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취임 1주년이 되는 6월 30일(현지시간)에만 수도 카이로과 최대 경제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전국 곳곳에 무려 1400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집트 인구(8400만명) 6분의 1에 해당하는 '이집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시위의 상징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만 50만 명이 모였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로 이날만 3명이 사망하는 등 며칠 사이에 사망자만 최소 7명이 발생하고 600여 명이 다쳤다.
반정부 세력 대 친정부 세력의 충돌로 유혈사태까지 초래된 것이 보여주듯, 이번 사태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붕괴 이후 양분된 이집트 사회가 자칫하면 내전으로 빨려들어갈 폭발성마저 갖고 있다.
▲ 이집트 대통령궁 벽에 반정부 시위대가 그려놓은 그림. 무능한 종교독재로 국민을 분열시킨 무르시 대통령에게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AP=연합 |
반정부 시위의 성격은 시위 참가자들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만 고완(38)이라는 간호사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이집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의 염탐꾼들보다 훨씬 참아낼 만 하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군사정권의 철권 정치를 펴온 호스니 무바라크 축출에 앞장선 자유진영과 좌파진영이 주축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그들은 군사독재를 끝냈더니 그 자리를 '종교독재'가 차지했다는 점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실제로 보수성향의 이슬람 단체 무슬림형제단이 배후에 있는 무르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무라바크 독재 타도를 이끌었던 자유진영은 찬밥신세가 됐다.
이집트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분석가들과 정치논객들은 "반정부 시위는 무르시 대통령의 서투르고 극단적인 분열의 리더십에 대한 깊은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르시, 배후 종교세력에 휘둘리는 프락치"
무바라크 독재 정권 이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인 무르시는 당연히 통합의 리더십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를 권좌에 올려준 무슬림형제단의 조정을 받으면서 '종교 독재'의 프락치처럼 행동해왔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재 정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은 항상 혼란스러웠다"면서 "하지만 무르시의 국정운영은 대실패"라고 혹평했다. 그 이유로 신문은 "치안이 붕괴된 상황에서 질서 회복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 대신, 무슬림형제단은 권력을 독점하고 사법기관마저 장악해버렸다"고 지적했다.
군부는 호시탐탐 권력 복귀 노려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종교독재'로 국민 절반 이상의 반감을 초래한 상황에서 군부는 호시탐탐 권력 복귀를 노리고 있다. 무르시는 취임 후 무바라크의 측근이 군부실세들을 전격 퇴진시키는 노련함을 보였으나, <파이낸셜타임스>는 "군부에 대한 여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반정부 시위대가 시위의 중심지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벌일 때 군부는 세트기를 4대나 출동시켰고, 시위대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이날 군부가 헬리콥터 4대를 광장 상공에 띄웠을 때 시위대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이라면 환호를 보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군부가 잘못한 일이 많은데, 많은 이집트인들은 무슬림형제단과 이들과 연합한 강경 이슬람진영의 지배보다는 차라리 군부 통치가 났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집트 국방장관 압델 파타 알시시는 무르시를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가 폭력적인 대응으로 위협하자 "국가가 내전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개입할 수도 있다"고 말해 반정부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무르시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군부가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일각에서는 이집트의 정국혼란이 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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