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부터 1990년까지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 유일의 '3 연임' 총리라는 기록의 소유자 마거릿 대처가 8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영국은 물론 동맹국 미국 등 서방권에서는 애도의 '오비추어리(Obituary, 부고 기사)'가 앞다투어 쏟아지고 있다.
최대의 찬사는 대처가 11년의 재임기간 중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과감한 정책과 개혁으로 영국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를 양산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정도의 비판이 별거 아닌 듯 슬쩍 덧붙여질 뿐이다.
하지만 이날 영국 <가디언>에 실린 '마거릿 대처와 잘못 적용된 죽음에 대한 예의(Margaret Thatcher and misapplied death etiquette)'라는 칼럼은 서방권에서 마거릿 대처의 죽음에 대한 '오비추어리'와 얼마전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에 대한 '오비추어리'가 대조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논객으로 유명한 이 칼럼의 필자 글렌 그린월드는 "죽은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는 예의는 개인에 적용되는 것이지, 공적인 인물에 대해서도 적용하면 위험하다"면서 공적인 인물에 대한 '오비추어리'가 특정세력의 이념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현실을 경고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로 알려진 ''신자유주의의 기수' 마거릿 대처. 사진은 지난 1997년 새 책 발간 기념식 때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
공적 인물의 죽음, '찬양 전기' 만들 기회?
마거릿 대처의 죽음에 대한 보도들은 그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안되는 분위기를 낳고 있다. 영국 노동당 톰 왓슨 의원은 "좌파들도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의 루이즈 멘시 전 의원은 "좌파 찌질이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의 어떤 지도자들도 대처처럼 세계적으로 애도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처럼 공적 인물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일반 개인이 사망했을 때 "망자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는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이 많은 공적인 인물, 특히 상당한 영향력과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 '존경어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유족의 슬픔을 존중하라는 요구는 대처의 유족들의 친구나 그들과 함께 장례식에서 밤을 지새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과 정치적 행위에 대한 공적인 담론이라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사망한 공적 인물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 인물의 죽음을 '찬양 전기'를 만들어낼 기회로 삼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전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사망에 대해 장기간 애도했던 미국에게 이런 묘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인의 죽음으로 야기된 강력한 감정들을 이용해 이런 '찬양 전기'에 반대되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허용될 수 없다는 요구는 나쁜 행위에 대한 세뇌, 왜곡으로 허구에 찬 역사가 만들어지고, 굳어지게 만든다.
정치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찬사는 허용되고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요구는 무책임하다.
대처의 다른 점들은 모두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대처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행위들을 믿을 수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대처는 제1차 걸프전 발발에 핵심역할을 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
넬슨 만델라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던 대처
대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지도자 넬슨 만델라와 그의 정당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조차 "잘못된 발언"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언행이었다.
대처는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 악명높은 독재자들과 흔들림없는 우정을 지켜왔다. 대처는 이들을 "우리의 가장 훌륭하고 소중한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가디언> 기자 슈머스 마인은 "영국 전역에서 대처는 그의 가해행위, 불평등과 탐욕을 만연시키고 민영화와 사회분열을 초래한 정치적 유산 때문에 증오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처에 대해 고귀함과 위대함이라는 일방적인 레퀴엠 앞에 이런 사실들은 무시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총체적인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차치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독재적인 면이 있다.
작가 데이비드 위어링은 "대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존중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서방이 싫어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죽었을 때 균형 잡힌 논평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차베스에 대한 비판은 사망해도 오케이?
지난달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지도자 우고 차베스에 대해 <가디언>은 "차베스를 자객이나 협잡꾼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망은 그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베스의 유족들이 맘 편히 애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방해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짓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은 내가 알기로 없다.
<가디언>이 전했듯 베네수엘라의 국민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차베스의 죽음은 구원자가 사라진 것이며, 그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차베스는 정말 논쟁을 부르는 인물이었다. 그의 유족과 지지자들의 슬픔에 대한 무분별한 존중으로 이런 사실을 감추려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정치인으로 그의 유산을 정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반 개인이 죽었을 때 보편적인 추모의 예의가 공적인 인물의 '찬양 전기'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대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방권의 정치지도자들이 죽었을 때 성인처럼 떠받드는 의식에는 확실히 오싹한 점이 있다.
마거릿 대처건 누구건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을 지닌 공적인 인물에 대해 그들의 행위를 근거로 싫어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맞아 그의 잘못된 행동을 되새기면서, 거짓되고 자기중심적인 역사로 미화하는 사회의 해독제로 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대처의 장례식도 민영화, 최저가 입찰에 부쳐라" 마거릿 대처의 죽음에 최고의 애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독설에 가까운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영국의 진보성향 언론이나 논객들은 대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의 보수 언론과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리즘(대처의 노선)을 극찬한 것과 대조된다. 대처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대표적인 영국의 언론은 진보지로 정평 있는 <가디언>이다. <가디언>은 아예 8일자 사설을 통해 "마거릿 대처의 유산은 인간 정신을 파괴한 사회 분열, 이기심, 탐욕"이라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인디펜던트>의 칼럼니스트 오웬 존스도 8일자 칼럼에서 "대처리즘은 지금도 우리를 파괴시키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규정했다. 영국의 런던 시장을 지낸 켄 리빙스턴은 "대처는 영국이 오늘날 직면한 모든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는 대처의 장례식을 왕실 승인이 필요한 '공식 장례'(ceremonial funeral)로 치르기로 했다. '공식 장례'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국장보다 한 단계 낮은 장례식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승인했으며, 이는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과 동일한 수준이다. 한때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를 것으로 알려졌으나 "마거릿 대처의 국장에 반대한다"는 사람이 75%(영국의 <미러>지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이르는 등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고, 온라인 서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영국의 한 사이트에서는 순식간에 3만명이 넘는 청원이 이뤄졌다. 영국의 유명 영화감독 켄 로치는 이런 반대 대열에 앞장섰다. 로치 감독은 "대처를 어떻게 추앙할 수 있나?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에 부쳐 최저가에 낙찰시키자. 대처가 이런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길 원했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