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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박근혜, '부산서 유럽 가는 철도'는 이미 연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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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박근혜, '부산서 유럽 가는 철도'는 이미 연결돼"

[정세현의 정세토크] <71> "'이석기 사태'는 남북관계와 연관 없어"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말에 대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단 박 대통령의 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등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진전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정 전 장관은, 정부가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을 설득하고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 미국의 '의도'를 넘어 북한의 핵능력이 생각만큼 위협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정보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비핵화보다는 비확산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짚어볼 만하다고 그는 언급했다.

정세현 총장은 박 대통령이 세종시 등의 사안에서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모르면서 부산 발 시베리아 횡단철도 얘기를 국제 외교무대에서 그저 생색으로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설사 모르고 했더라도 일국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말에는 책임을 지시오'라는 강력한 우회적 촉구의 뜻도 전해졌다.

다음은 7일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편집자>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로, 내일이라도 갈 수 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를 언급했습니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이어 서해 군통신선 연결을 재개하기로 했고, 이산가족 상봉도 금강산에서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풀려 가는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점에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박 대통령의 말은, 남북관계를 비롯해 여러 배경을 다 알고 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훌륭한 얘기를 했다고 봅니다. 단 국민들이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정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으니 그 부분을 좀 설명하고 싶습니다.

푸틴 대통령을 만나서 한 얘기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다 실현돼야 가능해집니다. 또 남북관계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푸틴에게 그냥 허황한 얘기, 소녀 같은 꿈 얘기를 한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일국의 지도자이니, 그렇게 철도 타고 유럽 가려면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핵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고 볼 수밖에 없겠죠.

그러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대로 남북관계부터 개선을 하고, 한미 공조라는 이름 아래 북핵 문제 해결 등에 늑장부리지 말라 이겁니다. 누누이 얘기했듯이 신뢰 프로세스의 입구는 개성공단이고, 현 시점에서는 그 입구인 개성공단 정상화에서 시작해 금강산 관광 재개까지 이뤄져야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계속 협조적으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즘은 굉장히 유화적으로 나오고, 이번 평양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역도선수권대회에서 태극기 게양, 애국가 연주도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전례 없는 일이죠. 이런 것은 북한 나름대로 '남북관계 잘 해보자'는 사인을 보내는 겁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올 때 잡아채야 해요. 서양 속담에 '햇빛이 날 때 건초를 말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칙을 지키니 북한이 굽히고 나온다'고 착각하고 뒤로 빠져 있으면 이런 기회가 다시 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도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조속히 재개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박 대통령이 말한 '부산에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는 지금도 이미 있습니다. 임기 중에 이벤트성으로라도 해볼 수도 있습니다. 6.25때 끊어졌던 경의선이 김대중 정부 말, 노무현 정부 초에 이미 이어졌고, 2007년에는 남쪽 역인 문산에서 북쪽 개성공단 내 봉동역까지 기차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경의선을 계속 타고 황해도 평산까지 가면 평산에서 원산으로 가는 철길이 있습니다. 북한 '청년돌격대'가 1971년 건설해 강원도 이천(伊川)군을 거쳐 가는 '청년이천선'이 강원도 세포까지 이어지고, 세포에서는 일제 때 건설한 경원선을 타고 원산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시 평라선 철도를 타고 청진, 라진을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갈 수 있고, 그러면 모스크바까지 이어집니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 러시아 방문 때 철도로 모스크바를 갔지 않습니까. 그런 이벤트라도 박근혜 정부 임기 중에 못할 건 없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이쪽에서 타고 올라가 중간에 원산이든 어디든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철도 연결 사업은 러시아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국 영토 내를 지나는 철도의 통과료 수익 때문입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으로 일할 때, 남북이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각각 철도를 연결하는 데 합의하자 러시아의 철도 관련 연구소에서 바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북한이 경의선 연결에 합의해 놓고도 공사를 진척시키지 않고 있을 때, 우리가 자재와 장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북에서 바로 '그럼 동해안도 하자'고 나온 직후인데, 기껏 길 닦아 놓으니 러시아가 먼저 들고 나서더라고. (웃음)

러시아 쪽 얘기는, 부산에서 동해안 철도(동해남부선, 동해북부선)를 타고 바로 원산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경부선을 타고 서울까지 와서 경의선, 청년이천선을 갈아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낫다는 겁니다. 왜냐, 동해 철도는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할 뿐만 아니라 강릉에서 한 번 끊어져 있어서 강릉-금강산 구간을 잇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또 동해 철도는 산업철도가 아니라 관광철도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 반면 경부선은 한국의 공업지대와 물류 중심지를 다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 러시아 연구소에서는 '한국이 KTX를 놓는다고 하니, 기존의 경부선 철도는 산업용으로 쓰는 게 좋다'고까지 하더라고요.

러시아는 남북관계가 좋아질 때 두 가지 기대를 합니다. 하나는 이 철도, 즉 '철의 실크로드'가 자기네 영토를 통과할 때의 통과료, 다음은 사할린 지역의 천연가스 수출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입하더라도 우리 쪽에서는 북한 지역을 통과하는 가스관 매설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무슨 장난을 칠 줄 모르니까요. 그래서 무슨 동해안 해저로 뽑아야 한다, 서해를 가로질러 해저 가스관을 뚫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제일 경제적인 건 북한 지역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실현돼야겠죠.

북한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가만히 앉아서도 한 해에 약 15~16억 달러의 돈을 벌 수 있다"고 계산하면서 남북 철도 연결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김 주석이 사망하기 8일 전인, 1994년 6월 30일 한 말이니 유훈이나 다름없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마주앉아 철도 연결에 쉽게 합의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96년 펴낸 <김일성 저작집> 제44권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94년 6월 30일 벨기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나눈 담화에서 "(남북 철도 연결시)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한 해에 약 15억 달러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주석은 "신의주와 개성 사이에 철길(경의선)을 한 선 더 건설해 복선으로 만들고 남조선(한국)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다 주기만 해도 1년에 4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면서 "러시아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수출하는 물자를 두만강 역에서 넘겨받아 동해안에 있는 철길(동해선)로 날라다 주면 거기에서도 한 해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김 주석은 같은 해 7월 8일, 김영삼 당시 한국 대통령과의 남북 최초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돌연 병사했다. <편집자>)

"서해 통신선 복구에서 나아가 동해 쪽 통신선 복원까지"

정세현 : 그렇게 해서 김대중 정부 때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해 놨는데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된 것 아닙니까? 박 대통령이 그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개성공단도 다시 열고 금강산 관광 문제도 해결해 가면서 남북이 기왕에 연결하기로 한 철도-도로도 재개통시키고 해야 '부산에서 기차 타고 유럽 간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외국 국가원수를 만나 얘기하면서 여러 사전적 준비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말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박 대통령이 그 말에 대해 책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세종시 계획을 원안대로 추진시킨 일을 계기로 '약속은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거기서부터 대통령 입지를 다진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려면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등을 거쳐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야겠죠.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성과만 쏙 따먹고 금강산 관광 재개는 나 몰라라 하면 이산가족 상봉 사업도 단번으로 끝납니다. 이명박 정부 때 실제로 그래서 딱 한 번 하고 끝나지 않았나요.

프레시안 : 이번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이 외금강호텔과 금강산호텔에는 관광객 예약이 차 있다면서 해금강 선상호텔과 현대아산 숙소를 사용하자고 하고 있는데, 어떤 의도라고 보시는지요?

정세현 : 해금강호텔에서 숙식하자고 몽니를 부리는 건 이산가족 면회소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봅니다. '불편하면 이산가족 면회소 쓰자' 이거에요. 그거 우리 돈으로 지은 것이고, 6500평이나 되게 잘 지어 놨습니다. 외금강호텔, 금강산호텔을 못 쓰게 하면서 차제에 불편을 줘서 면회소를 쓰자는 말이 우리한테서 나오게 하고, 그러면 (면회소 등 정부재산 몰수 등과 얽혀 있는) 금강산 관광 문제도 얘기해보자는 거겠죠.

프레시안 : 지난 6개월 간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을 실제로 해온 것을 보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세현 : <프레시안>을 보니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도 '평균은 된다'고 하시던데(☞남재희 인터뷰 바로보기), 내가 저번 '정세토크'에서 '햇볕정책 0.9는 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말이 좀 있더라고요. 너무 후하다, 많아야 0.8, 0.7 정도인데 왜 그렇게 후하게 주냐고 말이야. (웃음)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3~4월 한반도 군사상황 때문에 신뢰 프로세스를 시작하지 못했고, 또 남북 간 회담 대표의 격을 따지면서 튕기고 시간 끌고 하긴 했지만,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8.15 이전에 이뤄낸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정부가 홍보논리 차원에서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에 북한이 드디어 항복했다'는 식으로 하고 싶겠지만, 정책논리 차원에서는 정세를 제대로 보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양보를 했기 때문에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홍보와 정책 논리가 부딪히는 건 원래 나쁜 게 아니에요. 홍보는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업적을 과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수립 과정에서는 현실 정세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8.14 합의는 정부가 홍보논리와는 별개로 정책적으로 합리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북한 역시 한국 정부가 구체적 언질은 안 줘도 나름 잘 해보려는 게 읽혀졌기 때문에 군 통신선 복구에 바로 동의해 오지 않았겠습니까?

이번에 군 통신선 북구 문제가 실제로 어떻게 타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금강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 쪽에서 뭔가 희망적인 사인을 줬기 때문에 북한도 동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군 통신선은 원래 개성공단 때문에 이은 게 아니고, 철도-도로 연결사업 때문에 뚫었던 겁니다. 2002년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 철도 착공식 이후 작업을 하려니 지뢰 제거작업을 먼저 해야 하겠는데, 비무장지대(DMZ)의 철책 통문을 열고 들어가서 지뢰 제거를 하려니 서로 연락할 필요가 생긴 거죠.

그래서 18일 착공식을 앞두고 같은 달 14, 16, 17일에 군사실무회담을 열어서 '24일부터 서해 군 통신선 3개 선을 연결해 철책 안에 출입하는 인원 사항을 통보하자'고 합의합니다. 동해 쪽에는 2003년 2월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 출입 인원이 늘어나니 편의를 위해 같은 해 12월부터 3개 선을 놓습니다. 철도-도로 연결 작업을 위해 만든 군 통신선이 개성공단 출입 현황과 금강산 관광객 이동에도 이용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3가지는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 3가지 사업을 군사적으로 보장했던 것이 군 통신선이니까, 경의선 쪽 통신선 복원으로 그치지 말고 동해선 쪽도 복원할 수 있는 모멘텀을 정부가 만들어야 합니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상시화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화하게 되면, 북쪽 사정으로는 쉽지는 않겠지만 잘하면 1년에 4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대단한 거죠.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총 16~17회 정도 상봉이 있었습니다. 임기 중에 이산가족 상봉을 16회나 한다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두고두고 대단한 업적이 될 겁니다.

"미국, 왜 6자회담 사보타주하나…북핵 심각지 않아서?"

프레시안 : 철도를 타고 유럽에 간다는 것, 박 대통령 혼자 수행원들과 함께 가는 건 남북관계만 호전돼도 되겠지만 대규모 물류가 오가는 것은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도 풀려야 하는 등 할 게 많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렇게 되려면 북핵 문제가 풀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합니다. 현재 중국이 9.19 공동성명 8주년을 맞아 '9월 18일 베이징(北京)에서 북핵 문제 관련국의 정부 당국자와 학자들이 함께 참석하는 1.5트랙 회의를 열자'고 하고 있는데, 북중러 3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몸이 달아 있는 걸로 봅니다. 러시아까지도 6자회담 재개해야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미국이 느긋하게 뒤로 빠져 있고 한국은 무대책으로 미국 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북핵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하고, 그러면 북중러 3국이 성의를 보이고 있는 1.5트랙 대화에 나가야 할 게 아닙니까. 5~6일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한국에 다녀갔고, 곧 글린 데이비스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도 9일 한국에 와 11일 중국으로 갑니다. 데이비스에게 '1.5트랙 회의에 나가자'고 강하게 말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이게 성사되면 북한이 중국에게도 말하지 않는 속내,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에게만 슬쩍 보여준 핵문제에 대한 진의가 (미국에) 전달될 것입니다.

(조엘 위트는 8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 외교 당국자와 접촉한 이후, 8월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종전까지는 경제개발과 핵무기 개발의 병진노선을 추구해왔으나 최근 변화가 생겼다. 김정은 정권은 진지하게 핵 포기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라며 "이는 김정은 1위원장이 주재한 북한 최고기구 국방위원회의 권위 있는 결정사항으로, 지난 6월 16일 국방위 담화로 공식 발표됐다"고 말했다. <편집자>)

6자회담이 열리지 않으면 북핵문제 해결 수순을 밟지 못하게 되고, 그 틈새 시간에 북은 핵능력을 더 강화해서 한국은 인질 신세가 돼 버립니다. 이 정부가 그걸 알기는 알고 '북한의 선(先)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느긋하게 미국의 입장을 복창하는지 모르겠어요.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지,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번 '정세토크'에서는 미국의 본심이 뭐냐, 한반도 비핵화보다 북핵 비확산이 미국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정세토크 지난회 바로보기),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본심보다도 북핵 상황의 실체적 진실이 의심스럽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느긋하게 북핵 문제 해결을 사보타주 해도 될 만큼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이죠. 즉 미국이 우리에게는 실체적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위험을 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 핵, 별 것 없다'는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그런, 그러니까 솔직한 얘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김관진 국방장관이 4월에 국회에 나와 "(북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를 달성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폭발은 시켰지만 무기로서는 가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회담을 하지 않고, 무기로서 가치가 커질 때 협상하면 한국과 미국이 줘야 할 반대급부는 더 커집니다.

솔직히 말해 미국은 자기들이 가진 정보를 한국에 다 털어놓지는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가진 정보를 국내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하듯이, 미국도 북한 관련 군사정보를 다 건네주지 않아요. 미국이 동맹이다 우방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일본과 우리에게 파는 무기 급도 다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정보도 급이 다르겠죠.

또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면 과거에는 군사력, 경제력이 가장 큰 수단이었지만 최근에는 더 상위에 있는 게 정보력인 것 같습니다. 정보를 가지고 군사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죠. 미국이 한국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여기까지만 알려주면 되겠다' 싶은 부분만 알려주는 겁니다. 국제 정보질서가 군사력 못지않게 위력을 발휘하는 이 상황에서, 북핵의 진실은 뭐냐는 것이죠. 우리는 조바심이 나 죽겠는데 왜 미국은 저렇게 느긋하냐는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한국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질 겁니다. 그 때 가서 '과거에 무슨 정부가 뭘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이 됐네' 하는 얘기 해 봐야 소용없고, 그 때의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거예요.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라고 순서를 거꾸로 잡았고, 박근혜 정부는 순서는 제대로 잡은 것 같은데 아직 말만 할 뿐 행동으로 안 옮기니 불안합니다. 미국한테 물어보고 움직일 게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위해서라도 6자회담에 나가도록 대미 외교를 해야 하고, 미국이 잘 안 따라오면 북핵의 진실이 뭐냐를 의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마침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는데, 이럴 때 한국도 미국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달라고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조엘 위트가 한 얘기를 보면 확실히 북한은 6자회담에 몸이 달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진 노선을 포기했다고 할 정도면….

정세현 : 위트는 국무부에 오래 있으면서 북한이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의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일 겁니다. 북한이 말로는 거창하게 공격적인 언사를 하지만 속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는 거죠. 북한으로서는 올해 3~4월에 강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는 데 필요한 경제 개선에 불리한 국제 여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화 국면이 조성돼야 하는데, 결국 이를 위해 6자회담 재개를 절실히 바라는 겁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4월 중국을 다녀간 이후에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가고, 김계관 외무성 1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잇따라 가고, 이런 움직임은 뭐냐? '6자회담 하고 싶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 미국 쪽에서는 회담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북한의 선행동 선조치'니 '2.29 플러스 알파 정도의 성의를 행동으로 보이라'느니 하고 있어요. 심지어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헌법에 명기했으니 이젠 헌법을 고치기 전에는 절대 비핵화 협상을 안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헌법대로 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웃음) 그러면 우리 헌법 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으니 이미 통일이 돼 있어야 하게요? 또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다 지켜집니까? 우리도 헌법 안 지키는 구석이 많잖아요. 그런데 북한 헌법 전문에 몇 글자 들어간 것 가지고 '북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회담을 지연시키고 대북 압박정책을 쓰자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현명치 못한 주장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의 국익에 대한 자해행위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이 안 되면 누가 제일 손해인데요?

북한은 지난 6월 16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를 통해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 "우리의 핵 보유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자위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전략적 선택이란 얘기가 뭡니까? 포기할 수 있다는 거죠. 위트 같은 사람은 이 말의 의미와 의도를 따져 보고 역시 협상으로 가야 한다는 감을 가졌을 겁니다. 이런 해석 했다고 위트 보고도 '종북'이라고 할 건가? 원…. (웃음) 또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말을 한 것 역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포석 차원에서 한 게 아닌가 합니다.

결국 이번에 1.5트랙 대화가 베이징에서 열린다면 데이비스가 오든, 그 밑의 실무자가 오든 북한이 미국에게 직접 '선물'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핵 포기는) 우리의 진심이다' 정도의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1.5트랙 대화와 관련해 아무 입장을 안 내고 있는데, 박 대통령의 '철도 타고 유럽 가는 꿈' 발언과 짝이 맞으려면 당연히 1.5트랙에 가야 하고, 여기서 우리가 북한과 얘기하는 것보다 북한이 미국에게 속내를 얘기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역시 9월 18일 베이징에 데이비스 대표가 오는 게 제일 좋겠죠. 그걸 우리가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로 조성된 공안 정국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김관진 국방장관 등 군 출신 보수파가 이 정부 안보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정세현 : 북한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과 남북관계 개선은 얼마든지 별개로 병립할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조차도 대북 적대의식을 약화시켜 안보정국 유지에 도움이 안 된다며 싫어하는 보수 우익세력은 이석기 의원 사태도 더 악화시켜서 그것 때문에 남북관계가 안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RO'라는 것이 북한하고 연계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건 1960년대 중반 남북 체제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 북한이 내걸었던 '3대 혁명역량 강화노선'에서 말하던 '남조선 내부의 혁명역량 강화'와 관련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진영마저 붕괴된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대남 전략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남조선 내 혁명역량 강화'니 뭐니 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정세도 북한 도와줄 나라가 없을 정도로 크게 바뀌었고 남북 간 체제경쟁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제 기억으로는 적어도 90년대 이후에는 '3대 혁명역량 강화'개념 자체가 거론된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RO라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것으로 진보진영 전체에 종북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모두 시대착오적입니다. 하여튼 '이석기 사태'는 한국 국내의 의제이지 남북관계와는 직접 연관이 없다고 봅니다. 다만 북쪽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보도를 내놓은 걸 보니, 오해 받기 딱 좋은 말투를 쓰던데 그런 것도 생각을 못 하나 싶습니다. 한국 국내 문제가 자기들한테 왜 도발이에요?

원래 북쪽이 강한 표현을 많이 쓰지만, 이런 일을 둘러싸고 강하게 반발하거나 '도발'이니 '모독'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 남쪽에서 이번 사건을 북과 연계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돕는 꼴이 됩니다. 차라리 '우리하고는 무관하다' 한 마디만 점잖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거나 할 것이지…. 그렇게 계산이 없을까요? 그리고 남북관계가 잘 돼나갈 수도 있는데 이번 것 때문에 잘 안 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북한이 실수하는 겁니다. 그런 얘기를 뭐하러 합니까? 이건 우리 국내의 법질서 문제입니다. 북한이 이러쿵저러쿵 나설 일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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