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7월 5~10일이 그 주간이었다. 이 주간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국제 안전 보건 전시회'와 위험 평가 국제 세미나, 석면 조사 관련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 주간의 안전 문화 캠페인 슬로건을 '조심조심 코리아'로 정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왔고 그 문화가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을 비롯해 각종 생활 현장에서 위험을 증가시켜온 것으로 비판받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나 다녀간 외국인들 가운데 김치와 더불어 가장 일찍 입에 배는 말이 바로 '빨리빨리'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 사고성 사망 만인율은 노동자 1만 명 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를 말한다. 한국의 사고성 사망 만인율, 다시 말해 산재 사망 만인율은 영국의 14배, 일본과 독일의 4배, 미국의 2배나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목숨은 심하게 말하면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 그에 걸맞게 산재 사망률이 낮아지고 각종 사고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지난 10년간 일터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조심조심 코리아'라는 슬로건이 노동자들의 사고를 줄여줄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든다.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조심조심한다고 해서 산재나 직업병이 확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심하고 싶어도 조심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만 하더라도 정부가 마구 밀어붙이는 바람에 한국전쟁 때 묻혔던 불발탄이 폭발하는가 하면 밤낮없이 일하느라 노동자만 죽어난다. 심지어는 광화문 복원 공사 현장에서도 계획보다 몇 개월 일찍 8·15 광복절에 맞춰 완공하라는 높은 곳의 엄명에 따라 '빨리빨리'가 진행 중이다. 고위층이나 고위층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한 노동 현장에서 아무리 '조심조심'을 외쳐봐야 일회성이나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의 생명이나 건강보다는 속도전과 효율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한다.
'조심조심'의 정신은 우리 조상들이 이미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등의 속담을 통해 그 중요성을 잘 전해주었다. '뛰기 전에 앞을 먼저 보아라' '치료보다는 예방이 낫다' 등의 서양속담에서도 이러한 정신이 들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충분한 주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매우 심각하게 안전의 시계가 '벤자민의 시계처럼'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나 서민 복지 등뿐만 아니라 안전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 피해가 노동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에게까지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조심조심 코리아'가 그 참뜻을 지니려면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우선 적용돼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제대로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시범 사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멸종 위기 동식물이나 희귀 동식물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강의 생태계를 살릴 수 있고 일하는 노동자들과 강 주변 주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서양에서는 옛 조상의 '조심조심'의 지혜를 살려 '사전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1970년대 독일 환경법에서 처음 등장해 지금은 리우선언 등 각종 국제 협약이나 조약에 그 정신을 담은 문구가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환경운동가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도 자국의 법이나 정책에 이런 원칙이 녹아들어가 실천되고 있다.
이 원칙은 환경 분야만이 아니라 산업 안전 분야에서도 응용할 가치가 있다. 노동자가 위험하면 시민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산업 현장 또는 생활 현장은 각기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 있다. 환경이 아프면 우리 몸이 아프고 노동자가 아프면 시민이 아프다.
작업 환경이 위험하면 일반 환경도 위험하다. 분진이나 소음, 석면이나 유기용제, 발암 물질, 악취 물질이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면 그 작업장에서 대기 중으로, 폐수로 나오는 유해 물질은 결국 일반 시민의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 1988년 발생해 우리나라 최대의 직업병 사건으로 자리매김한 원진레이온의 한 노동자가 방사과에서 인견사를 뽑는 모습. 이 사진은 사건이 불거진 뒤 방독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모습이고 이전에는 마스크 없이 유독 가스를 마셨다. 작업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공장 인근 주민들도 악취와 심각한 공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공해병인 일본의 유기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병, 카드뮴 중독에 의한 이타이이타이병은 모두 공장에서 나온 유해 물질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앗아간 대표적인 사례이다. 석면 광산과 석면 제품 제조 공장 주변 주민들이 무더기로 석면폐증이나 악성중피종에 걸려 숨진 것도 충남 홍성·보령 지역과 부산의 석면 방직 회사였던 제일화학 주변, 일본 구보타 공장 주변과 미국, 유럽 국가의 여러 석면 제품 공장 주변 주민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000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낸 우리나라 최대의 직업병 사건으로 자리매김한 원진레이온 공장 주변 주민들로 수십 년간 이황화탄소와 황화수소와 같은 유독물질 공해와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공장 주변 주민의 생명과 건강 위험은 1970년대나 1980년대 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하다. 최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002~2006년 국가 암 등록 연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여수·광양 지역에 사는 20세 이상 남성의 연도별 주요 직업성·환경성 암 발생률이 전국 평균에 견줘 호흡기계 암이 유의미하게 증가세를 나타냈다. 혈액계 암도 전국 평균 발병률보다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호흡기계 암은 후두암, 기관지 및 폐암을, 혈액계 암은 비호지킨 임파종, 골수성 백혈병, 기타 백혈병을 말한다. 여수에는 여러 유기용제를 다루는 석유 화학 장치 산업이 많다. 혈액암 발병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광양은 철강 회사가 다수를 차지해 코크스 등 발암 물질을 사용해야만 하고 이 때문에 폐암 발병 위험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서 폐암이나 혈액암 등 직업성 암이 다수 발생했다. 이런 암 가운데 일부는 흡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따라서 이런 개인적인 요인까지 조사해야 정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환경성 암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직업성 암은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발암 물질에 노출돼 걸린 암이고 환경성 암은 산업 현장이 아닌 일반 환경 중에서 발암 물질에 노출돼 발생한 암이다. 이 둘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직업성 암과 환경성 암은 상당 부분 동전의 양면에 해당하거나 샴쌍둥이와 같다. 직업성 암이 많이 생기는 공장이나 작업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성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일반 시민들이 노동자의 직업성 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나 노동조합도 자신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소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가 아프면 시민도 아플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산업 안전 보건 운동이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수·광양 지역의 환경성 암 문제에 대한 연구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맡긴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한 것이다. 여수·광양 지역의 환경성 암 가능성과 같은 조사 연구는 이 지역에 머물지 말고 다른 산업,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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