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대변인은 13일 수석비서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대통령 주재 회의가 끝나고 실장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허 실장은 '비서실 직원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낭독했다"면서 이후 허 실장이 "민정수석실은 방미단과 함께 전 방미 일정을 '리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기자들이 이에 대해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조사인가?', '윤창중 사태에 대한 재조사인가?' 등의 질문을 쏟아냈지만 김 대변인은 "전 과정을 리뷰한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같은 '전면 재조사'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발언조차 엇갈리는 등 혼란이 이는 상황에서 이제까지의 조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남기 수석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오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인사권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아직 말씀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수석의 사의가 받아들여질지, 이 수석 외에 다른 징계성 인사가 뒤따를지에 대해서는 "인사와 관련해 아무런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박 대통령은 회의 시작 전 사과 발언을 한 이후로는 윤 전 대변인과 관련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윤창중, 격리할 수밖에 없었다"…청와대, 귀국 종용 시인?
미국 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드러날 성추행 의혹은 전날 윤 전 대변인이 청와대 공직기강팀의 조사에서는 "엉덩이를 만졌다", "(인턴직원이 호텔방에 올라왔을 때) 팬티를 입지 않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알려짐에 따라 추가 크게 기울고 있다. 규명되지 않은 의혹은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인가'로 좁혀진다.
(☞관련기사 보기 : "윤창중, 靑 조사에선 '엉덩이 만졌다' 시인")
이날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대통령의 일정이 줄줄이 남았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짓(성추행)을 한 사람을 대통령과 같이 데리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윤 전 대변인을 '본진'에서 '격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이 청와대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시사하는 증언이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가려질까 봐 윤 전 대변인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청와대의 판단에 따라 귀국이 이뤄졌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 관계자가 "그(윤 전 대변인)를 LA로 데리고 갈 수도, 워싱턴에 홀로 남아 있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본진에서 격리가 곧 귀국 조처였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증언이 나오면서 전날 곽상도 민정수석이 "귀국을 지시했다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 법에 의해 범죄가 안 되며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말한 것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곽 수석은 "물의를 빚은 분이 대통령 옆에 있는 게 적절한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었다.
허 실장의 사과문 낭독 이후 곽 수석의 발언이 있을 당시에는 귀국 종용 의혹에 대한 '물타기' 쯤으로 비쳤으나, 청와대가 실제로 윤 전 대변인 귀국의 배후에 있다면 곽 수석의 발언은 그와 같은 '귀국 지시' 조치의 정당성을 강변한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윤창중 전 창와대 대변인(자료사진). ⓒ뉴시스 |
"윤창중, 이남기 만나기 전부터 '여권 어딨냐?'…평소 수석 말 잘 안들어"
반면 귀국이 윤 전 대변인 본인의 판단이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도 있다. 이날자 <한국일보>는 방미에 동행했던 한 청와대 관계자가 "8일 오전 8시쯤 현지 경찰이 숙소에 왔었다는 소식을 들은 윤 전 대변인이 당황한 듯 '비행기가 몇 시에 있느냐', '내 여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증언한 내용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경제인 조찬에 참석한 윤 전 대변인이 수시로 실무자들에게 전화해 상황을 체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은 경제인 조찬이 끝난 후 이남기 수석으로부터 '귀국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이 수석을 만나기 전부터 여권과 비행기편을 챙겼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윤 전 대변인이 평소에 이 수석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던 것에 비춰 보면 귀국 종용 역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청와대 내부의 전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청와대 관계자가 "평소 윤 전 대변인은 이 수석을 직속상관으로도 인정한 것 같지 않다"며 "윤 전 대변인의 해명은 평소 이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의 관계로 봤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기자 출신인 윤 전 대변인이 PD 출신인 이 수석과 마찰을 빚어 왔다는 얘기로,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지시에 대해 순순히 따랐을 것 같지는 않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정황상의 추측일 뿐이며, 청와대 홍보수석실 내부의 지휘체계가 엉망진창이었다는 문제를 오히려 부각시키는 면마저 있다.
<문화일보>"윤창중, 피해 여성 만나 사건 무마 시도"
'본건'인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윤 전 대변인의 혐의를 더욱 짙게 하는 현지발(發) 소식들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 13일 <문화일보>는 청와대 및 워싱턴 D.C. 현지 관계자들을 인용해 윤 전 대변인이 지난 8일 오전 피해 여성에게 사과하러 갔으나, 이 여성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현지 경찰이 출동한다는 소식에 자리를 피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건 무마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성추행은 없었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정황이다.
신문에 따르면 한 관계자는 "조찬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6시 50분쯤 (숙소인) 페어팩스 호텔을 떠났던 윤 전 대변인이 약 30∼40분 뒤에 다시 돌아와 A씨(인턴직원)와의 만남을 시도했다"며 "(이 직원은) 문을 걸어잠근 채 윤 전 대변인을 만나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이 도중에 페어팩스 호텔로 돌아온 이유는 '성추행 당했다는 여성이 울고 있으니 직접 와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같은날 <동아일보>는 워싱턴으로 오기 전 뉴욕에서도 윤 전 대변인이 인턴 여직원에게 '술을 한 잔 하자'고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인턴 교육 및 지휘를 맡은 뉴욕총영사관 소속 전성오 공보관이 "담당 인턴이 (방에서) 나가려는 순간 윤 전 대변인이 '그냥 가려고?'라고 했다는데 과연 고위 공직자가 이렇게 처신해도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소주와 과자를 인턴직원에게 얻어 회의실에서 마신 것이 전부이며 방으로 직원을 부른 적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전 공보관은 해당 인턴직원이 자신과의 대화에서 "(윤 전 대변인이) 방으로 불러서 올라갔는데 술을 시켜달라고 해서 시켜줬는데 괜찮으냐고 묻더라"면서 "직접 룸서비스에 전화 주문해도 되는데 늦은 밤에 자신을 불러 시킨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인상이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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