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등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계획 취소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국내 정치 문제로 발목이 잡히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기세를 잡고 미국의 빈 자리를 노리는 무대가 펼쳐지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중국의 경우, 평소 미국이 주도한 APEC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한 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전체 교역의 70%를 APEC 역내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문제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오바마가 빠진 공백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지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정치분석가 닐 보위는 러시아의 인터넷 매체 <RT.com> 기고문 'Shutdown': China's Xi upstages Obama's Asia pivot'을 통해, 오바마의 APEC 불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위상 변화를 가져올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가장 주목받는 자리가 되었다. ⓒAP=연합뉴스 |
오바마의 날개가 잘리고 대통령 전용기가 땅에 묶이게 되면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은 기회를 낚아챘다. 그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역사적 방문을 하면서 대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APEC과 아세안 회의에서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진핑은 자카르타와 쿠알라룸푸르에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공세를 펴는 동안, 오바마는 집무실에서 손가락을 초조하게 놀리면서 공화당과 책임공방이나 벌였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의 문화로 볼 때 내부 문제로 오바마가 APEC에 참석하지 못한 상황은, 중국으로서는 오바마가 '종이 호랑이'로 보일 수밖에 만드는 사건이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양대 경제대국으로서 군사 문제와 금세기 세계 경제발전의 기관차가 될 아태 지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APEC에 불참한 것은 세계 패권의 흐름이 동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다른 상징적 사건이다.
오바마의 외교정책은 하는 것마다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또한 부채 문제로 벌어진 사태는 아태지역의 리더십 모델로 자부하는 패권국가의 특유한 현상으로 대충 덮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많은 찬사를 받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두 가지 전제 위에 놓여있다. 군사적으로는 아시아 지역에 미군의 순환배치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상당한 지원책이 될 '은밀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바로 환태평양파트너십(TPP)를 통해 동남아시아 경제를 미국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을 주도할 사령관이 코 앞에 닥친 문제로 불과 며칠 정도의 아태 지역 순방도 못할 정도라면, 미국의 '태평양 시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그리고 신흥 경제국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세계가 변화하는 조류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라는 거인의 리더십이 겪는 '폐쇄 사태'로 보다 공정한 다원적인 세계경제 질서가 앞당겨 도래할 수 있다.
중국의 외교장관 왕이는 최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외교정책의 요체를 당당히 밝혔다. 중국의 외교는 동등한 입장에서 간섭 없이 서로 이득이 되는 파트너십을 원칙에 입각해 새로운 국제체제를 만드는 다자적 참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같은 개도국들은 중국과의 거래에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은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와 TPP처럼 지나친 금융 위주, 주권을 침해하는 조건 등으로 상대국을 얽어매려하기보다는, 상대국의 물류, 의료, 교육 등 기반 서비스 확충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 남중국해 문제 등 차별화된 외교 리더십 발휘할까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여건이 변하면서, 이곳 국가들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동조할지, 거부할 것인지 조만간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결과의 상당부분은 남중국해의 까다로운 분쟁 문제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다룰지에 달려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연설한 최초의 외국 정상이 되어, 중국과 아세안이 21세기의 새로운 해양 실크로드를 건설하는 공동체가 되자고 제안했다. 시진핑 주석은 "돈은 쉽게 벌 수 있어도 우정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도네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원유과 가스가 풍부한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대화와 신뢰 구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은 2020년까지 아세안과의 무역 규모를 1조 달러까지 끌어올리고, 서부 자바 지역에 9만 헥타르의 댐을 건설하는 등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300억 달러에 달하는 채광과 항구 건설 계약도 수실로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롱과 체결했다.
시진핑 주석은 말레시아아 방문에서도 2017년까지 교역 규모를 3배에 달하는 16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사상 가장 친미적이라는 나집 라자크 총리는 균형 외교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친중국적인 입장을 놓치지 않고 있다.
나집 총리는 미국과 군사적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며, TPP 협상해도 참여해 왔다. 하지만 그는 말레이시아의 주권이 문제가 된다면 협상에서 빠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오바마는 TPP에 회의적인 말레이시아의 여론을 직접적인 설득으로 돌리려는 기회를 날려버려, TPP의 타결 가능성이 더 어두워졌다.
한 나라가 협상에서 빠진다면, 오바바의 아태 경제전략의 신자유주의적인 중심축이 흔들리는 도미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위상은 향후 20년에 걸쳐 지정학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간단히 말해 일극체제와 다극체제의 향방을 가르는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이 금융과 경제 개혁에 좀더 박차를 가하면서 '끈기있는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세계 경제를 이끄는 국가로서의 책임을 질 준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달러와 유럽의 유로화가 불안한 글로벌 경제로 인해 양대 기축통화의 위상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통화체제의 안정을 도모할 제3의 기축통화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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