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전범국가'라는 비판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집권 자민당의 마루야마 카즈야(丸山和也) 의원이 지난 95년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村山) 담화'에 대해 "애매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라고 하는 것은 안일주의이며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지적하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다.
▲23일 일본 여야 의원 168명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신사참배가 강행됐다. ⓒ로이터=뉴시스 |
"침략에 대한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아베 총리는 "마루야마 의원이 말하듯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동조하면서 "침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앞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을 것"라는 입장에서 노골적인 표현으로 더 나간 것이다.
일본에서 총리가 침략에 대해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며,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은 여야 의원 168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를 한 날에 나왔다는 점에서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은 중대할 뿐 아니라, 일본 내각이 '우경화' 노선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외교부 '강한 유감', 장관 방일 취소
이미 아베 총리는 전범들의 사당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고, 내각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고위급 각료 3명이 신사 참배를 강행하면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6일로 예정됐던 방일계획을 전격 취소하게 만들었다.
지난 2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중앙 정부 당국자를 처음 파견하고, 이달 초 외교청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도 '우경화' 노선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도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과 함께 망언 대열에 올랐다. 이날 예산위원회에서 그는 일본이 식민 지배를 통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시혜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부는 아베 총리와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수위도 그 동안 '유감'에서 "강한 유감'으로 한 단계 올렸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중의원에 이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의식한 '선거용 우경화'에 그치지 않고 '헌법 개정'까지 가능한 압승을 거둬 평화헌법 개정과 역사왜곡 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변국을 더욱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엔저와 '무제한 돈찍기' 등을 밀어부치는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70%를 넘어섰다. 이런 여세를 몰아 아베 내각이 평화헌법 개정과 역사 교과서 자국 중심 강화를 추진할 경우 동북아 외교 관계는 심각한 균열을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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