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퀘스터가 발동하면 당장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보도만 보면, 시퀘스터가 너무 중대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여야합의로 최소한 한 달이라도 다시 연기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그럴 듯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정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1일 시퀘스터가 공식 발동하자 뉴욕증시는 상승 마감했다.
이에 대해 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시퀘스터에 대한 합의를 거부하고,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수 있도록 가장 구체적인 조치를 취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가 집권 1기 때 초당적 정치를 내세웠지만 집권 2기 때는 전투적인 내각을 꾸렸다는 예측은 있었지만 시퀘스터 문제에서도 내후년 중간선거를 노리고 불타협 입장을 확실히 보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바마의 구상대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해 집권 2기 후반부에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진척을 보지 못한 과제들을 완수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치권을 지켜본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 지국장 에드워드 루스는 시퀘스터를 시작으로 여야의 정치적 노림수가 '동상이몽'에 가까워, 갈수록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다음은 '상호확증파괴 지향(A taste for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이라는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일 올해 예산삭감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시퀘스터가 공식 발동됐다. 일각에서는 여야 합의가 끝내 결렬된 배경에는 중간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AP=연합 |
"오바마, 중간선거 승리 노린 선택"
지난 2011년 8월 백악관과 의회가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한도 승인 문제와 함께 향후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예산삭감(올해만 850억 달러 삭감)을 자동적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문제로 씨름할 때, 사람들은 시퀘스터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핵무기'에 비유했다. 어떤 대안도 시퀘스터가 의미하는 '무차별적 삭감'보다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일자로 이 폭탄이 터졌다. 하지만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35포인트 상승 마감했다.
시퀘스터 발동으로 공화당이 감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 국방예산이 불가피하게 됐고, 민주당은 복지 지출 삭감을 감수하게 됐다. 여야가 어떤 대안보다 나쁘다고 생각할 것으로 본 시퀘스터가 차라리 낫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 여야 상호간의 혐오감은 악화됐다는 것.
오바마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온난화, 총기 규제 등 지금으로서는 돌파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오바마로서는 시퀘스터를 택한 것으로 잃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오바마 측은 예산 삭감으로 공항 기능이 부실해지고, 의료보험 서비스에 차질을 빚고 공공시설이 문들 닫을 때마다 공화당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시퀘스터에 따른 지출 삭감은 법에 따라 연방 근로자에 대해 한 달 전 통보 조건으로 4월부터 체감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항공기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안 검색으로 대기하는 줄이 길어져 사람들의 짜증이 늘 것이다.
공화당 "오바마 집권 2기 무력화" 목표
공화당 쪽에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공화당의 목표는 오바마의 국정과제를 향후 4년간 저지시키는 것이다. 중간선거에서 상원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이런 목표 달성에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시퀘스터 국면은 공화당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오바마가 인력 감축으로 축산물 검역관리가 소홀해지고 있고, 멕시코와의 국경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때마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예산삭감에 따른 폐해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미국에서 중간선거는 경제가 좋을 때조차 거의 예외없이 집권당이 패배하는 결과를 보였다. 시퀘스터가 발동해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0.5% 포인트 정도 감소하는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간선거 해인 2014년 초반에도 실업률이 8%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복잡한 이런 설명보다 현실적으로는 도대체 시퀘스터가 그렇게 큰 문제냐고 공화당이 역공을 취할 것이다.
시퀘스터가 발동한다 해도 올해 연방예산의 2.5%를 삭감하는 것인데 이 정도의 삭감도 감당하지 못하는 정부라면 바꿔야 할 정도로 무능한 게 아니냐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티파티그룹의 대표적인 후원단체 미국번영재단(AFP)의 팀 필립스 회장은 지난 2일 "오바마 대통령은 시퀘스터가 발동되면 미국의 문명이 끝날 것처럼 과장했지만, 오늘 아침에도 태양이 떴다"고 조롱했다.
이제 시퀘스터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지기보다는 오는 7월이나 8월 연방 부채한도 증액을 둘러싸고 의회가 벌일 논란으로 관심이 옮겨갈 것이다.
예산전문가들조차 시퀘스터가 어떤 효과를 초래할지 잘 모른다. 관련 법규가 아주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지형이 대체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너무 뻔하다. 미국 정치권이 빠져 있던 지리한 교착상태는 이제 '상호확증파괴' 단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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