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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몰수 조건 구제금융 사태,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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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몰수 조건 구제금융 사태, 자업자득"

[해외시각]"은행 규제 강화만이 근본적 해법"

그리스 밑 지중해의 조그만 섬나라 키프로스에 대한 유로존 당국의 구제금융 협상안이 19일(현지시간) 키프로스 의회에서 비준이 거부됐다. 찬성표 하나 없이 부결됐기 때문에 키프로스 정치권이 이미 이런 협상안 자체를 거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거부해 국가부도 사태가 난다고 해도 큰 충격이 없다는 관측도 있다. 국내총생산(GDP) 177억 유로의 키프로스가 유로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프로스 사태는 어떤 방식으로 디폴트 위기를 넘기더라도 이미 유로존 위기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는 경고가 무성하다.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안이 바로 은행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예금 일부 몰수' 조건부 구제금융안에 대해 항의하는 키프로스 시민들이 19일(현지시간) 'NO'라고 쓴 손바닥을 보이며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구제금융 재원으로 예금 좀 대라는 게 부당한가?

당초 구제금융안은 키프로스 정부가 요청한 170억 유로 중 100억 유로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나머지를 키프로스 예금자들의 일부 예금을 몰수함으로써 충당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10만 유로 이하의 예금자도 몰수 비율이 좀 더 낮을 뿐 예외가 아니라고 규정한 것이다.

유로존 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나라는 여럿이지만, 은행 예금이 보장이 안될 가능성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대두된 것은 키프로스가 처음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유로존 위기의 새로운 해법으로 "예금을 터는' 방안을 큰 나라에 적용하기 전에, 작은 나라 키프로스가 실험대상이 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조치로 키프로스는 물론 유로존 위기국 일대에 뱅크런이 촉발돼 유로존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의 금융분야 대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이 해법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는 의외의 주장을 펼쳤다. 은행 예금 보장이라는 원칙도 어디까지나 국가가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있는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울프는 "지급보장된 예금을 그냥 손실을 보게 한다는 것이라면 큰 잘못"이라면서도 "일부를 구제금융 재원으로 쓰자는 결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왜 내 예금으로 은행을 구제하는 비용으로 충당하냐"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국 "국가가 은행이라는 위험한 금융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근본적인 비판 차원에서나 가능하다는 것.

"예금 보장, 일정 한도 이상은 국가의 능력 밖"

사실 은행업은 국가가 허락한 '사기거래'라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원래 돈을 맡긴 사람들이 돌려달라고 할 때 언제든지 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허락 하에 은행은 극히 일부만 지불준비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수익을 찾아 돈을 돌린다.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런 지불준비금의 비율은 더욱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일부 나라에서는 금융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지불준비 수준을 낮췄다.

국가가 허락했다고 해서, 어떤 규모의 예금도 보장한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국가의 부채이고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은행이 위험한 수익사업을 한다는 것이 된다.

"GDP 4배 규모 예금에 지불준비는 사실상 없어"

울프는 키프로스가 극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키프로스는 680억 유로 규모의 예금에 대해 지불준비금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약간의 자기자본과 27억 유로의 무보증 채권(선순위 채권은 2억 유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후순위 채권) 형태의 자산이 있을 뿐이다.

예금이 얼마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작은 나라 키프로스 GDP의 4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금융권 자산은 GDP의 8배이며, 사실상 부분 디폴트가 난 그리스 국채에만 GDP의 1.6배가 투자돼 엄청난 손실을 봤다.

이는 키프로스가 러시아 마피아 등의 돈세탁 장소이며, 러시아 재벌과 부호들의 조세회피처로도 악명이 높은 것과 관련이 있다. 키프로스 사태에 러시아 정부까지 나서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은행 규제 방치하면 '키프로스 딜레마' 봉착"

유로존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연장선에 있고, 그 원흉은 방만한 금융업이다. 따라서 울프는 근본적으로 위기의 재발을 막으려면, 예금 보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용납 못한다고 버틸 상황이 아니라, 금융업과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울프는 "공포스러운 것은 조그만 나라 키프로스가 어려워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런 사태가 더 큰 위험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은 어느 곳에서건 위험하다"면서 "은행이 지금도 유로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프는 키프로스 같은 상황이 방치되면 금융업이 방만한 어느 나라에서건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모든 은행들을 구제하면서 위험을 일삼은 은행업을 계속 인정하다가 최악의 경우 국가를 부도 위험에 빠지게 만들거나, 아니면 은행 구제금융을 거부해서 나라의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것을 감수하느냐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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