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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출신 교황'이 형용모순이라고?

[분석]"바티칸 이너서클의 기득권 유지 위한 선택"

가톨릭 역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 1300여 년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사상 첫 예수회 출신 교황...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세운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거꾸로 그가 교황청의 이너서클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때문인지 '교황 회의론자'들은 교황 선출 직후부터 '알리고 싶지 않은 이면'을 들춰내고 있다. 어떤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새삼 부각시키는 '흠집내기'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다.

대표적인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970년대 아르헨티나 예수회 최고지도자였던 시절 당시 군사독재정권과 협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7일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첫 일요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 즉위식을 갖는다. ⓒ교황청
새 교황과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의 '반성없는 어두운 역사'

최근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 소속 신부 2명에 대한 체포·고문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부 문서 기록을 폭로했다.

교황 측은 강력하게 이를 부인하고 있다. 교황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어떤 사안에서 용기가 부족해 침묵한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피해자들을 도왔다는 수없이 많은 증언들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의 인권유린으로 3년(77년~79년)만에 무려 3만여 명이 사망·실종된 이른바 '더러운 전쟁'은 가톨릭신도가 국민 대다수인 아르헨티나에서 가톨릭교회의 암묵적인 지원과 침묵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독재정권에 협조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 전체와 연결돼 있다. 당시 칠레와 브라질도 독재정권에 시달렸지만 가톨릭 지도자들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면서 아르헨티나에 비해 희생자들이 훨씬 적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 최고지도자인 대교구장(2005~2011년)으로 있을 때 '더러운 전쟁' 당시 교회의 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를 끝까지 거부해 인권단체들과 갈등을 빚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인물이 국가 살인 중심 역할"

아르헨티나 역사 전문가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인물은 작위와 부작위로 국가에 의한 살인이 자행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시대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나올 수 있지만, 역사학자 케네스 서빈 샌디에고대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교회 중에서 아르헨티나는 교회와 군부의 밀착관계가 가장 깊었던 나라였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바티칸 권력체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정작 새 교황을 둘러싸고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예수회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회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계를 지키며 자정운동을 벌이던 보수적 성향의 수도회로 출범했다.

예수회는 수도와 선교에 집중하기 위해 교회 조직의 고위직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예수회 출범 이후 예수회 출신 교황은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창시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당대의 주교, 추기경, 교황이 보여준 탐욕으로부터 예수회 사제들이 벗어난 생활을 하길 원했다.

"예수회 사람들이 예수회 출신 교황 예상 못한 이유"

예수회 역사 전문가 토머스 워스터 교수는 아예 "예수회 교황이라는 것은 형용모순"이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워스터 교수는 "예수회의 정신은 권력과 부,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며, 특히 전세계의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를 찾아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스터 교수는 "예수는 세상을 직접 복음을 전하고 당대의 성직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느라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다"면서 "예수회 사제들은 이런 예수의 길을 따르는, 최소한 따르려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예수회 사람들은 예수회 출신 추기경이 교황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예수회 출신 교황에 흥분하는 예수회 사제들도 있지만, 당혹해 하는 예수회 사제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개발도상국가에서 선교에 앞장섰던 예수회 사제들은 엄격한 교리에 매달리기보다 사회경제적인 정의 문제에 집중했다. 이른바 '해방신학' 운동에 예수회가 앞장섰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예수회 최고지도자로 있던 1970년대 해방신학이 마르크스 이념에 지나치게 물들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예수회 역사 전문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시 해방신학에 적극적인 예수회 사제들이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을 때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교황 선출권 장악한 이탈리아 패밀리

왜 이런 아웃사이더를 바티칸 추기경을이 교황청의 수장으로 선출한 것일까? 위기에 처한 가톨릭교를 개혁하는 중책을 맡기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선출될 때부터 임시 교황'이라는 모욕을 받았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처럼 교황청의 이너서클이 '힘없는 얼굴마담'을 또다시 교황으로 내세운 것일까.

교황청 역학관계에 정통한 일부 전문가들은 후자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기껏해야 아르헨티나 출신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택한 것은 중남미 신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일종의 '영업 사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12억 가톨릭 신자 중 거의 절반이 중남미에 속하는 반면 이를 대변하는 추기경 중 거의 절반이 유럽 출신이라는 점이 보여주듯 교황청은 기득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예전에 가톨릭 신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럽이 20% 정도로 감소한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신도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바뀌어도 바티칸의 권력 질서는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계에서 보기 드문 개혁적인 추기경으로 꼽히던 이탈리아 밀라노 추기경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는 교황청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면서 "현재 가톨릭은 200년이나 뒤떨어져 있다"고 탄식하면서 지난해 말 선종했다.

마르티니의 진단이 옳다면 새 교황에 시대가 요청하는 개혁적 임무를 수행할 인물이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이런 시각을 보였던 전문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도 놀라울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권력 기반 없는 보수적 교리주의자'가 개혁?

교황 선출권을 지닌 추기경 115명 중 4분의 1이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인 현실에서 전임 교황처럼 70대 후반의 고령이며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친이탈리아계 추기경'으로 분류되는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택된 최대 요인은 '바티칸 권력의 뿌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특히 유럽에서 사제 지원자와 신도는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문화적 가톨릭 신자'만 늘어나고 있다. '무늬만 신자'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교황 무오류' 교리에 묶여 자체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임 교황이 "낙태는 죄악"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를 후임 교황이 뒤집을 수 없는 반면, 성직자들의 성추문에 교황청의 관료주의와 비밀주의, 불투명한 재정 운용, 돈세탁과 연결됐다는 바티칸 은행의 비리 등이 '바티리크스(교황청 비밀 폭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런 가톨릭 교회의 위기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다. 바티칸이 의외의 인물을 교황으로 선출했다지만 개혁보다는 '안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워스터 교수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 중에서 교리상 상당히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특히 사제의 독신을 강조하고, 동성애, 낙태, 여성 사제에 대해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러나 워스터 교수는 이왕 뽑힌 예수회 출신 교황이 예수회 정신을 살려 시대가 요구하는 교황의 직무를 잘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생을 걸쳐 보여준 청빈과 겸손을 넘어선 개혁의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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