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위 대변인은 "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를 포함해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 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회담 장소와 시일은 미국이 편리한 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방위 대변인은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미국 본토를 포함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 데 진실로 관심이 있다면 전제조건을 내세운 대화와 접촉에 대하여 말하지 말아야한다"며 자신들이 제의한 회담에 조건을 붙이지 말 것을 압박했다. 장소와 시간을 미국 측에 일임한 것과 함께 회담 성사에 대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대변인은 "미국은 진정으로 '핵 없는 세계'를 바라고 긴장 완화를 원한다면 차례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의 대범한 용단과 선의에 적극 호응해 나와야 할 것"이라며 "모든 사태발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켜 온 미국의 책임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우리 수령님(김일성)과 우리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며 우리 당과 국가와 천만 군민이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밝힌 부분이다. 비핵화를 '김정일의 유훈'이라고 표현한 것이 주목된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임은 지난 십수 년 동안 공개적으로 밝혀 왔으나, 김정일의 유훈은 오히려 "핵,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히 보유"하라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핵 보유와 경제 건설을 동시 달성하겠다는 이른바 '병행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며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의 당당한 지위는 그 누가 인정해 주든 말든 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기존의 '핵 보유'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결코 '북핵폐기'만을 위한 비핵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핵화를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고 밝히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배치한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등 자신들이 위협으로 느끼는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앞서 북한은 자신들이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섰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비핵화 회담은 없으며 핵 군축 회담만이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정부는 신중한 반응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정부가 알아서 대응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 대응을 지켜보는 것이지 우리가 어떻게 하겠나"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정부 내외에선 앞서 미 국무부가 '북미대화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힌 점 등을 근거로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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