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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아베노믹스에 굴복…통화정책 독립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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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아베노믹스에 굴복…통화정책 독립 포기

[분석] "실현불가능한 목표로 신뢰성만 훼손" 내부 반발

주요 경제국이라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교과서적 상식이 일본에서 공식 폐기됐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22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정부·일본은행 간 정책협력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으로 새로운 통화정책을 발표했다.

중앙은행이 정부와 함께 통화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전례가 없는 것이고, 내용도 파격적이다. 인플레이션율 목표치를 기존 1%에서 2%로 올리고, 이런 목표치를 중장기적으로 관리한다는 기한도 "가급적 이른 시일에 달성한다"고 바꿨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아소 다로 재무상, 시라카와 일본은행장 등과 협의를 마친 후 일본은행과 정부가 통화정책을 함께 마련하는 획기적인 변화를 이뤘다고 선언했다. ⓒAP=연합

"내년부터 금융자산 '무기한 매입'한다"

물론, 일본은행이 독립적으로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가 중앙은행장을 교체해서라도 통화정책을 자기 뜻대로 하겠다고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자 결국 일본은행이 굴복한 것이다.

하지만 오는 4월에 임기가 끝나는 시라카와 마사키 일본은행장은 마지못해 아베 정부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시라카와는 "진짜 문제는 무역장벽과 지나친 규제 등 구조적인 결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라카와는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경우 초래될 위험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국채 금리 급등과 자산거품, 통화정책에 의존해 장기적인 구조개혁을 회피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정부의 압박에 내놓은 통화확대정책도 즉각적인 것은 아니다. 매달 13조엔(약 156조원)을 투입해 국채 등 금융자산을 '무기한 매입'한다고 했지만, 시기를 내년부터라고 정했다. 올해 국채 매입 규모를 늘린다는 등 당장의 추가 부양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전날보다 소폭 강세를 보였다. 일본은행의 결정은 예상된 것이었고, 새로운 것이 없는 데 따른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은행 수뇌부 바꿔 추가 조치 나올 수도

하지만 이것으로 일본은행의 변신이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는 "은행법을 개정해서라도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면서 시라카와 등 현재의 중앙은행 수뇌부들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JP모건의 애널리스트 칸노 마사키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차기 일본은행장은 국채매입 규모 확대 등에 나설 것"이라면서 "이번 조치로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경제계에서는 아베 정권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까지 동원하는 대대적인 통화정책으로 엔저를 유도해 다른 나라들을 볼모로 하는 '환율 전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처럼 20년 넘게 장기불황에 빠진 주요 경제국이라면 중앙은행이 독립성만 주장할 수 없다면서 아베 총리의 노선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까지 훼손하면서까지 경기부양에 올인하는 '아베노믹스'가 단기적인 효과는 낼지 몰라도 부작용만 남기고 사그라질 위험한 정책이라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일본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두 배가 넘는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가파산 위기에 몰린 유럽의 재정위기국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이 대부분의 일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채금리가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베의 정책에는 부채 통제 계획이 없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지키면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설정한다는 것은 고려할 수 있지만, 아베의 정책에서 부채를 통제하는 계획이 빠져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플레이션 2%'라는 목표가 '무제한 국채 매입'으로도 달성될 수 없고, 실현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목표로 내세울 경우 중앙은행의 신뢰성만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결정을 내린 일본은행 금융정책심의위원회에서 9명의 위원 중 반대표를 던진 2명은 원래 적극적인 금융팽창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이 같은 이유로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에만 800조 원이 넘는 돈을 풀었어도 인플레이션율은 0% 안팎에 머물렀다.

시라카와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은행법 개정까지 하겠다'는 아베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아베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조지프 개그넌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가 당장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일본은행은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할 것처럼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처신에 매우 능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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