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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한국 거리가 네덜란드처럼 바뀔 날은…"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9>"영세 상인도 '퇴근'이 필요하다"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네덜란드' 편, 上 : "이 나라에서 고객은 갑이 아니라 을!"

그 외 영세 상인들의 생업권을 보장하는 유통업 관련 공간정책들

지역 영세 상인들도 일찍 퇴근할 수 있고, 저녁에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고, 삶의 질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데는 앞에서 설명한 유통업영업시간규제법만 있지 않다. '시간사용'이 공적인 약속의 구속을 받는다면, '공간사용'이야말로 공적인 약속의 구속이 필요한 영역이다.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중앙정부 차원에서, 2004년부터는 주 정부 차원에서 유통업의 입지를 규제하고 있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유통업 입지를 세 종류, 즉 교외유통업입지(Perifere Detailhandelsvestigingen : PDV)와 대규모유통업입지(Grootschalige detailhandels vestigingen : GDV), 그 외 나머지로 나누어, 앞의 두 종류는 분배계획연구(distributieplanologisch onderzoek : DPO)라는 조사결과에 근거해 특정 입지에 대한 타당성을 증명한 경우에만 입지를 허용한다.

분배계획연구는 주로, 유통품목이 기존 도심 상권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기존 대규모유통업과 교외유통업의 공급 및 수요에 비춰볼 때 새로 하나가 생겨도 괜찮은지에 대한 것이다. 주 정부 차원의 조율은 교외유통업과 대규모유통업의 난립과 공급과다를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 주된 원칙으로, 대규모 유통업의 도시 내 입주는 되도록 금지하고, 도심 내 중소유통업의 상권은 유지시킨다. 가구 및 자동차와 같이 일상적으로 구매하지 않는 내구소비재는 도심에 굳이 없어도,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교외 대형유통단지에 나가서 구매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외 대형가구점과 도심의 중고 골동품 소규모 가구점은 특색도 다르고, 수요도 다르다. 레슬링으로 치면 헤비급은 헤비급끼리, 라이트급은 라이트급끼리 싸울 수 있도록 링을 잘 정해주는 것이다.

▲ 아른험-네이메헌 지역의 유통업정책 평가 보고서 표지

각 지방정부는 또한 자율적으로 '유통업계획정책(detailhandels beleid)'을 수립한다. 특색 있고 매력 있는 상권을 조성하기 위한 10년 단위 비전과 전략을 천명하는 정책문서이다. 이 정책에 따라 대규모유통업 및 교외유통업 입지도 결정하고, 도심 내 상권을 진흥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실천에 옮긴다. 지방정부 관할 상권뿐 아니라 타지방정부 관할권 및 도시 내 상권들 간의 비교분석을 통해 지방정부 관할 상권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관할 지역 내 유통업이 취급품목과 규모별로 어디에 어떻게 분포할 수 있는지 공간적 원칙도 제시한다. 정책이행결과는 정기적으로 평가하여 다시 보고서로 펴낸다. '유통업계획정책'은 지방정부 규모에 따라 '요식업정책(Horecabeleid)'과 별도로 펴내기도 하고, 또는 요식업을 포함하여 통합적으로 펴내기도 한다. 둘 다 상권유지 및 개발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또한 '유통업계획정책'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향후 20년에서 30년간의 공간개발 및 이용 방향을 전망하며 수립하는 비(非) 법정 '전략계획(structuurvisie)'과 법정계획으로서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공간을 규정하는 '토지이용계획(bestemmingsplan)'에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지방정부는 도시재생을 할 때 '유통업계획정책'의 기조 및 지방정부 차원의 경제 및 고용정책에 근거해서, 취급품목과 규모가 균형 잡힌 상권형성을 촉진하는 편이다. 한 예로, 네이메헌(Nijmegen)은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약 10년 동안 시청 주위 약 7300평을 쇼핑거리로 재개발하는 마리엔뷔르흐(Mariënburg)사업에서, 지역기반 상점들이 높은 임대료로 인해 대형브랜드매장에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개발목표 중 하나로 천명했다. 그리하여 마리컨스트랏(Marikenstraat)은 아예 특색 있는 지역기반 중소규모 상점들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임대료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쇼핑거리의 점포구성과 유지관리에 있어서도 법정계획인 토지이용계획 및 여타 비 법정 수단들을 동원하여 지역기반 중소규모 상점들의 입지와 상권을 지켜주는 것이다. 한편, 대규모유통업 입지나 교외유통업 입지와 관련해서는 토지이용계획변경을 놓고, 사업자 측에서 입지에 필요한 공공기반시설설치와 보강비용을 부담한다. 그 입지를 얻는 것 자체가 정부가 허락하는 유통업용지가 제한적인 상태에서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에, 사업주들은 토지이용계획과 관련한 지방정부와의 협상에서 사업권 획득을 얻거나 증축을 허락받기 위해 공적인 책임을 다하는 편이다.

네덜란드 영세 상인들의 삶 : 유통업협회 통계로 본 현황

네덜란드유통업협회(Het Hoofdbedrijfschap Detailhandel)는 네덜란드 영세 상인의의 상황까지도 엿볼 수 있도록 하는 통계들을 발표하고 있다. 유통업이라 하면 한국적 맥락에서 흔히 대형백화점과 대형슈퍼마켓을 상상하기 쉽지만, 이 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동네 빵집, 생선가게, 꽃가게, 정육점, 장난감 가게, 심지어 일주일에 두 번 시청광장에 들어서는 노점상들까지 모두 협회 회원에 포함된다.
(참고 : http://www.hbd.nl/pages/14/Brancheafbakening/Detailhandel-totaal.html?branche_id=40&hoofdonderwerp_id=22)

유통업 고용주 측과 피고용자 측이 함께 유통업 발전을 위해 협력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만든 기구로서, 네덜란드 소상공인연합회(MKB-Nederland)의 전국상점위원회와 네덜란드 유통업위원회(Raad Nederlandse Detailhandel), 이동식노점상중앙협회(Centrale Vereniging voor Ambulante Handel), 노총(FNV Bondgenoten과 CNV Dienstenbond)에서 각각 파견된 사람들이 이사회를 구성한다. 유통업 관련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 유럽연합 차원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언을 하고 있으며, 사회경제협의회에서 유통업 관련 정책자문을 수행할 때 의견을 전달하는 주요 대화 상대이기도 하다.

2012년 말 네덜란드유통업협회(Het Hoofdbedrijfschap Detailhandel)가 2011년 통계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네덜란드 유통업의 영업이익은 평균 4퍼센트이다. 즉, 매출이 100이라면, 그 중 매출원가가 66이고, 판매비가 3, 인건비가 15, 임대료가 6, 기타가 7, 남는 영업이익이 4이다.(매출원가부터 영업이익까지는 반올림한 숫자로, 합산 시 101이 됨.) 특히 중소규모 유통업의 평균 영업이익은 8퍼센트로, 중대규모 업체 평균 2퍼센트보다 6퍼센트나 더 높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임대료 비중이 한국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특히 유통업 중에서도 슈퍼마켓은 임대료가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3~4퍼센트로, 평균보다 더 낮다. 그에 비해 한국은 임대료가 자영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통상 30~50퍼센트로 알려졌다.

네덜란드에는 신뢰할만한 매장임대료비교통계가 부족해서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부동산중개사이트(http://www.fundainbusiness.nl)에 의하면 델프트 도심의 경우 매장 1제곱미터당 월세가 대략 11~17유로(한화 약 1만6000원~2만5000원)로 나타난다. 참고로 부동산114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홍대 상가임대료가 1제곱미터당 약 3만5000원, 이대가 약 6만5000원, 영등포시장이 약 4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매장임대계약은 통상 5년을 기본 계약으로 하며, 그 후 5년은 의논 하에 또 연장할 수 있다. 임대료는 당초 계약한 가격에서 매년 소비자물가지수에 맞추어 인상한다.

▲ 네덜란드유통업협회 웹사이트

한편, 유통업 개인 고용자, 즉 매장 주인의 세전 연수입은 2008년 기준 평균 5만6100 유로(한화 약 8100만 원, 환율 1450기준)이다. 전체 유통업 사장 중 연수입 2만유로 미만인 사람은 19퍼센트에 달해, 네덜란드 전체 인구 중 연(年) 수입 2만유로 미만인 인구 17퍼센트보다 높은 편이다. 연 수입 2만~5만유로인 유통업 사장은 전체 유통업 고용자 중 40퍼센트, 5만~7만 유로는 19퍼센트, 7만유로 이상은 22퍼센트이다. 또 사장이 한 명일 경우보다, 부부가 같이 운영한다든지, 동업자가 있을 경우 수입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유통업자의 생존비율 역시 한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2000년에 새로 시작한 사업체 중 아직까지 34퍼센트가 살아남아 있다. 통상 첫해 생존율은 80퍼센트를 넘고, 2년째 생존율은 약 66퍼센트, 4년째 생존율은 약 50퍼센트이다. 한편 2010년 기준 유통업 고용주는 30대 이하가 11퍼센트, 31세부터 50세 이하가 54퍼센트, 51세 이상이 35퍼센트를 차지한다. 2011년에는 유통업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1만2800명에 달했고, 2008년에는 1만1800명이었다. 이는 총 신규창업자 수의 약 12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지난 몇 년간 총 신규창업은 2퍼센트 줄어든 반면, 그 중 한 카테고리인 유통업 창업은 8퍼센트 정도 늘어났다. 이는 미국 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네덜란드 경제가 공식 불황인 가운데, 자영업으로의 유입이 예전보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매장에서 일하는 점원의 최저임금은 만 23세 이상일 경우 주당 36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시간당 9.47유로(한화 약 1만4000원)이다. 주당 40시간씩 한 달 일하면 세전 월급이 한화로 최소 200만 원은 거뜬히 넘는다. 매장매니저의 경우 세전 초봉이 약 3만1200유로(한화 약 4 500만 원)이다. 총 유통업 종사자는 전체 인구에서 약 6퍼센트를 차지한다. 고용주는 그와 함께 일하는 그 가족구성원까지 포함해서 약 14만 명이며, 피고용인의 수는 약 68만 명이다.

한국은 자영업의 첫해 생존율이 4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업종에 따라 이마저도 더 낮다고 한다. 또한 자영업자 비중이 2010년 기준 전체 취업인구의 약 29퍼센트에 육박한다. 네덜란드유통업협회의 통계는, 요식업과 숙박업 등 한국에서 자영업 통계에 의례 포함시키는 업종을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비교는 안 될 것이다. 대신 이동식음식점을 비롯한 노점상들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동식노점상들의 평균 연 매출과 매출이익만 따로 정리한 통계를 살펴봐도 영세 상인들이 먹고 살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http://www.hbd.nl/pages/18/Branches/Ambulante-handel.html)

영세 상인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을…

평일 저녁 한적한 상점 거리, 가족들과 여유롭게 저녁식사를 나눈 후 아직도 햇살이 쨍쨍히 밝은 동네를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러 가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평범한 풍경조차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제도적 요소들이 없었다면, 그 풍경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가게들이 왜 문을 일찍 닫는지', '왜 일찍 닫아도 먹고 살만한지' 질문을 던져보면, 소위 말해 '깨알 같은' 정치적 노력들이 있었다.

영세 상인들이 저녁을 누리며 두 다리 뻗고 허리 펴고 살 수 있는 데에는 지금까지 한국에 흔히 알려진 복지국가 네덜란드의 여러 사회보장제도, 곧 사회보험 및 노령연금제도·실업수당·의료보험보조금·저소득층 주거임대보조금·자녀양육보조금 등도 물론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런 요소들뿐만 아니라 시간사용 및 공간사용에 대해서도 적재적소에서 경쟁의 범위와 정도를 구체적으로 조율하고자 노력해 온 궤적을 보게 된다. 그것은 굳이 시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치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목표를 시장이 복무할 수 있도록, 즉 공급과 수요의 조화 및 경쟁과 같은 시장의 역동성이 보다 큰 사회적 목표에 복무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시장을 '활용'하는 접근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유입하는 인구, 퇴직 후 노후보장이 마땅치 않아 퇴직금을 투자하면서까지 창업하는 인구 등 자영업의 비중이 취업인구의 약 30퍼센트에 달하고 있다. 자영업 내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대형유통업체가 동네 상권을 잠식하는 데 대한 서민들의 원성도 높으며, 영업이익을 압박하는 임대료의 부담도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 특히 영세 상인들이 먹고살기 어려운 점은, 바로 이렇게 되기까지 방치한 정부 탓, 정책 탓, 정치 탓이 크다. 업종 내 과당경쟁을 내버려두고, 동일 규모 내에서 보호받으며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탓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을 정치의 영역으로 돌린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네덜란드를 보라. 유통업영업시간규제법 개정을 위해 이미 조직되어 있던 각계 이해당사자들의 광범위한 자문을 구하였고,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간에 타협안을 도출해냈으며, 이는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 아래서 가능했다. 시·정부마다 지역소비자들의 쇼핑유형과 동선, 가구구성 및 가처분소득에 따른 수요를 수치화하여 분석한 후 '유통업계획정책'이란 것을 수립하였으며, 각종 공간정책과 토지이용계획을 통하여 적정한 수준의 상권을 보존하고 개발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큰 규모는 큰 규모끼리, 작은 규모는 작은 규모끼리의 경쟁을 유도해 업종 및 상권 침해를 예방하고, 지역적 특색이 살아 있고 매력 있는 상권을 조성하고자 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2006년 당시 심상정 국회의원이 일명 '중소영세상인 보호법'이라 불린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이 밖에도 경제 민주화를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게 가까이 끌어오기 위한 무수히 많은 노력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똑똑한 정부, 능동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한 발 앞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정부,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한국에서는 가게 주인들로부터 가게가 감옥 같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회사원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론 법정휴일에 쉴 수 있고 출근-퇴근이라는 게 있지만, 가게 주인이 되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심지어 밤을 새워서라도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공무원, 정규직 회사원들뿐만 아니라, 영세 상인들도 불안에 떨지 않고 퇴근이란 것을 해 볼 수 있는 삶, 곧 저녁이 있는 삶,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까? 그 답은 우리 각자가 앞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 가에, 그리고 그 선택한 답에 얼마나 충실한 방향으로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한국의 저녁 거리 풍경이 향후 십 년, 이십 년간 어떻게 변모해갈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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