PD수첩>의 김재영 PD가 최근 출간한 책 <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더팩트 펴냄)이다.

김재영 PD는 지난해 '판교, 그 욕망의 땅', '강남 재건축의 그늘', '재건축 늪에 빠진 사람들', '2010, 아파트의 그늘', '인천은 세일 중' 등 주택 시장의 적나라한 실태와 사회경제적 문제점을 심층 취재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같은 심층 취재를 통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상당한 전문 역량을 축적한 PD이기도 하다. 김 PD의 공력 덕분인지 <하우스 푸어>는 출간 직후부터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들의 실태를 다룬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 등 세간의 화제를 낳고 있다.

▲ <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김재영 지음, 더팩트 펴냄). ⓒ더팩트
사실 김재영 PD의 고발이 아니더라도 이미 수도권 곳곳에는 '집 가진 빈자'들인 이른바 하우스 푸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양산되고 있다. 다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속을 끙끙 앓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사실 하우스 푸어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다. 결혼할 때 집 장만하는 것이 '능력'의 표상이고, '돈 생기면 집부터 사라'는 것이 한국 재테크의 불문율 1조 1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일 수도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중산층이 된다는 표상이었고, 경제적 안정의 징표였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집을 어느 곳에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신분이 구분되는 2000년대를 통과해왔다. 이런 사회에서 '집 가진 빈자'는 형용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하우스 푸어는 점점 냉엄한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분당, 용인, 평촌, 일산, 파주, 김포, 인천 청라와 송도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 3구를 비롯한 각종 뉴타운 및 재개발 재건축 단지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필자가 김재영 PD의 요청으로 하우스 푸어의 숫자를 추정해본 결과 기존 주택과 신규 분양물량 매입을 통해 발생한 하우스 푸어만 수도권에서 95만 가구, 전국적으로는 198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앞의 수치에는 수도권 고점 가격인 2006년 이후 주택 매입자만 포함돼 있다. 지방의 경우 이미 2004~2005년경에 주택 가격 상승을 멈춘 지역이 많아 실제로는 하우스 푸어 상태에 들어가 있는 가구 비율이 수도권보다 더 많을 것이다. 또 이 수치에는 아파트가 아닌 단독과 연립주택 매매 거래를 통해 하우스 푸어 상태가 된 사람들도 제외돼 있다.

더구나 향후 하우스 푸어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주택 시장을 둘러싼 거시경제 흐름상 주택 가격이 대세 하락 흐름으로 가게 될 것임은 이제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택 가격 하락으로 하우스 푸어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주택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가운데 주택 담보 대출 거치 기간이 돌아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원금 상환이 시작될 경우 추가 대출 없이 첫해에 즉시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가구가 전체 부채 가구의 14.9%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주택 담보 대출의 거치 기간 만기가 2008~2009년에 도래하게 돼 있었으나 정부의 조치로 만기가 연장됐다.

하지만 필자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 하반기에 이르면 분기별로 25조 원 이상의 만기 상환 연장 물량이 쏟아지게 된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그 정도 만기 물량이 도래할 경우 금융권이 계속 만기를 연장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기를 더 이상 연기해줄 수 없을 때 이들 하우스 푸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소유한 집을 처분하고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그들이 모두 소득이 적은 사람도 아니었다. 무리하게 집을 사지 않았으면, 저축을 하며 충분히 중산층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집 없는 중산층에서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돈 덩이인 줄 알았던 집은 이제 빚 덩이였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족쇄가 돼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하우스 푸어 문제는 앞으로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2000년대 부동산 거품기의 후반에, 그리고 지난해 막차에 올라탄 사람들 대다수는 소득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무리하게 빚내서 집을 산 경우들이어서 집값 하락에 따른 충격이 더욱 클 것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것을 생각하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해 내내 '부동산 막차에 올라타지 말라'고 그토록 경고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김재영 PD의 책 <하우스 푸어>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문제를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해낸 '발로 뛴 저널리즘'의 훌륭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시장경제에서 모든 투자는 자기 책임 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집값이 오를 때는 투기 차익을 몽땅 차지하고, 집값이 내릴 때는 손실을 사회에 전가하는 것을 무작정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하우스 푸어 문제에 대해서도 다소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광기의 투기 거품 시대를 지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부동산 투기 잘 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고, 집 있는 사람이 집 없는 사람을 괄시하고, '집값 떨어진다'고 주장하면 집 없어서 배 아파하는 사람 취급하고, 아이에게 아이 친구 부모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물어봐야 하고, 집값 올리려고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 유치에 목숨을 걸고, 집값 떨어진다고 임대 주택이나 장애인 시설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임대 주택 아파트는 담장으로 막고, 아파트 부녀회에서 집 있는 아줌마만 모여 집값 담합 반상회를 하고, 우리 동네 집값이 저평가돼 있으니 더 올려 받아야 한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집값이 올라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토건 개발 사업에 찬성하고, 집값이 올라야 하기에 집값 올려줄 것 같은 저질 정치인을 국민의 대표로 뽑고…이제는 이런 비정상을 끝내야 하는 시기가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우스 푸어 한 사람 한 사람은 결국 우리의 이웃이요, 가족이다. 2000년대 부동산 투기 광풍 시대를 살아온 우리 사회의 어느 누가 이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결국 하우스 푸어는 부동산 투기 광풍 시대가 남긴 상흔이자, 우울한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우울한 풍경을 만들어낸 책임은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에게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거듭된 정책 실패, 건설 업체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매 선동 보도에 열을 올렸던 언론, 그리고 부동산 투기 선동에 열을 올렸던 부동산 정보 업체와 엉터리 전문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우스 푸어는 이들 부동산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만든 부동산 거품이라는 덫에 걸려든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로서는 그런 잠재적 하우스 푸어들이 더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계 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며 일반 가계를 현혹하기 바빴던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상당수 신문들이 다급해지자 이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로 당장이라도 한국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며 DTI규제를 풀어서라도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금도 가계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 규모가 140%를 상회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가계 대출을 더 늘리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부동산 광고에 목 맨 상당수 언론은 "집값 떨어진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라며 물귀신처럼 멀쩡한 가계를 하우스 푸어의 행렬로 끌어들이는 선동 보도에 여념이 없다. 정부 또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거품 잔뜩 묻은 아파트 폭탄을 받아줄 '잠재적 하우스 푸어'를 계속 양산하려 하고 있다.

일반 가계는 이들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선동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이들의 선동에 넘어가는 순간 '잠재적 하우스 푸어'가 될 초청장을 받아든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재영 PD의 책 <하우스 푸어>는 국민에게 빚을 권하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덫에 걸려들어 선량한 국민들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훌륭한 백신 역할을 하는 책이다.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지금도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부동산 시장 주변을 맴돌고 있는 분들께 <하우스 푸어>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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