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의 자폭테러는 일상적인 수준이다. 9월28일엔 여성 자폭테러리스트까지 이라크에 등장했다. 바그다드에서 서북쪽으로 420km 떨어진 탈아파르 마을의 이라크군 신병모집소 입구에서 한 여성이 몸에 두른 폭탄을 터뜨려, 적어도 7명이 죽고 40명쯤 다쳤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8월부터 지금까지 200건쯤의 자살폭탄테러가 이라크에서 벌어졌다. 이스라엘 병사들처럼, 이라크 주둔 13만8000명의 미군은 "언제 자폭테러에 내가 희생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에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이라크 현지취재 때 만났던 바그다드대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역사학)는 "후세인 시절엔 자폭 테러가 없었다. 그런 일에 관한 한, 이라크는 무풍지대였다"고 한탄했다. 사브티 교수는 이라크의 혼란과 자살폭탄테러 증가의 책임을 이라크 석유를 노린 미 부시행정부의 일방적이고도 패권주의적인 이라크 침공 탓으로 돌렸다.
이라크에서 최초의 여성 자폭테러사건이 터지던 같은 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자폭테러가 벌어져 적어도 9명의 아프간 정부군이 죽고 20명쯤이 다쳤다. 지난 9월18일 30년 만에 총선을 치렀지만, 아프간도 자폭테러의 안전지대는 결코 아닌 것이다.
이라크, 아프간뿐 아니다. 자살폭탄 테러는 우리 시대의 한 특징적인 현상이다. 2001년 미국을 강타했던 9.11 동시다발 테러를 비롯, 팔레스타인, 체첸, 스리랑카, 파키스탄, 모로코, 인도네시아(발리) 등 지구촌 곳곳에서 자폭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친미 장기독재정권에 맞선 테러가 오래 전부터 벌어져 왔으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폭테러란 없었다. 그렇지만 지난해 10월, 올해 7월, 이렇게 9개월 사이를 두고 일어난 두 건의 자폭테러로 적어도 88명이 희생됐다.
***자폭테러범은 고학력의 중산층**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자살폭탄 테러공격을 가리켜 '못 배우고 가난한 이슬람 청년이 그의 좌절감을 극단적으로 나타내는 행위'라고 흔히 여긴다. 그러나 이는 서구사회에 잘못 알려진 부분이다. 미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 교수(국제정치학)는 1980년대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분쟁지역 곳곳에서 벌어진 자살폭탄공격 사례들을 조사 분석해 온 끝에, 최근 『승리를 위한 죽음: 자살테러의 전략적 논리』(Dying to Win: The Strategic Logic of Suicide Terrorism)라는 335쪽 분량의 책을 펴냈다.
1980년부터 2003년 사이에 315건의 자폭테러 사건을 일으킨 462명이 어떤 배경을 지닌 인물들인지를 분석하면서, 페이프 교수는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자살폭탄테러를 벌이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절망적인 범죄자나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종교적 광신도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교도소를 드나드는 전과자들도 아니다. 비교적 잘 교육 받은 중산층 출신들이 많다. 자폭테러범들은 학력이 비교적 높은 정치적 행동분자들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폭테러를 지원했고, 그 전까지는 폭력 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자폭테러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페이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세계 자폭테러의 절반 이상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는 집단에 의해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살폭탄 테러가 빚어진 곳은 이슬람 세계가 아닌 스리랑카다. 그곳 반군 타밀호랑이해방전선(LTTE)은 종교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먼, 세속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집단이다. 이들은 지난 25년 동안 76건의 자폭공격을 펼쳤다.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인 하마스(54건), 이슬람 지하드(27건)의 자살폭탄테러 건수보다 많다.
페이프 교수는 미 부시행정부의 대(對)테러정책이 잘못돼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은 테러의 원인을 빈곤과 무지, 종교적 편견 등으로 꼽아 왔다. 그래서 보안을 강화하고 군사적 강압 수단으로 테러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 페이프 교수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폭테러는 종교적 맹신에서가 아니라 세속적인 전략목표, 다시 말해서 테러범이 조국이라 여기는 영토로부터 외부의 적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군사력으로 이슬람 사회를 변화시키고 자살테러를 막으려다간, 오히려 자폭테러 건수를 늘릴 뿐이다. 테러의 정치적 동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자폭테러 지원자들은 길게 줄을 설 것이다."
***자살폭탄테러 벌이는 여성 전사들**
자살폭탄테러를 벌이는 사람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다. 페이프 교수가 1980년부터 2003년에 사이에 315건의 자살폭탄테러를 벌인 462명 가운데 나이가 확인된 278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23세 사이가 55%로 다수를 차지하고, 24세 이상이 32%, 15~18세가 13%다. 그렇다면, 여성 자살폭탄 테러리스트의 비율은 어느 정도나 될까.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성의 정치사회적 역할이 제한적인 탓에 여성 자살폭탄테러는 드물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원 출신으로 자살폭탄테러를 벌인 여성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이 자살폭탄을 터뜨리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여럿 기록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6건, 레바논 6건, 체첸에서는 14건의 자살폭탄테러가 여성의 몫이었다. 이를 비율로 보면,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자살폭탄테러 사건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5%, 레바논은 16%, 체첸에서는 무려 60%에 이른다. 2002년 모스크바 극장의 인질사건에서 보듯, 체첸 반군에서는 여성의 비중이 컸다. 2003년 러시아 군을 태운 버스를 자살폭탄 공격해 18명을 죽인 것도 여성이었다.
이슬람권에서 일어난 자살폭탄테러에서의 여성 참여 비율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이 가장 높다. 10명의 여성이 참여해 71%를 기록했다. PKK는 터키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목표로 1980년대부터 터키정부를 괴롭혀왔다. 마르크스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스리랑카의 '타밀 호랑이 해방전선'(LTTE)의 경우, 자살폭탄테러 공격자의 30-40%가 여성이었다. 1991년 인도수상 라지브 간디도 LTTE가 보낸 여성 자살폭탄테러범 손에 죽음을 맞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살폭탄공격에 지원하는 여성 테러리스트들은 나름대로 그럴만한 투쟁동기를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침략군 손에 죽었거나, 당사자가 피해를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많은 경우 그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타밀 호랑이 해방전선(LTTE) 요원으로서, 지난 1991년 폭탄 벨트를 몸에 두른 채 인도 수상 라지브 간디에게 다가가 현장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던 여인도 스리랑카에 파견된 인도군에게 가족들이 죽임을 당할 때 성폭력에 희생됐었다. PKK의 터키, 팔레스타인, 그리고 체첸 지역에서의 여성 자폭테러리스트들도 이와 거의 비슷한 슬픈 체험의 소유자들로 알려졌다.
이슬람 종교에서는 자살, 그리고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하는 행위를 모두 죄악으로 여긴다. 코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슬람교도는 인티하르(intihar, 개인적 이유에서 비롯된 자살)를 금지한다. 그렇지만 이스티샤드(istishad, 알라의 이름 아래 이뤄지는 자기희생적 죽음)는 허용된다. 자살폭탄공격은 이슬람 공동선을 위한 죽음이므로, 그 성전을 실천하는 사람은 순교자로 추앙 받는다. 이슬람 젊은이들은 전투적인 회교 성직자들이 발표하는 반미투쟁의 파트와(fatwa, 율법)에 따라 기꺼이 폭탄을 지고 들어간다.
***저비용-고효과의 전술**
자폭테러는 사전에 경고가 없다.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죽고 다친 뒤에야 알 뿐, 해결책도 마땅치 않다. 국가 지도자들이나 대(對)테러 관련부서 전문가들은 "일단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뒤이은 테러가 또 일어나 다른 요구를 해 온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자폭테러가 끊이지 않는 데엔 "자폭테러가 성공했다"는 역사적 사례들이 깔려 있다.
1983년 레바논 미 해병대 막사를 겨냥한 자폭테러로 미해병 241명이 숨진 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해병대 철수를 결정했다. 1985년 이스라엘 군의 남부 레바논 부분철수와 2000년의 완전철수, 1994년과 2001년 스리랑카 정부와 반군 타밀호랑이해방전선(LTTE) 간의 휴전-평화협상 결정 등도 잇단 자폭테러에 큰 영향을 받았다.
모든 자폭테러가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적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받쳐줘야 한다.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적으로부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기 일쑤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폭테러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 국제정책연구소(IPI)의 대테러연구팀장인 보아즈 가노가 자살테러에 관해 쓴 한 논문에 따르면, 자살테러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예컨대 △자살공격은 '약자의 무기'임에도 많은 사상자를 낳고 큰 피해를 입힌다. △자살공격은 뉴스 가치가 높아 언론에 크게 보도된다. △자살공격이 매우 초보적인 단수공격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목표와 시간장소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있다. 시한폭탄보다 더 정교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테러공격은 도피전략을 마련하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자살공격은 도피계획을 마련한 필요가 없다. △자살공격자가 잡히지 않고 죽으니, 다른 공범자들이 위험에 빠질 염려가 없다는 등등.
미국의 테러연구자 브루스 호프만(미 RAND 연구소장)은 '자살테러의 논리'라는 글에서 150달러 미만으로 한 건의 자살폭탄테러를 치러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미 알려진 바처럼, 9.11 테러는 19명이 행동대원으로 나섰다. 9.11 사건의 배후조종자이자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서 알-카에다 그룹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이집트의사 출신)는 9.11 뒤 그가 남긴 한 문건에서 "순교작전(자살폭탄공격)은 무자헤딘(이슬람전사)의 사상자를 최소로 줄이면서도 적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는 가장 성공적인 전술"이라 규정했다. 이른바 비용 대비 효과, 또는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자폭테러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이다.
***좌절과 분노, 자폭테러의 키워드**
『테러리즘의 심리학: 이론적 이해와 전망』(2002년판)을 펴낸 크리스 스타우트, 클라크 맥콜리 같은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폭테러의 원인을 분노와 좌절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좌절-분노 이론(frustration-anger theory)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분노는 고통을 느낄 때 일어나는 반응이며, 특히 좌절의 고통이 클 때 분노가 커진다.
좌절-분노 이론을 뒷받침하는 보기로 꼽히는 것이 19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이다. 1960년대 미 남부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던 흑인 젊은이들 상당수가 민권운동에 뛰어든 까닭은 미국사회가 흑인을 차별대우하는 데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폭테러도 억압에서 비롯된 좌절감과 분노를 폭력적인 수단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에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내면세계를 돌아본다면, 21세기 자폭 테러리스트들의 투쟁 동기는 쉽게 이해된다.
필자 연락처 kimsphoto@yahoo.com
(사진 설명)
1. 이라크의 자살폭탄테러는 이미 일상적인 수준이 됐다(@AFP)
2. 책 사진, 『승리를 위한 죽음: 자살테러의 전략적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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